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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선 산을 보며
01/31/20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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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이 그러하듯 부산에는 유독 둘러선 산이 많다. 바다를 그리며 치달려 온 산맥이 우둑 멈춰 솟게 한 산, 산들.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고 읊은 시인의 안목이 아니어도 각기 높고 낮은 산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탄성이 터지며 종당엔 외경심이 느껴진다. 드높이 치솟은 산은 힘찬 그대로, 낮으막한 산은 안온한 그대로 언제봐도 좋기만 하다. 산은 우직하리만치 변덕 모르는 장부의 기상인가 하면 가장 율() 고운 시를 품고 있는 여인이다. 


때때로 도식화된 일상의 틀이 조여와 질식할 것 같을 때 나는 불현듯 집을 나선다. 행선지가 정해진 바도 아니고 약속된 동행도 없다. 문득 벗어나고 싶을적에 훌쩍 떠나는 것이다. 아무 걸림없이 훌훌히 떨치고 나와 맨처음 닿은 버스를 타면서 어디로 갈 것인가는 정해진다. 주로 향하는 곳은 바다이지만 가끔은 훤칠하게 열린 경부고속도로를 달려본다. 그렇다고 먼 코스를 택하는 건 아니다. 잠시의 환기를 위해서이니 가까운 외곽인 근교라도 무관하다.


그리하여 만나고 헤어지는 무수한 산과 산들. 그 단아하고 수려한 모습들 스치면서 마음으로 담아오는 맑은 바람결로도 영혼이 세척되는 기분이 든다. 볼적마다 항상 동래를 둘러선 금정산의 기세는 특히 나를 매료시킨다. 기암으로 솟구친 봉우리마다 장쾌한 남성적 기개 우뚝하고 그 위 창천은 도심 하늘답지 않게 눈이 부시다.


울울한 송림으로 따르던 금정산이 낮은 동산에 가려 얼핏 숨으면 이윽고 나타나는 회동 수원지. 뒷동산마냥 다정한 등성이가 울멍줄멍 엎딘채 호젓한 숲을 이룬 그 길은 편한 한촌 풍경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느닷없이 다가서는 오륜터널의 주황불빛 유혹에 빠져든다. 그 협곡에서 벗어나면 다시 웅자 드러내며 마중하는 금정산의 옆모습은 더욱 장관이다. 톨게이트 치나자마자 훤히 시계 트이는 고속도로. 양켠에 비경의 숲 거느리고 곧장 뻗은 그 길 치달릴 때의 상쾌함이라니. 오른족 골프장 펑퍼짐 가라앉은 산기슭보다 좌측 가파르게 내리지른 장대한 산세야말로 가히 일품이다.


금정산과 맥 이어져 다시 한번 힘찬 용트림을 한 이 산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산행 정밀지도라면 몰라도 집에 있는 여행 안내도나 지리부도에는 지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내심 그 산을 금륜산이라 부른다. 나 혼자만의 명칭인 금륜산. 금정산과 맞닿아 있는데다 높고 성스러움으로 상징되는 상상속의 곤륜산을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다. 또한 '금륜'이란 대지의 상층부를 일컫는 불교용어이기도 하니 내가 좋아하는 산에 붙일만한 이름인 셈이다.


바로 지척에서 정인()처럼 따르고 있는 금륜산. 그 산세란 일필휘지로 거침없이 그은 힘찬 솜씨다. 정상에서 위세좋게 내리꽂히는 가파른 산기슭. 그러면서 치마자락에는 아주 넉넉한 여유를 주었다. 그렇듯 짐짓 멈춰 숨 조절한 평원에 촌락조차 다듬어 품고있는 금륜산. 능선따라 거친 텃치의 암벽이 서있는가 하면 예리한 암봉도 솟구쳤다. 그 바위군을 보관인양 둘러쓰고 제왕처럼 위풍당당, 올연한 풍모야말로 단연 압권이다. 의잣하고 장한 체구 못지않게 위엄마저 갖춘 기암들이 더욱 산을 산답게 보좌해 주고 있다.


그 산은 오르고 싶은 마음이기보다 그냥 바라보는 걸로 족한 산이다. 그런가하면 가슴 깊이 아껴두고 싶은 산이기도 하다. 거기다 철따라 신비로이 보여주는 변신은 또 얼마나 놀랍던가. 초봄의 부드러운 연둣빛, 순하게 물오르는 나무들의 숨결을 안으로 다스리는 산의 호흡이 은근스럽다. 우거진 숲 아니어도 용솟음치는 젊음을 느끼게 하는 여름산의 건강미도 미쁘다, 골자기에서 흘러흘러 넘쳐나는 용얌, 아니 걷잡을 수 없는 산화() 로 번지는 가을 단풍의 열정은 황홀스럽다. 은백색 고요로 속살대는 억새무리 더불어 마른 바람소리에 잠겨드는 겨울산이 풍기는 원숙미라니.


금륜산과 작별하고 양산에 들면 앞을 가로지르는 준령 준봉들. 음영 각기 다른 자색의 연봉 너머 또 능선. 힘차게 때론 완만하게 그어진 산의 선이 마치 부드러운 입술처럼 뜨거운 불꽃처럼 변화무쌍하다. 그 중 하나가 영취산이다. 경봉선사가 구름처럼 머물던 산이자 불보대찰 통도사를 안고있는 산이다. 길게 누운 유장한 산세 때문일까. 웬지 이중섭의 황소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산. 그러면서 한덩이 수석으로 서있는 산.


이 모든 것이 부산에서 한 시간 채 안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쯤에서 발길 멈춰 잠시 통도사나 내원사 들리면 더욱 함함하리라. 아니면 석계나 이름모를 동구 들러 잠시 쉬었다 와도 가슴에 투명히 맑은 바람 채워올 수 있음인데. 저마다 앉을 자리에 알맞게 앉아 어느 하나 어색함없는 산이 이룬 질서와 조화 그 자연스러움을 배워야 하리. 바위의 견고한 침묵과 새들의 산뜻한 지저귐을 함께 수용하고도 어찌 그리 잘 어우러질 수 있는가 역시 배워야 하리. 산을 보노라면 언제나 내 안뜰이 속속들이 맑아오는 기분이기에 나는 즐겨 길을 나서는지도 모른다.  <1987년>



금정산, 오륜터널, 통도사, 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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