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bell
촌장(kubell)
한국 블로거

Blog Open 07.15.2012

전체     641483
오늘방문     149
오늘댓글     1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친구 새글 더보기
  달력
 
후원자
08/07/2019 02:00
조회  936   |  추천   24   |  스크랩   0
IP 121.xx.xx.44


 


시내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가우디 건축 디자인 특별전>이 열리는 전시장에 들렀다. 보름 여 계속된 전시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성서라 칭해지는 그 유명한 성가족교회를 만든 가우디.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아니 스페인 건축을 상징하는 파밀리아성당은 1883년에 착공돼 지금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2백년이 더 걸려야 완공을 본다는 너무나 이름난 건축물이 성가족교회다. 마치 무늬 넣어가며 코바늘 뜨개질한 뾰족모자처럼 높다라니 치솟은 첨탑부터 퍽 이색지다. 복잡해보일 정도로 섬세치밀한 구성미도 눈길을 끈다. 로마 고전양식에 고딕요소가 가미된 성가족교회. 그러나 어느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독창성이 돋이는 어디까지나 가우디만의 건축기법이라 한다.


바르셀로를 둘러본 이의 여행담에 의하면 규모는 물론 형태면에서 아예 어리벙벙, 놀랍다 못해 기가 질리더라는 것. 그만큼 기묘하고 특별스런 성가족교회라 한다. 직접 볼 기회는 아직 주어지지 않았지만 사진이나 영상 통해 여러차례 상면한 바 있어 웬만큼은 낯익은 건축물이다. 전시실로 들어가며 카다록을 훑어본 다음 흰수염 덥수룩한 노년의 가우디 사진과 청동 흉상을 거쳐 파격에 가까운 그의 작품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물론 전시내용이 실물을 옮겨올 수 없는 건축물이다보니 주로 패널사진과 입면도 단면도 등의 설계도면이 많았다. 그외 건축 구조물 일부와 가우디가 디자인한 의자와 문 등 1백 90여 점이 전시중이었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숙성 발효시켜 건축물로 표현해 냈다는 그. 동양사상을 바탕으로하여 고대 그리스문학의 신화에도 심취했던 그의 예술정신은 자연친화적이면서 동화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지녔다고 평가되고 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라고 그가 말한 바 있다. 그와같이 가우디가 이룬 건축 대부분은 수직이나 직각의 곧은 선이 아니라 자연에서 차용해온 곡선이 주를 이뤘다. 하여 통상 건축물은 네모꼴을 기본으로 한다는 일반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건축기법이나 어떤 미술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이고도 난해한 특정 스타일로 규되고 있다. 따라서 시대를 초월함은 물론 상식을 뛰어 넘는다. 발상이 비범하다못해 거의 기상천외하다.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즐겨 적용시킨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신비감 내지는 괴기한 느낌마저 든다. 하여 천국에서 지옥으로, 천상에서 지하세계로 오가는 기분을 들게 한다고 토로한 사람도 있을 정도다.


온갖 동식물이 망라된 숲속나라 같은 구엘공원에 이르면 동화의 세계에 들어온듯 하다. 운강석굴 일부를 옮겨다 놓은 양 독특한 테라스 장식이며 버섯 닮은 주택도 있다. 그러면서도 건축공학적으로 완벽하고 더없이 합리적인가 하면 주변환경과 건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니 여하튼 놀랍다. 자연과 예술의 결합체, 바로 그가 추구한 궁극의 건축미를 총망라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평 그대로다. 나아가 건축에 조각과 디자인을 가세시킨 장식적 요소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세라믹이며 타일, 벽돌 및 현무암과의 조응이 현란하다. 그뿐인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구엘공원 안의 밀라 주택, 구엘 궁전 등은 거대한 조각에 가깝다. 그는 집을 짓는다기보다 총체적인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곧 그의 건축물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각품인 셈이다.


독신의 한 생을 가톨릭에 귀의한 채 수도사보다 더 수도사 같은 삶을 산 가우디다. 오래 아버지를 모시고 검소하고 질박하게 지내면서 오로지 건축예술에 심혈을 바쳤던 가우디, 그렇게 티없이 정결스런 영혼으로 집을 지은 그였다. 카탈로니아의 구리 세공인을 아버지로 하여 태어난 그는 바로셀로나 대학에서 건축공부를 한 정통파였다. 뒷날 그의 기량을 제대로 알아보고 그의 정신을 옳게 이해한 구엘을 만남으로 가우디의 예술혼은 거침없이 만개하기에 이른다.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인 구엘이 기꺼이 재정후원자 역할을 맡으므로 가우디는 마음껏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의적인 작품활동에 몰두할 수가 있었던 것. 단순한 거래관계 즉, 건축가와 주문자인 고객의 입장이 아니라 가우디의 건축예술을 진정으로 아낀 구엘과의 인연은 남달랐다. 가우디는 구엘로 하여 자신의 예술관을 맘껏 확장시킬 수 있었고 구엘은 가우디로 하여 그 이름 영영 세상에 남기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그러했듯이.  


상업과 금융업으로 프로렌스를 지배한 대부호였던 토스카나 대공 로렌쯔 데 메디치. 그는 미켈란젤로의 후원자였다. 메디치가는 그외에도 각종 문예활동을 장려하고 미술품 수집과 아울러 작가로 하여금 가족 초상을 그리게 하는 등 예술의 활성화를 위한 측면지원으로 문예부흥운동에 크게 기여한다.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전성시대를 구가한 메디치 가문의 정원은 고대조각들로 가득차 지붕없는 미술관이라 불릴 정도였다던가.


몇 년 전, 배낭여행 도중 프로렌스에서 들렀던 메디치 가묘가 있는 한 교회당은 각종 조각들과 회화작품들로 거대 미술관을 방불케 했다. 섬세한 조각으로 감싸인 대리석 관과 정면의 십자가만 없다면 그대로 미술관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다 둘러보려면 하루해가 짧다는 방대한 우피치 미술관의 소장품에야 비교할 수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수많은 예술품들을 모은 메디치. 대충 셈해봐도 메디치가의 컬렉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예술적 안목이 대단한 메디치 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다빈치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건축의 거장이기도 했다. 성베드로 성당은 그의 설계와 구상으로 만들어졌으며, 하느님과 아담이 서로 손끝 맞대고 있는 천지창조 같은 불후의 대작을 천정화로 남긴 그다. 타고난 미술적 재능을 충분히 펼쳐나갈 수 있도록 그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메디치. 해서 메디치의 이름은 아직도 형형히 살아있다.     


연극에 대한 열정만으로 모인 가난한 극단에 자신의 병원 지하공간을 빌려줘 상설무대로 쓰게 한 부산의 어느 의사. 어떤 건설회사는 자기 빌딩 사무실 하나를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 예술단체들이 필요로 할때 무상제공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바그너의 음악적 광기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음은 바바리아의 영주 루트비히 2세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모짜르트의 음악은 천부적 재능에다 훌륭한 연주장소가 한층 더 빛을 발하게 했다. 당대의 궁정과 살롱 분위기는 그의 화려한 음악성을 유감없이 표출시키기에 적당하였으니까.


기업이 예술활동을 지원해주는 메세나 운동이라는 말이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은 요즘. 더 많은 메디치, 구엘이 있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참예술이 보다 활짝 꽃피어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보다는 정경화의 오늘을 있게 한 그의 어머니, 끝까지 고흐의 뒷바라지를 해준 동생 테오, 클라라가 곁에 있지 않았던들 슈만은 시인의 사랑 등 보석같은 가곡들을 남길 수 있었을지. 어쩌면 가장 큰 후원자는 늘 곁에서 지켜보는 가까운 가족들이 아닐까.


한번씩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을 적이 있다. 일상이 웬지 팍팍하게 여겨지며 무미건조한 생활로부터의 일탈이 절실하다고 여겨질 때. 그렇다. 무턱대고 목이 마른데다 어쩐지 숨이 답답하다. 사는 일이 심드렁해지며 만사에 호기심조차 일지 않는다. 무슨 일에도 흥미가 없고 전신은 무기력감에 빠진다. 가슴 뻐근한 감동이 필요하다고 느껴질때 해갈과 조율과 충전을 위해 영혼이 자유로운 여행객이 되고 싶어진다. 그때마다 발목 묶지않고 나래 달아주는 가족들이 얼마나 고마운 후원자였던지. 문에 매달려 부질없이 파지나 만들고 있는 나를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냥 무던히 지켜봐주는 가족들이야말로 최고 후원자였음을 이젠 알겠다. 명작은 못 남겨도 최소한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글을 쓰고싶다.


<1997년 창작수필 겨울호 게재, 그후 이십 여년 지난 봄에 직접 바로셀로나에 가보니 가우디는 천상 天心의 소유자..>



바로셀로나, 안토니오 가우디, 파밀리아 성당, 구엘공원, 1997년 9~10 가우디 건축디자인 부산 전시회
이 블로그의 인기글

후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