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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 마실가기
01/02/2020 18:00
조회  675   |  추천   12   |  스크랩   0
IP 121.xx.xx.44

전면 내용이 시멘트로 뭉개진 왜인 송덕비, 나무가 돌이 된 나무화석 규화목은 진짜 귀골풍이더만유

워떠유? 동백꽃 한송이 따서 머리에 꽂으면 누구라도 나비부인 쵸쵸상이 되고두 남겄

근대역사관 좌측 건물 앞의 석등과 일본인들이 정원에 즐겨심는 남천이며 왜단풍나무, 그네들이 일본색 은근 풍기드라구유



왜색이라며 벚꽃에 과잉반응 보낼 거 없는 거이, 오얏꽃은 이씨조선의 문장이기두 허구 이화학당 상징이잖나베


중국 자금성가서 치파오 입어본다구, 도쿄가서 기모노 입어본다구 정신상태 어쩌구 괜히 장난삼아 허는 짓에 딴지걸기없기유 

모두 口(입 구)자가 들어가는 유오지족의 뜻은 '오직 나는 족함을 안다'로 이건 추녀 아래 땅 패이지 말라고 둔 물받침대래유. 

가파른 계단따라 구룡포공원으로 올라가면 어수선한 가옥과 전설줄 너머로 구룡포 앞바다가 한눈에 안겨들더라구유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란 푯말과 함께 드라마 주인공 스냅사진들이 벽면을 장식했던디 연속극 안봐서 내용은 잘 몰러유




고리씨네 집인가 본디 아는 이는 아닝께 색안경 끼구 볼 거 읎슈, 글씨체가 참해서 걍 찍어봤슈



















신년 벽두부터 일본 나들이라두? 아녀유.

죽창가 부르는 패거리들헌티 욕 먹을 짓 자초허겠나유. 그짝편 좌장이야 슬쩍꿍 사케는 마셔댑디다만. 

여러모로 민감헌 시기에 눈치코치없이 일본 놀러간다믄 친일파니 토착왜구 소리 듣기 십상 아닌가베유.

허기사 기분은 마치 부관페리 타고 스르르 오사카에 내려진듯 헙디다. 

가까운 교토 어느 거리를 걷는 착각이 들만치 일본식 가옥들이 줄지어 골목을 메우고 있었거든유.

호미곶등대 구경갔다가 덤으루다 구룡포에 있는 일본식 마을을 댕겨올 수 있었네유.

이곳, 구룡포 읍내 장안동 골목은 일제시대 일본 어민들이 이주해 정착한 일본인들의 거류지였대유.

1883년 조선과 일본이 조일통상조약 비슷헌 걸 체결한 후 일본 어선이 왕래하기 시작한 이래 고등어, 고래, 등 어류떼를 따라 많을 적엔 9백여척의 일본배가 구룡포 앞바다에서 출항했었대유,

일제 강점기 당시 풍부한 어장으로 일본 어민들 유입이 급속히 늘면서 일본인 상인의 정착도 이루어졌대나봐유.

1920년 즈음 가장 많을 때는 300가구까지 있었다는디 그렇다보니 요릿집이며 찻집, 목욕탕, 백화점, 은행, 사진관, 소학교와 우체국도 생겼다는디유.

고깃배를 띄워 풍요가 넘쳐나던 구룡포에 주소지를 둔 일본인만 1천명에 이르렀다니 대강 상상이 가잖나베유.

일본 어느 마을인가 싶은 전형적인 일본인 가옥거리, 혀서 오래전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 촬영지로도 쓰였다 하네유.

지금은 일본식 가옥이 47채 남아있구유, 집집마다 거지반 관광자원이 되어 카페나 음식점이니 복고풍 잡화점을 열었더라구유.

동네 요지에 자리한 구룡포근대역사관은 가가와현에서 건너온 하시모토 젠기치의 집을 정비해 전시관으루 활용하고 있더만유.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전수 운반해다 지은 2층 목조가옥인디 안방에 조상을 모신 불단, 난방기구까지 갖춰져 있었어유.

원래 이 집 쥔장은 생선운반업으루다 크게 돈을 벌어 부를 쌓았으며 구룡포어업조합장을 지냈다나봐유.


구룡포공원 오르는 언덕은 꽤나 가풀막지데유. 

층계 양옆에 석비가 좌악 도열해 있는 게 한눈에 딱 왜넘들 신사 자리드라구유.

꼭대기 최고 전망좋은 위치에 구룡포 방파제를 축조한 공으루다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란 걸 일본인들이 세워줬대유.

본국에서 거대한 규화목 아주 잘 생긴 암석을 가져다 비를 만들었는디 해방 후 시멘트로 덧칠해뿌려 내용을 삭제시켰드만유.  

조선총독부 건물처럼 냅다 뽑아 던져뿐지지 않구설랑 그냥 세워두구 오고가는 이들, 뼈아픈 역사를 상기하게 하는 것두 후대들에겐 좋은 각성제가 되지 않겄슈.

아홉마리 승천하는 용 조각으루다 기를 눌러놓구설랑 그외의 일제 잔재는 싸그리 뭉개버리구 대신 충열각을 세워놨드라구유. 

꿈이여, 다시 한번! 고래잡이 배가 드나들던 과거의 영화가 재현되고 있는 구룡포.

구룡포의 전성기였던 1920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어선과 조선 어선들이 모여 들어 성시를 이루던 어항이었잖어유. 

장생포와 함께 1947년까지 고래잡이가 성행했다가 고래잡이 중단 이후 90년대 들어 청어(貫目魚)로 과메기를 가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든 구룡포 어민들. 

처음 발걸음해 본 자그마한 어촌 구룡포엔 기대했던 것 이상으루다 볼거리가 많았는디유.   

알고봉께 작년 연예대상을 휩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무대도 여기라 주인공이 살던 집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더군유. 

그 언덕배기 산동네에서는 여적 구공탄을 때던디 연탄 리어카 겨우 드나들만치 궁색스런 골목길은 어찌나 구불구불허던지유.

부둣가 하루 품팔이 삶, 그나마 비오면 공친 날이니 하루하루 고단허게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 주름골 깊은 얼굴 같더라구유. 

뭔 내용인지 궁금혀서리 슬슬 유튜브에서 연속극 동백꽃 야그나 찾아봐야 겄네유. 

인기 초절정 국민 드라마였다니 괜한 명성이야 날 리 만무, 아마두 영상에 빠져 하루가 술술 가버릴 거 같은 예감이 드느만유. 

                                                                                                                              <바닷가 오두막 일기 2>

 

구룡포근대역사관. 구룡포공원, 일본인 거류지. 동백꽃 필 무렵, 여명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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