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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싶다고요?
08/27/20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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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네에 사는 한인 부부와 만나 점심을 먹었다. 육십 초반의 그집 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 그에 대해 그집 남편은 불만이 많다. 은행에서 오래 근무하다 퇴직한 아내는 아직 충분히 일할만 하건만 불평한다고 못마땅해 한다. 둘이 진종일 집에서 마주 보느니 잠깐씩 바람도 쐬는게 좋지않냐며 내게 슬쩍 응원을 청한다. 우린 둘 다 할 수만 있다면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데요, 하자 남자는 별종이라는듯 빤히 쳐다본다. 실제 우리는 건강만 허락된다면 평생현역으로 살겠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아니 은퇴 뒤에도 일을 하고싶다고요? 노동이 형벌이란 뜻인 건 아시지요? 설마, 그럴 리가요...찾아 보니 맞긴 맞네.


노동이란 인간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활동 전부를 이른다. 한자 뜻풀이로 해석해보면 힘써(勞:힘쓸 노) 움직인다(動:움직일 동)는 뜻이 된다. 노동의 어원은 속박과 고문이다. 프랑스어 travail의 어원은 라틴어 tri-pilium(3개의 말뚝)이다. 이 '세 개의 말뚝(tripilium)'은 소나 말에게 편자를 박을 때 가축을 묶어 놓는 기구, 즉 말뚝을 이른다. 꼼짝없이 묶여버리는 속박, 그것은 노예의 족쇄와도 같다. travail이란 또한 형 집행인이 죄인을 고문하거나 형벌을 가한다는 말이란다. travail에서 노동하는 사람이란  단어 travailleur(노동자)가 나왔는데 travailleor(노동자)란 직공(artisa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을 집행하는 형리, 또는 산모가 진통 중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같이 괴로운 것들이다.<각 리포트 참조>


노동은,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고통스런 노역이라 비하시킨다. 동물들에게도 생존을 위한 노동활동은 필수다. 인간과 달리 동물에겐 생존을 위한 노동은 있지만 의미를 느끼기 위한 노동같은 건 없다. 심리학계을 이끈 비엔나 학파의 프로이드 후배 빅터 프랭클의 주장은 인간의 원초 욕구는 '의미에의 의지'라 하였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란 말에 나는 절대공감한다.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 정의하였듯 인간은 도구를 써서 노동하는 존재다. 도구와 기술로 자신의 의미와 사명과 생활을 조각해나가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렇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 활동을 통해 자기를 증명하고 표현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는 거 아닐지.


흔히 이런 말들을 한다. 노는 즐거움도 잠시, 시간이 진력나기만 한 은퇴자는 삶의 가치있는 행복 가운데 하나가 일하는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실직자는 아침에 출근할 곳이 있는 사람이 부럽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만큼 일하는 기쁨과 보람이 크기에 노역의 힘듦 자체마저 슬그머니 상쇄된다. 일을 계속 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는 각자 생각과 의지에 달렸다. 노년일수록 쓸데없는 근심 걱정과 스트레스로부터 놓여나기 위해서라도 일을 가져야하며 건강하기 위해, 활기찬 삶이기 위해, 품위있게 늙어가기 위해서도 일은 해야한다. 일을 노년의 다정한 친구이자 조력자 삼아 지낸다면 고독감 따위 들어설 자리란 없다. 결국 신이 주신 축복을 누릴 자격 여부는 자신이 선택하기에 달려있다. 


캘빈의 예정조화설에서 노동을 인간의 의무라고 규정하였다. 나아가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일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나 로마인에게 노동은 인간의 비참함을 표현하는 것일 뿐, 인간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게 아니었다. 조선조 사대부들은 땀흘려 일하는 자체를 경시할 정도가 아니라 아랫것들이나 하는 걸로 치부하고 천시해왔다. 그렇듯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노동은 고되고 힘든데다 고통스런 비천한 것으로 격하돼 주로 노예들이 도맡았다. 부정적 견해가 지배적이던 노동의 개념은 근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비로소 노동관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중세때 성당 신축 공사장에서 세 석공이 부지런히 끌질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세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거기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첫째 인부가 대답하기를 "보다시피 돈 벌고 있수다." 둘째 인부의 대답은 "돌 깎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인부가 대답하기를 "하느님 집을 짓고 있지요." 고된 노동이 아닌 보람과 긍지로 돌을 다듬는 그의 얼굴에는 틀림없이 천상의 미소가 서려있었을 게다. 아마도 그의 망치질은 가벼이 춤추듯 리드미컬하였으리라. 마찬가지로 마추픽추 일구어 나가던 잉카인들도 먼데서 돌 옮겨 나르고 일일이 다듬는 노동을 버겁다 여기지 않고 기꺼이 신께 자신의 일손을 봉헌했으리라.


만사 마음먹기 나름이다. 일을 꼭 수고스런 노동이자 밥벌이라 여기지 말고 세번째 석공같은 자세로 임한다면 노동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나이 들어 은퇴한 경우, 정기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적절한 취미활동이나 사회봉사 등 소일거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은 각처에 열려있다. 누구에게나 각자 나름대로의 재능과 은사를 하느님은 주셨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에 맞는 일을 할때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충족감을 느낀다. 자기가 좋아하고 보람과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면 누구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그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노동은, 일은 축복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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