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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변 거닐며
11/29/20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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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이기조차 한 건축물 DDP는 옛 동대문운동장에 들어선 서울시의 복합 문화센터다.

디자인 정보교육장과 컨벤션 시설인 DDP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ongdaemun Design Plaza)의 약자이면서 

꿈꾸고 만들고 누린다(Dream, Design, Play)란 의미를 내포, 예술 역사 문화를 한데 아우르는 공간이다.

연착륙한 우주선같기도 한 이 건축물은 국내 공공건물 최초로 3D 첨단기법을 이용해 설계됐다.

이라크계 영국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서울을 둘러싼 성곽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으며 2013년 3월에 개관하였다.

여성으로는 처음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수상한 그녀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요소가 혼재된 스타일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혁신의 아이콘이라 알려져있다. 

사방 어디나 직선뿐인 삭막한 도심에서 물 흐르듯 유려한 곡선이 주는 웰빙효과는 곧 편안한 자연을 떠올려 주기 때문인가.  

뉴욕타임즈가 2015년 DDP를 '꼭 가봐야 할 세계 명소 52곳' 중 하나로 선정한 건축물이다.

DDP는 외관부터 유선형으로 독특했으며 은색 알루미늄 외장패널은 신선하고 경쾌했다.

청계천변, 대형도매시장 등 건축지 인근의 낙후된 이미지를 고급화시켰다는 평가도 나왔으나 

실제 동대문시장이나 광장시장통 같은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DDP가 서있는 장소는 옛 경성운동장 터, 훗날 이름이 바뀌어 동대문운동장으로 불렸던 그 자리다.

1925년 조선총독부가 히로히또 결혼기념으로 경성운동장을 세우면서 축구장과 야구장을 만들때,  

동대문에서 남산으로 연결되던 한양도성 구간을 단숨에 깎아내고 생활터도 간단히 매몰시켜 버렸다. 

사적 제10호가 된 서울성곽은 1396년 조선 개국시 궁궐과 종묘, 관청, 성안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도읍지인 한양을 둘러싸는 성을 길다랗고 튼튼하게 쌓았었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 조선의 혼과 맥을 모조리 멸절시키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던 일제였다. 

당시 운동장을 세우며 무차별적으로 마구 파묻어버린 유물들이 운동장 철거후 대규모 발굴조사 결과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전기와 후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만들어진 집터와 백자, 분청사기 등 매장문화재 천여 점이 

동대문운동장 철거 당시에 무더기로 출토되며, DDP 건설공사 자체마저 역사훼손 논쟁 파도에 거세게 휘말리기도 했다

특히 훈련도감 분원인 하도감 등 관청터와 물길을 조절하는 수문터를 비롯 화약과 무기제조터 등등, 

그중에도 집중적으로 매몰시킨 군사/국방과 관련된 도성의 역사자료들이 공사장에서 일목요연하게 태양아래 노출되었다.

경성운동장 지하에 조선역사를 폐기처분시킨 일본국, 야구경기에 빠져 관중석에서 철없이 열광하며 발 구르던 우리였다. 

그들은 내심, 자기네 역사유적지를 멋도 모르고 오지게 밟아 뭉갠다며 악마같은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앨런 포의 단편 '검은 고양이'처럼 포악한 광기로 살인을 저지른 남자는 검은 비밀들을 벽 안에 봉인시키나 결국 들통났다.

그처럼 꼭꼭 땅속 깊이 파묻어 둔 일제의 만행들도 결국은 백일하에 전모 고스란히 드러나고야 말았다.

한편, 베수비오 화산재 아래 순식간에 파묻힌 폼페이는 수 세기만에 우물 공사로 세상에 알려졌다지만 불과 백 년 전 일인 

운동장 공사 당시, 현장을 직접 보았을 사람들 다수 있으련만 왜 오랜동안 그 사실에 침묵했던걸까.

운동장 철거작업으로 발굴된 유물과 유적을 보존코자 만들어진 역사문화공원은 시간여유가 없어 뒤로 미뤘지만

불원간 하루 일정을 잡아 다시금 동대문을 찾아 유적터 꼼꼼히 둘러보기로 작정하였다. 

조선땅을 짓이긴 일본넘만 욕하랴, 힘 잃으면 언제라도 똑같은 전철 밟게됨은 세계 모든 역사가 증언하듯

이만큼 키워놓은 나라를 이념으로 분열시켜 덧없이 국력 진시키는 오류는 더이상 범하지 말았으면.   

DDP를 직접 둘러본 소회는 문화 허브로서의, 관광명소로서의 직분은 차치하고라도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잃어버린 과거의 퍼즐을 맞춰 역사를 복원할 수 있었다는 점과

일단 동대문의 또다른 랜드마크로서 시선을 사로잡는데는 성공한 사례가 될 거 같았다.

비록 추억어린 동대문시장 도로변의 헌책방가는 사라졌어도 

삼일고가도로 밑으로 복개된 청계천이 아니라 다시금 맑은 물 흐르고 징검다리 놓인 천변을 걷는다는 게 퍽이나 흔쾌스러웠다. 

담쟁이마저 바싹 메말라버린 계절인데다 희뿌연 미세먼지로 청명한 대기는 아니었으나

인근의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광장시장까지 둘러 볼 짬이 없어 아쉬웠지만 청계천변 산책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1902년 국내 최초의 근대시장으로 개장한 동대문시장은 원하는 건 뭐든 찾을 수 있는 쇼핑천국으로

각국에서 서울을 찾아온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필수코스로 들린다는 곳이다.  

그보다 나는 포장마차가 있고 행상들의 좌판이 죽 늘어선 먹자골목을 언제이고 구경해보려 한다. 

맛집으로 소문난 버젓한 음식점 말고, 먼지 나는 시장터 길거리 행상의 좌대가 지금도 있으려나?

보세 옷가지며 개구멍으로 흘러나온 구제품 팔던 깡통시장은 아직도 있으려나?

 




<DDP 알림관 컨벤션 내부시설>

<DDP 내 유적 발굴 구간 보존지>

<물 맑은 청계천 징검다리>

<초겨울 소슬한 기운이 감도는 천변 산책로>

 


<다리에서 내려다 본 초겨울 오후의 청계천>

<아들과 더불어 잠시 망중한>

DDP, 동대문, 청계천,을지로,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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