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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정 (溫故之情)
01/30/20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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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올이 맵싸하던 해풍이 한결 부드러워진 오후. 겨우내 봉해두었던 문풍지를 뜯듯 칩거의 너울을 한거풀 벗고 조춘(早春)의 햇살 비껴 받으며 박물관을 찾았다. 잘 다듬어진 정원엔 순하게 누운 잔디 그리고 연하디 연한 새순들의 화음이 아지랑이로 피어 올랐다. 어느덧 봉긋한 목련이 상아빛 속살 살포시 열고 그 아래 개나리 덤불에선 조랑조랑 샛노란 꽃무리가 환하게 불 밝히고 있었다. 본관 앞 뜨락에 시립하듯 서 있는 석등(石燈)이며 부도(浮屠). 세월의 이끼에 덮인채 무량의 침묵을 안으로 쟁인 모습이 자못 의연해 보였다.


잠시 옷깃 다듬고 청음(淸陰)에 들듯 아득한 과거의 장(章)으로 조요로이 들어섰다. 메마른 것 같으면서 적당한 온기 품은 실내는 간접 채광으로 어둑신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언어의 고리로 말간 유리틀 속에 조명을 받으며 음전히 앉아 있는 빛나는 긍지와 위대한 자존. 빗살 무늬 토기 조각에서부터 섬세한 당초문의 동경(銅鏡)으로 이어지며 시대별로 구분되 가지런히 자리한 선인들의 자취가 봄볕만큼이나 정겨웠다.


그중에도 내게 조촐한 감동의 파장을 일구는 건 도자기와의 만남에서였다. 빼어난 솜씨로 맘껏 기교 부려 빚어낸 청자에서는 귀티가 난다. 유연한 몸매와 비색(翡色)이라 일컫는 깊고 그윽한 빛의 품격은 절로 감탄사를 일궈낸다. 그에 비해 우리네 민요와도 같이 사뭇 유정스러우면서도 담박한 맛을 풍기는 것은 백자이다.


백자는 내 어릴적 청솔가지 지핀 연기로 꺼멓게 그을린 부엌 한켠 시렁에 얹혔던 그릇들과도 닮아 있다. 수수로이 상에 오르던 투박진 사발이거나 간장종지일 수도 있고, 깨소금 등속을 넣어둔 양념단지 같이 낯설지 않게 친근감이 가는 백자. 조선조의 청화백자는 참으로 순순하고 소박하다. 우리 민족고유의 생활정서를 자연스레 창출해 낸 그 편안한 태깔. 담담하니 맺힌데 없는 질박한 색이며 예사롭게 뻗어내린 간결한 모양새. 거기 아무렇게나 휘두른 양 자유로이 그려진 큼직한 모란과 연꽃의 푸른 잎. 누군가의 말대로 조작(造作) 이전의 미(美)이며 사고(思考) 이전의 미(美)가 백자의 멋이라던가.


오늘 나의 시선을 오래 붙잡은 것은 ‘만(卍)’자 문양 연적과 문진 그리고 백자 투각 석류무늬 필통이었다. 여기에 문방사우가 갖춰지면 옛 선비의 정갈한 서탁에서는 홀연 묵향이 배어날 터였다. 그로부터 아 아, 댓닢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은파되어 출렁이는 달빛이 보인다. 서걱대는 바람과 은빛 무리 가운데 떠오르는 한 분의 영상.


봄이 오는 물오름달 그믐, 별떨기 사이로 떠나신 할아버지. 오래전 양지바른 선영 그 시원(始源)의 자리에 돌아가 계신 분. 빛나는 은빛 수염에 위엄있는 선비어른이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삼대(三代)의 가솔을 거느리고 안산 그늘에서 사셨다. 위 아래채와 사랑채가 딸린 큰 집은 빽빽한 대숲에 싸안겼었다. 육중한 나무 대문엔 위압하듯 묵직한 박쥐 쇠장식이 붙어 있었고, 늘 열려 있는 문옆 너른 광에는 디딜방아가 떠억 누워 있었다. 울안 마당 한쪽에 고목이 된 백일홍 나무 아래로 푸른 이끼 하늘거리는 샘이 있었는데, 매양 젖어있던 그 언저리에 때론 참새가 날아와 놀곤했다.


할아버지께서 기거하시는 사랑채는 마당을 질러 돌아 뒷문으로 통하는 곳에 호젓한 은자인 양 자리하고 있었다. 댓돌엔 한번도 흐트러진 걸 본적없는 할아버지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으며, 격자창 한지에 감돌던 정적 새새로 숲향기가 묻어났다. 할아버지가 계실땐 그 방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부득이 뒷문을 사용해야 할 경우조차 고양이 걸음을 해야했다. 이를테면 동산에 풋밤주으러 갈 때라던가 두엄에 재를 버리러 가던가 할적에도.


그때 언뜻 보이는 그분은 정좌하신채 붓글씨에 심취해 계시거나 돋보기 너머로 책을 보고 계셨다. 드물긴해도 어느깬 목침 베고 누워 시조를 읊기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무척 어렵고 근엄하신 분이셨다. 조심스레 자리끼 놓아 드리고 뒷걸음으로 나오면, 조신하니 참한 여식이라고 큰 칭찬도 혼잣말씀처럼 하시던 분. 그러한 할아버지는 우리집안의 정신적 버팀목이시자 하늘과 같은 어떤 신성마저 깃드신 것 같았다.


그 많은 설겆이 중에도 어찌 챙겨 할아버지 반상기는 따로 포개져 있었고 뽀얗게 빛나는 백통 수저는 할머니의 옥가락지나 은비녀보다 더 소중히 다루어졌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채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어릴때는 자주 대하지 못하고 스스럼없이 다룰 수 없는 것은 모두 다 대단해 보이기 마련. 손때로 길들어 반들반들 결무늬 얼비치는 문갑이 할아버지 머리맡에 있었다. 그위에는 용이 꿈틀대는 벼루와 십장생이 조각된 대나무 붓통이 있었고 파르스름한 거북모양 연적이 그곁에 놓였었다.


묵향속에 언제나 정(靜)을 감고 사신 어른. 말씀조차 크게 안하시는 엄격한 표정의 할아버지셨지만 맑은 정서와 고아한 심전(心田)을 홀로 가꾸는 분이셨다. 할아버지께서는 글만이 아니라 화초도 무척 아끼셨다. 사랑채 앞 화단의 백매(白梅)가 설화(雪花)이듯 하얗게 피어난 이후. 아직 차가운 바람결 마다 않으시고 문을 반쯤 연채 계실 적이 많았다. 명자나무꽃 곱게 피면 이제 봄이 완연하다, 하시던 어른.


안개처럼 자욱한 빗속에 만개한 작약이나 하늘하늘 피어오른 창포꽃을 세월없이 하냥 바라보시던 그분. 폭염 아래 이우는 석류꽃을 거두며 상사초가 긴 꽃대궁 올린 곁에서 손수 잡초를 뽑기도 하셨다. 치자가 꽃을 피워 향을 토하는 달밤이면 이슥토록 후원을 거니시는 기척이 들리곤 했다. 벽오동 잎들이 수런거리는 가을 밤. 국화는 그 얼마나 향긋하니 단아한 모습으로 할아버지를 모시던가.


나의 할아버지. 생을 관조하며 서두름없이 초연하시던 일상처럼 그렇게 여든을 사시다 가신 어른. 그 분의 향훈이 내 마음에 침윤되 한점 빛으로 남아있기를 바래본다. 그리하여 나도 조그만 빛의 둘레를 가지고 누군가의 가슴에 빛으로 남고 싶다. 시나브로 흐르는 세월의 물줄기 가운데 그래도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흔적으로.


이렇게 백자 앞에 멈춰 깊은 온고지정 속에서 할아버님을 기리며 수유(須臾)의 한순간 신춘보다 더욱 다사롭고 찬란한 빛의 교감을 느낀다.   《84 신춘》




온고지정, 백자와 청자, 청화백자, 백통수저, 옥가락지, 명자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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