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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령 매미소리
08/31/20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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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령 매미소리


17층 호텔 방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규모 큰 초현대식 고층건물의 숲 뿐. 의외였다. 여기가 진정 중국인가 싶을 정도로 도시는 근대화되어 있었다. 광활한 평원인 베이징을 벗어나 북쪽으로 두어 시간 달리니 비로소 시야에 산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울울창창한 삼림은 아니나 잡목 숲 푸르른 산. 성급한 마음은 벌써 성벽을 더듬어 찾지만 한참 뒤에야 산마루에 이어진 만리장성의 일부가 보였다.

 

휘어도는 조붓한 고갯길. 팔달령 인근은 차량과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장성 입구 상가에 둘러싸인 광장에서는 원색 차림에 나팔 꽹과리 소리 야단스런 전통 혼례식 재현 풍경이 눈을 끌었다. 그에 질세라 성하의 숲에선 폭포 줄기같이 세차게 쏟아지는 매미소리로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여과없이 그대로 내리꽂히는 따가운 불볕 세례를 받으며 장성에 올랐다. 말이 좋아 '만리장성을 실제 밟아 보았다'이지 현재 우리가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은 북경 인근 팔달령에 위치한 만리장성의 극히 일부분이다.

 

성은 본래 목적이 군사방어 시설로 요새에 해당한다. 따라서 어느 곳이든 그 지역의 요충지라 할 수 있는 주요 길목에 자리잡는다. 외침을 막고자 국방상 요지에 쌓기 마련인 성이다 보니 성터의 시대 구분만큼 애매한 것도 없을 듯 하다. 이를테면 신라때 쌓은 성벽이 전쟁으로 무너지고 나면 다시 그 터에 고려 혹은 조선조에서 성을 되쌓기 때문에 성터의 경우 여러 시대가 혼재된 양상을 보이기 일쑤다.

 

만리장성 역시 기원전 7세기경 중국이 북방의 외세를 막기 위해 축조한 성벽이다. 다시 전국시대에는 흉노족 때문에, 남북조 시대에는 거란을 막으려고 쌓은 성을 진시황이 연결해 완성을 보았다고 역사에 쓰여 있다. 지금 내가 딛고 선 이 성벽은 명나라가 몽고의 침략에 대비코자 쌓은 성이라 한다. 거의 모든 장성이 흙벽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전(塼)으로 완벽하게 만든데다 빈틈없이 견고한 성벽 위로는 마차가 지날 만한 너비를 유지하고 있다.

 

장성의 왼쪽 성벽은 경사가 급해 완만한 오른쪽보다 오르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나 장성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좀 힘들더라도 왼편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 높다라니 솟은 성루에 올라보면 능선따라 서쪽으로 끝없이 굽이쳐 돌며 이어지는 장성의 면모가 한 눈에 잡히기 때문이다.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이윽고 내려다보는 만리장성. 탄탄하게 다져진 너른 성벽길이 드디어 굵은 로프줄이다가 종당엔 가느다란 비단실로 가물가물 사라져 버린다. 아니 푸르른 능선 짙푸른 파도 위로 백룡이 굼실거리며 기어오르고 있다. 아스라이 먼 꼬리, 차차 굵어지는 몸피, 나는 그 허리쯤에 서 있는 셈이다. 그렇게 만리장성의 위용을 조망하며 장관에 감탄하고 유명세를 확인한다. 하지만 워낙 명성이 높은만치 기대치가 컸던 까닭인가, 탄복까지는 아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성루에는 골바람 쐬며 땀을 식히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만리장성보다 떼로 몰려다니는 인민 구경이 더 볼거리다. 오나가나 여자들은 시끄럽게 떠들썩한데다 속이 휜히 드러나는 홑겹 옷을 걸치고 양산은 거의 필수이듯 들고다닌다. 장성 구석짬에 서서 무심히 양산 꼭지로 바닥을 쪼고 있는 한 젊은 중국 여인. 그녀의 몇 대 할아버지인가는 노역에 끌려와 바위를 날랐거나 전쟁 중 화살받이는 아니었을까 상상하니 왠지 모를 추연한 감회가 인다. 더 이상 나아가선 안된다는 출입금지 표석 앞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려 허위허위 장성을 내려온다.


잊고 있던 매미 소리가 별안간 아우성치듯 쏟아진다. 무수한 목숨 바쳐 이룩한 역사(役事)의 현장인 만리장성. 제대로 눈 못감은 원통한 주검들이 구천을 떠돌며 다생겁을 지내다가 한번은 꼭 한번은 옛터를 돌아보고자 매미로 화했던가. 잠깐 허락된 이승에서의 아쉬운 몇 날들. 옛 회포의 서러움에 매미는 온몸으로 맹렬하게 운다. 처절하고 기막힌 흉금 몽땅 풀어헤친 채 속이 후련하도록 실컷 운다. 마냥 운다. 쨍쨍 울리는 매미소리. 쓰르라미 왕매미… 어느덧 지나버린 입추, 여름이 가고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만리장성은 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지구의 유일한 인공 건조물로 유명하다. 발해만의 산해관에서 고비사막의 가용관에 이르는 동서로 길게 뻗은 성벽.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사람의 땀과 눈물로 쌓은 거대한 성, 그 일을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무릇 얼마였으랴. 그 과정의 숱한 사연과 비극은 미루어 짐작이 가거늘 어찌 만리장성을 보고 실없이 웃으며 즐길 수만 있겠는가.

 

숙연한 심사를 더 가라앉게 한 것은 이화원에 가는 도중 운전기사의 배려로 들린 뜻밖의 장소로 인해서였다. 이름하여 진시황 예술궁. 동아시아 사상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진시황의 일대기를 실제대로 재연시켜 놓은 곳이다. 등신상으로 꾸며진 출병식 광경. 장수와 말이 나뒹구는 전장터. 장엄한 어전. 호화스런 아방궁. 만리장성 축조시 독려차 나선 시황제 행렬. 광기어린 분서갱유(焚書坑儒) 현장이며 강제 사역으로 생전에 완성시킨 여산릉의 내부도 보인다.


특히 삼십 만의 군병과 수백만의 농민을 동원해서 만든 만리장성 축성 과정에서는 목불인견의 참상과 함께 선혈이 낭자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두른 전제 군주 시황제. 그 아래 힘없는 백성들의 삶은 참담할 수밖에. 노역에 끌려가는 아들 뒤에서 울다 쓰러진 노모와 꽃다운 젊은 아내. 그 남정네는 마지막 노동력을 잃을 때까지 착취당하다 병이 들면 산채로 구덩이에 묻혔다. 탈출을 시도하거나 반역을 꾀한 사람들은 생목숨을 끔찍한 방법으로 끊기 예사였다.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인민의 백골, 백골더미들. 만리장성은 그 위에 이루어진, 인간의 위대한 역사가 아니라 광기어린 역사에 다름 아니다.

 

만리장성이라는 웅장한 역사의 포장물 이면엔 끊임없이 죽이고 죽임 당하는 인간의 추한 면모가 얼마나 많이 숨겨져 있는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날 한국인인 것이 부끄럽던 것처럼, 그때 나는 한동안 찜찜한 기분인 채 사람됨이 부끄러웠다.  - 96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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