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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샌루이스 레이ㅡ등꽃에 취하다
10/14/2018 00:30
조회  2234   |  추천   17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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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샌루이스 레이에 닿은 것은 등꽃 향그러운 오후였다.

  주렴처럼 늘어진 연보랏빛 꽃송이들이 등꽃의 꽃말대로 나를 '환영'하며 맞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꽃그늘 아래 서니 한나절 봄꿈과도 같았던 범어사의 환상적인 등운곡이 떠오르고 경주 현곡이 생각났다.

현곡에 가면 수령이 수백년은 됨직한 천연기념물 등나무가 사연을 안고 서있다.

신라시대 서라벌에 어떤 자매가 하필이면 한 낭도를 똑같이 애모했다고 한다. 

전쟁터에 나간 화랑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한 자매는 근처 연못에 함께 투신하여 등나무 두 그루로 선다.

전사한 줄 알았던 낭도가 살아 돌아와 그 사연을 듣고는 그 역시 못속으로 스러졌는데 그 자리에 팽나무가 자라났다.

      우람한 팽나무를 사이에 두고 실제 등나무는 서로 얼크러 설크러져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나눈다는데.. 

이렇듯 세상 이치를 거슬러서인지 등나무만은 여늬 덩굴식물과 달리 지금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간다던가.

등꽃에 나른히 취해 미션 앞에서 생뚱스레 전설따라 삼천리를 읊고 앉았다. ㅎ


 이 미션의 정식 명칭은 Mission San Luis Rey de Francia.

스페인 풍과 바로크 스타일이 혼재된 단정하면서도 위엄어린 건축양식으로, 

높은 천장에 자연채광 창을 두었고 벽과 기둥에 아라베스크 문양을 그려넣었으며 바닥재는 테라코타 타일이다. 

 프랑스 왕 루이 9세 (1215-1270)를 기리기 위한  미션은 18번째로 페르민 라수엔 (Fermin Lasuen)선교사가 건립하였다. 

라수엔의 후계자인 앤토니오 페이리 신부에 의해 절정기를 맞는데, 34년간에 걸친 그의 재임기에 최고의 번성기를 구가했다.

캘리포니아 21개 미션 중에 가장 방대해 2만 에이커의 대지에 교회 구조물만도 6에이커에 달했으며 

원주민 개종자 수가 3천명을 헤아렸을 정도로 지역 인구가 제일 많았던 미션이기도 했다.  

루이 9세는 모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며 그리스도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기에 

성왕으로 불리웠으며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다.

 몸소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그는 임종시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라면서 숨을 거두었다 한다

루이 9세는 프랑스왕 중에서 유일하게 시(諡聖) 왕으로 추앙받고 있. 

미션 샌루이스 레이가 ‘미션의 왕(King of the missions)’으로 불리는 것은 위 두가지 이유를 아우른 까닭이 아닐까 싶다.

 



거의 대부분 미션이 그러하듯 미션 샌루이스 레이의 역사 또한 다른 미션과 엇비슷한 경로를 밟는다.

프란체스칸들이 열정적으로 선교활동을 펼치던 초창기 미션 샌루이스 레이는 
관개 수로를 연결해 야외 lavanderia (세탁장)를 갖추고 사제관, 장교 병영, 거주자 숙소, 장식적인 긴 테라스를 만들었다.   
 Kristi Hawthorne 오션 사이드 역사학회 회장의 기록에 따르면 
매일 아침 일출시각에 맞춰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모든 사람들을 깨워 기도실에 들어가게 했다. 
기도시간이 끝나면 보리와 여러 곡물로 만든 수프인 Atole을 먹고 각자 직분에 따른 작업을 시작했다. 
남자들은 어도비를 빚어 집을 짓거나 농지를 개간해 오렌지, 포도, 밀, 대마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고 목축일을 거들었다. 

여자들은 천을 짜 옷을 만들거나 비누와 양초를 만들고, 채소밭을 가꿨다. 

점심 종이 울리면 콩과 완두콩을 넣어 끓인 수프인 pozole을 먹고 오후에도 다시 노동을 해야했다. 
엄격한 규율에 매여 사는 그들은 자유분방한 부족 생활을 못잊어 종종 탈출을 시도하다 되잡혀오기도 하였다.
스페인 군인들은 미션 앞에 망루와 막사, 장벽이 있는 병영을 만들어 미션 전체를 간접적으로 보호 감독했다. 
멕시코 독립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이 철수하자 멕시코 정부에 의한 세속화 조치로 미션은 파란만장의 운명으로 떨어진다.

1833년 세속화 조례가 발효되고 1835년 모든 미션이 세속에 넘겨지므로 영광의 날은 이 났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북가주쪽 미션은 거의가 사령관 바예호장군이 차지하고, 남가주쪽 미션은 주지사였던 피코 일가의 재산으로 사유화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역사의 격동기에 혼란을 틈타서 행해지는 일부 권력자의 파렴치행위, 

바예호와 피코의 가렴주구 농단(壟斷)은 1846년 무렵 집중적으로 이뤄져 미션을 통째로 말아먹어 치웠다. 

그 얼마후 미국과 멕시코 간의 전쟁 때인 1846년부터 1848년 사이 미군 막사로 징발되었으며, 

이후 1857년까지 몰몬 대대의 병영으로 쓰였다.


   마침내 1865년 들어 링컨대통령이 모든 알타 캘리포니아 미션을 가톨릭교회로 귀속시켰다.

하지만 오랜 방치기간 동안 성물과 종은 탈취당하고 분수대며 주요 건축자재 거의가 뜯겨나가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한 미션.

  1893년 아일랜드 출신인 조셉 예레미야 오 키프 (Joseph Jeremiah O'Keefe)신부가 사명감을 떠안고 부임해서 

여러 계층의 조력자들과 함께 본격적인 재건과 복원작업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1905년 비로소 허물어진 성당을 반듯하게 완성시키므로 과거의 영광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란체스코 수사들을 위한 샌 루이스 레이 신학교가 1950년 개교해서 1969년까지 이어졌다.

성조기, 캘리포니아주기, 멕시코국기가 게양대에서 나란히 펄럭대는 그 뒷편은 샌디에고 최고(最古)의 세미트리.

성당 옆 박물관에는 주방과 작업장 및 침실 칸이 재현되어 있으며 약간의 제례용품들 외에 

미션 초기 흑백사진들이 옛영화를 반추하고 있다.

미션 마당에 선 큼직한 분수대와 잔디밭 저 아래로 건너다 뵈는 무너진 벽돌 무더기는 병영의 규모를 가늠하게 해준다.  

하얀 성모상이 감싸안듯 한 리트릿 가든에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묵은 원조 Pepper Tree(열매:항균성 소독재)가 서있

열을 지어 늘어선 수사들의 거처 앞에는 철따라 피고지는 꽃들이 하늘 향해 경배드린다. 

오늘날 프란체스칸 수사들은 이곳에서 여전히 사역하며 미사 집전하고, 기도올리며 여기서 살아가고있다. 

 그밖에도 미션 샌루이스 레이는 일반인과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피정센터 운영을 정례화하고 있 한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일인 성금요일, 유일하게 미사가 없는 날이다.

오후 3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고저 서둘러 포스팅을 마무리 짓는다.

 


본관 정문 위에 높직히 선 미션의 수호 성인인 Louis IX의 동상















시계 방향으로 1: 미션성당의 Modonna Chape 앞 성수대. 

2:  성체 현시에 사용되는 전례 용구. 

3: 십자가와 대축일 예식용 사제 제의들. 

4: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샌디에고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세미트리 입구. 

5: 출입불허인 철망 너머 미션 내정의 분수대. 

6: 미션 입구 벽감에 세워진 벽돌덩이로 조각된 세라신부상.






   

주소: 4050 Mission Ave. Oceanside

http://www.sanluisre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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