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bell
촌장(kubell)
한국 블로거

Blog Open 07.15.2012

전체     658883
오늘방문     122
오늘댓글     2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친구 새글 더보기
  달력
 
산사태 현장에서 떠오른 얼굴
07/31/2020 20:35
조회  294   |  추천   9   |  스크랩   0
IP 121.xx.xx.207






장마기간이 꽤 길게 이어졌다. 지역적으로 집중호우도 쏟아부었다.

지반이 약해진 상태라 이럴때 토사유출 피해가 곧잘 발생한다. 산비탈이 무너져 내리며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

무심코 해파랑길을 걷다가 우연찮게도 산사태가 난 바로 곁을 지나가게 되었다.

도로를 내면서 생긴 절개지 경사면이 유실되며 벌건 황토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근처 초목들은 흙더미에 휩쓸리며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이미 기나긴 장마로 각지의 피해가 어마무지하다는 중국과 일본은 홍수는 물론 산사태로 인명피해도 많았다.

장마철이면 한국에서도 산간지방에 산사태가 발생, 마을을 통째로 삼켰다느니 졸지 일가족을 덮쳤다는 뉴스 접하곤 했다.  

도로변에서 처음 본 산사태 현장은 일단 사고를 어느 정도 수습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선혈처럼 붉게 드러난 황토와 마구 찢겨진 나무줄기에 더해 굉음 울리며 산 한자락이 무너지던 순간을 떠올리니 절로 오싹해졌다.

사고가 난 바로 그 순간, 도로를 지나던 차량이나 없었으면 불행중 다행이겠다 싶을만치 노변까지 어지럽혀진 황토 흔적은 을씨년스럽고도 험했다.

장마기간 동안 산사태로 도로통제 된 곳도 전국에 여럿인데 비하면 안전조치로 라바콘을 세워 둔 정도는 그나마 경미한 사안이겠지만. 

인생사 나아가 세상사 모두 생겨난 존재 그 무엇이나 형태 다를지라도 삶의 질곡에서 자유롭지 않기는 매일반이라 측은지심이 드는 거라고 했다.

때론 생사 가르는 사고를 간만의 차이로 모면하기도 하는가 하면 저 나무들처럼 바로 그 자리에 우연히 뿌리내렸던 까닭에 모진 횡액을 당하기도 한다.

눈에 익은 그곳은 잡목숲 조밀하고 더욱이 칠월 녹음방초 우거진데다 특히 칡덩굴 녹색벽은 철옹성같은 느낌을 평소 주었다. 

그런데 무너져 내린 중심부에 단단한 자연암석까지 버티고 있기에 산사태 원인이 의아스러웠다. 

알고보니 폭우가 쏟아져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면서 반반한 암석 표면으로 미끄러져 내리거나 암석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가 바위를 쪼개지게 하면서 산사태를 유발시키기도 한다고.

요즘들어 기후변화에 따른 대기 불안정으로 무섭게 퍼붓는 물폭탄은 몇십년이 된 재해방지시설을 무력하게 만들기 일쑤다.

이런저런 사유로 자연재해인 산사태를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이튿날 걷다보니 사태난 곳은 응급조치 삼아 가림막을 씌워 놓았다. 

산비탈 복구 공사는 아무래도 장마가 끝나야 시작되지 싶다. 








                                                                                                                        <무성한 칡덩굴과 칡꽃>


서울에서 학교다닐 때 셋째삼촌집에서 기거했다.

60년대 후반, 건축사인 삼촌이 결혼하면서 구입한 종암동 집은 뒷쪽에 옹벽이 높다랗었다. 

언덕배기 집도 아니건만 층층논처럼 주변에 계속 택지가 조성되며 집이 들어서고 있던 때라 그랬던가. 

축대를 쌓고 그위에 집을 짓고 또 지어대던, 이를테면 신흥주택단지로 각광받던 종암동이었다.

예나 이제나 장마철은 장기간에 걸쳐 지루할 정도를 넘어 지겹도록 비가 내린다. 

폭우로 도로가 침수되기도 하고 축대가 무너지는 등의 비 피해는 해마다 반복된다.

저기압에 의해 국지적으로 많은 비가 내릴 즈음이면 삼촌은 각별히 기상청 예보관의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장마철에 접어들면서부터 안그래도 신경 예민한 삼촌은 신혼의 밤잠조차 설쳐야 했다.

뒤란의 축대 걱정으로 밤에는 자주 가위눌림을 겪으며 잠자다 말고 몇번씩 후레쉬를 들고 직접 축대 주변을 점검하고 나서야 안도했다. 

낮에는 낮대로 전화를 자꾸 걸어대 성가신 숙모는, 인물 훤한데다 세밀한 성격이라고 좋아했던 장점을 과민함에 더해 강박적이라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적당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 석조 축대는 난공불락의 성벽처럼 견실하고 탄탄해 보였으나 삼촌 눈에는 영 못미더웠던지 폭우라도 쏟아질라치면 폭포수처럼 석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빗물을 보며 끌탕을 하곤 했다.

속히 이사해야지를 입에 달고 살던 삼촌은 남다른 안목이 있었거나 정보가 밝았거나 암튼 발빠르게 강남행을 선택하며 종암동을 떠났다. 

복마전과도 같은 서울시장 자리에 정권 실세 구자춘씨가 재임중일 무렵의 일이었다. 

그후로도 부산 수정동이나 영도 신선동을 지나가며 축대있는 집을 볼적마다 자동으로 떠오르던 수년 전의 종암동 삼촌집.

이번 산사태를 바라보고 있자 홀연 떠오르는 삼촌 얼굴, 노주현과 비슷한 모습에 다혈질이었던 성격 탓인지 삼촌은 혈압으로 이미 작고하신지 한참된 옛분이다. 

  

 

"행화촌 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산사태 현장에서 떠오른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