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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우라지 소회
07/10/2020 05:00
조회  375   |  추천   9   |  스크랩   0
IP 121.xx.xx.207



지난 유월, 녹빛 아찔한 동강을 따라 정선 아우라지까지 갔었다.

개망초 하얗게 피어난 아우라지 둘레길을 걸어보고자 함이었다. 

조선조 사대문 안에 궁 지을 최상의 목재감은 백두대간 인근에서 구했다던가.

벌채한 금강송은 통나무끼리 엮어 만든 뗏목 타고 천리 물길 남한강 흘러흘러 한양성에 이르렀다.

그렇듯 산 높아 골골마다 숲향기 청청한 강원도는 힐링의 땅이다.

자연이 무상으로 베푸는 시혜, 한갓지게 며칠 머물기만 해도 절로 숨길 맑혀지는 정선 동강따라 닿게 된 아우라지다.

평창 발왕산에서 비롯된 송천과 태백 대덕산에서 발원해 큰 내 이룬 골지천이 합류하는 지점.

두 물줄기가 하나로 어우러진다 하여 순 우리말 아우라지로 불린다.

그 합수머리에 묵직하게 놓여진 징검다리는 기장대한 장정 덩치보다도 더 우람스럽다.

억수장마 지는 여름철 행여 물살에 떠밀려갈까 저어되어서다. 

징검다리 타 송천 건너면 아우라지 처녀상 눈길 유독 아득하다. 

푸르름 깊어가는 강물과 산빛 조응하는 저 멀리를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며 

애연하게 호소하는 거기서 아우라지 노랫가사는 저절로 태어났으리.  

당시 요모조모 담아둔 사진을 다 잃어버려 동행이 찍어준 사진으로 분위기 대신 전하게 돼 유감스럽다.

정선 아리랑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이며 아리랑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문화유산이다. 

  젊디젊은 날 무슨 고뇌 그리 깊어 정선아리랑에 심취했던지 모르겠다.

한서린 그 가락이 하도 처연해 

일찍이 <주렴을 반쯤 열고>란 글에 설익어 풋된 소회를 적어 두었다.

그 표제는 첫 산문집 이름이 되기도 했다.

서른 여섯 고개를 넘어가던 88년도 일이니 물길처럼 흘러 간 세월 어언 삼십 수년.

그때를 회억하고자 울울창창 산길 구비구비 돌아 찾아간 아우라지일지도....




 

주렴을 반쯤 열고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엉클어진 가시덤불 헤치고 불원천리 허위단심 그 님을 찾아왔건만…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끈끈이 감겨오다 자지러드는 가락.

굽이굽이 재를 넘고 숨가삐 흐느끼는 듯한 소리.

조였다 푸는 장단만으로도 구성진, 그러나 한을 토해내듯 한 정선아리랑이 흐른다.

은근한가 하면 사뭇 절규하듯 애간장 녹이고 구슬픈 듯 하면서도 천연스러운 엇모리 장단에

낭창거리면서 구비치는 특유의 가락, 정선아리랑.


 

사는 일이 문득 힘겹다 여겨질 때가 있다. 목에 찬 슬픔을 쏟아 붓고 싶을 때가 있다.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허허함에 왠지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하고자 하여도 수없이 옭아매는 제약에 발목잡혀 질식할 듯 숨막힐 때가 있다.

하여 바람이고 싶고 흐르는 구름이고 싶으며 얼레 벗어난 연이고 싶으며........

가끔 악몽에 시달릴 적도 있다. 황량한 모래벌판을 쫒기는 꿈.

아무리 기를 쓰고 달리려해도 걸음이 옮겨지지 않으며 자꾸만 늪에 빨려드는 듯한 무력감.

흥건히 땀에 젖은 채 가위눌려 허우적대는 애타도록 허망한 몸짓이 평소의 나였으니.

  


끝모를 갈구 갈증 갈망. 조그만 몸 하나 무게를 한결 웃도는 탐심(貪心). 미완(未完)의 환상,

그 허명(虛名)에의 집착.

이 모든걸 빈 껍질로 남기고 종내 나의 부화(孵化)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목마른 갈증을 부채질하는 혼탁한 욕망. 그로 인한 부질없는 안간힘만이

오기처럼 곧추선 채 먼 하늘에 닿아 있는 나.

 


하늘을 날고 싶다. 진정 구름이 되고 싶어진다. 무한히 자유로운 한 점 구름이 되고 싶은 것이다.

비록 덧없이 흔적조차 남김없이 짧은 순간에 스러져버릴 구름일지라도

아-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생활의 구속, 애증의 질곡마저 모르는 걸림없는 자유를 꿈꿔본다.

허나 저마다 지닌 한 생명 질 때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그 본래 면목으로 되돌아가는 것.

흙이 되고 물이 된 어느 날 홀연 바람따라 하늘로 오르면 두둥실 구름이 될 수 있는 것을.

  


그것을 기다리는 잠시의 생마저 때로는 눅눅히 장마비에 젖은 양 못내 지리할 적이 있다.

또는 자의식의 반란, 그 회오리치는 혼란으로 멀미마저 느낄 적이 있다.

이룬 것 없고 지닌 것 없으며 내세워 자랑할 게 없기에 얼마나 비참해 했던가.

혼자만 밑지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억울해 한 적도 많았다.

그럴수록조급증이 나면서 이게아닌데 싶어 헛손질도 숱하게 했다.

아무리 허세를 부려봐도 결국은 맞닥뜨리게 되는 본질적 한계 앞에 자꾸만 추레하니 주눅들수록

자신에게 얼마나 화를 냈던가.

 


그뿐 아니다.

일상의 타성에 비끌려 매인 채 어떤 물결에 하릴없이 떠밀려 흐른다고 여겨질 적도 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내 의지에 반해 그저 어영부영 따라가는 경우도 흔하다.

의사 분명히 손 내젓고 고개 꼿꼿이 세워 흔연히 털고 일어서지 못하는

어정쩡함엔들 또 얼마나 분노를 느꼈던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날 넘겨 주오. .....

그럴 때 나는 정선아리랑을 방 가득 방류시킨다.

하여 그 물결에 취해 맺힌 가슴을 풀어본다.

안으로만 빗장 열린 채 탁 트이지 못한 성정으로 인한 중증(重症)의 병이며

켜켜이 앙금진 한까지도.

고통과 슬픔과 절망이 핏빛 응어리로 가슴에 침전됨을 한이라 이르던가.

하긴 정(情)이 깊어야 한(恨)도 깊은 법. 내게도 연연한 정한에 뼈아픈 통한이 서렸는가 하면

초승달같은 시린 원한도 한두 자락 있겠고 두고두고 사무치는 회한인들 왜 없으랴.

가슴 속 이랑마다 결다른 한의 물살.


 


스스로도 갈피 잡을 수 없이 이골 저골로 흐르는 속마음 읽으려고 나를 잠시 열어본다.

그러나 활짝 펼쳐 속속들이야 내보일 수 있을까. 주렴을 반쯤 열 듯 그렇게만 연다.

외형은 유순한 표정을 지닌 개성없이 지극히 평범한 한국인.

거기에 예민한 듯 깡마른 채 작으마한 서른 일곱의 여자.

그리고 준우 엄마, 은진 엄마라 불리우는 시정의 범속한 아낙이다.

 


말수 적고 고집이나 주장을 내세움도 적으며

도무지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이거나 개방적이질 못한 여자.

본디 타고나길 정(淨)을 좋아하고 정(靜)을 아끼며 정(情)에 무른 품성이다보니

이지적이기보다 감성에 쓸리는 나란 여자.

그러나 고요 속의 격동, 안식 속의 변화를 꿈꾸는 여자.

루이제 린저의 니나를 사랑하고 서머셋 모옴의 스트릭랜드를 지독히 사모하는 모순 투성이.



 아 아, 나는 누구인가. 곧잘 자기류에 빠져 우쭐대다가 자가당착에 걸려드는 나는 누구인가.

남못잖게 자존의 벽은 높고 자긍의 담은 두터우나, 외호(外護)해 줄 직위도 부도 명예도

갖춘 바 없다보니 늘 허기가 지는 걸까. 이리 고통받고 아픔 느끼는 걸까.

여전히 굽이쳐 흐르는 정선아리랑.

대금이며 아쟁, 가야금까지 한데 얼려 빚어내는 한서린 가락에 흠씬 취한 채 재를 넘고

어느 성황당쯤에 널부러져 목에 찬 탄식과 서름 말끔히 쏟아 비우면 가슴 한결 후련해지리니.



카타르시스. 그렇다.

정선아리랑은 맺힌 응어리를 풀고 혼탁해진 마음을 맑혀주는 정화제인 것을.

해서 세례받은 영혼이듯 나는 드디어 빛과 만나고 밝음과 손잡는다. - 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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