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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지나간 자리
10/11/2017 12:00
조회  810   |  추천   24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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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탑뉴스가 캘리포니아 최대 와인 산지인 나파밸리에서 발생한 화재 소식이다. 자연 발화일 가능성이 높은 산불이 나파밸리에서 시작, 건조한 숲을 훑으며 강풍을 타고 와인 농장과 시골 마을을 초토화 시켰다 한다. 자연재해 앞에 유구무언,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피해가 적잖은 모양이다. 또한 나파와 소노마, 유바 지역 유명 와이너리들이 타격을 입었는데, 이번 화재로 최고 품질의 카르베네 소비뇽 품종 산지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 했다. 화재때 발생한 연기와 그을음이 포도의 맛과 향을 변질시킬 수 있어서이다. 

유정물이건 무정물이건 마찬가지다. 제 역할 다하고 명대로 살다 세상 마감해도 아쉬운데 도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옆에서 보기에도 딱하고 안쓰럽다. 경미한 사건이라면 액땜한 셈 치겠지만 한순간에 생사 좌우되는 경우도 적잖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불찰 탓도 아닌, 어쩌다 그 장소에 있다가 날벼락 맞은 경우라면 어처구니없도록 억울한  일.  산불이 덮치면 새들은 휘리릭 날아가고 사슴은 재빨리 도망치지만 초목들이야 속수무책,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없다그렇게 재만 남아도 허자연계는 반드시 되일어나 생명의 순환 멈추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시월은 바짝 말라버린 숲과 초원이 발화의 최고 조건을 제공,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이다. 지난 겨울 캘리포니아의 오랜 가뭄을 해갈시킨 폭우와 폭설로 산간은 어느때보다 풍요롭고 기름지다. 게다가 올여름따라 기승부린 폭염과 건조한 날씨로 인해 불이 났다하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번질만한 여건이다. 7월 말 요세미티 국립공원 남서쪽 마리포사 카운티에서도 대형 산불이 났었다. 국립공원까지 위협한 산불은 몇며칠 무섭게 세를 불려 드넓은 삼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바로 그 현장 일부를 지나가면서 보았다.

일전에 요세미티 동서로 관통하는 120번 타고 샌트럴밸리 프리웨이에 닿기까지 근 일곱시간여 산길 달렸다. 느긋한 유람객처럼 중간에 서너차례 쉬면서 가긴 했지만 나중엔 끝도 없는 숲길이 지겨울 정도였다. 실제 오가 패스 구간 지나고부터는 볼거리도 별반 없었다. 요세미티 밸리로 빠지면 몰라도 줄곧 한길을 달리다보니 바위산도 아닌 볼품없는 육산에 침엽수 숲만 지루하게 이어졌다. 운전하는 딸내미 생각해서도 옆에서 졸면 안되는데 까빡까빡 잠도 왔다. Big Oak Flat 전망대에서 바깥바람 쐬려고 차를 멈췄다. 그때 비로소 지난 칠월에 불길 휩쓸고 지난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빅 오크 플랫 로드 숲속을 한시간쯤 달리도록 화마의 흔적은 계속 이어졌다. 완전히 잿더미되어 민둥산 된 허허벌판 능선이 있는가 하면 요행히 아주 멀쩡한 산자락도 있다. 울창한 삼나무 숲인데 어떤 둥치는 새카맣게 타고 어느 건 밑둥만 그을린 것도 있으니 대체 무슨 조화속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같은 자리, 같은 조건에서 정정한 나무도 있은 반면  숯덩이로 변해버린 나무는 순전히 운이 나빠서 그런걸까.  그길을 달리며 이상하게 기운이 소진되어 자꾸 졸음오던 이유가 화마 지나가며 남긴  때문인가.  흉가라도 피하듯 탄내가 밴 그곳을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국립공원 서쪽 출구까지는 아직도 먼듯 했다. 요세미티의 웅장한 산세는 간곳없이 메마른 야산도 스치고 규모 큰 저수지도 지나쳤다. 황토 절개지와 대비를 이뤄서인지 물이 유난히 새파랬다. 작은 마을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목장과 헛간이 휙휙 지나갔다. Groveland라는 이름의 황량한 동네는, 여간해선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영화 곰새기고 있는 인상이었다. 골드 러시 당시 제법 번성했던 흔적이 녹슬지 않고 남아있는 옛스런 호텔이며 성조기와 회색곰 나부끼는 깃발 선 무슨 관청터도 보였다. 하도 조잡스러워 사진에 담은 아이언 도어 잡화점은 과거 우체국 건물이었다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돼 골드러시 광풍이 불자 중국노동자들이 대거 몰려들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부개척에 발맞춰 요세미티 험준한 화강암 산기슭에도 마차도로가 생겼다. 시작은 요세미티 서쪽에서 출발해 1883년 테나야호수까지 산을 파들어가 오늘날 120번 도로의 기초를 닦았다. 도로공사 노동자는 골드러시 거품 빠지며 실업자가 된 중국인들이었다. 주로 화약발파나 망치질로 화강암 암반을 다듬었던 그들은 미대륙에 피와 땀을 바친 댓가로 여기저기 지명에 차이나를 새겼다. 산속을 벗어나고도 한참, 120번 도로는 끝없는 심연처럼 계속 이어졌다. 돈 페드로 저수지를 끼고달리 '차이니스 캠프'를 지나 5번 프리웨이를 만났다. 온종일 운전에 기진맥진, 스탁톤이란 곳에 닿자 일단 고단한 하루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나파밸리 소노마 산불, 카르베네 소비뇽, Big Oak Flat Road, 120번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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