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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가는 까닭
12/04/20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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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청청히 먼 하늘. 점차 파리해지는 햇살. 이 무렵이면 발길 저절로 이끌리는 데가 있다. 생성과 소멸의 되풀이 그 지층에 화석으로 남은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박제된 시간이 긴 잠에서 깨어나 눈부시지 않은 은빛 되어 기다려주는 곳이다. 아득한 日月이 조응하는 그곳, 부산시립박물관으로 향한다.

  색바랜 잔디 위에 석등 그리매 낙엽이듯 가벼이 내려선 만추의 오후. 지는 잎새로 인해서인지 박물관이 지닌 독특한 느낌 때문인지 내 본디 뿌리로의 회귀 본능 같은 게 언뜻 일렁인다. 고작 백년을 못 채우며 시비곡절 사연이 숱하기만 한 삶. 반면 누대를 지켜 온 석등의 묵연함이 경외롭기조차하다. 無明 거두는 인등 밝히고 풍경소리 범종 소리 이웃하며 마음 닦은 덕일까. 긴긴 날 하많은 풍상에 돌귀 무뎌지고 마모는 됐을망정 형체 올 고르게 지켜 후대에 당시 생활상을 짐작케 해주는 석물들. 문자가 아니라도 그 시대 신앙이며 문화 정도 아울러 심미적 경향과 내세관까지를 일러주는 자상함이 고맙다.

  정원에 수놓여진 구름 문양 회양목이 홀연 하늘에 뜨는 듯한 환상을 털며 짐짓 발소리 높여 층계를 오른다. 전시실에 고인 조밀한 정적은 늪 같기도 하고 달밤 같기도 하다. 그 순간 문득 천마총이 있는 경주가 떠오른다. 그냥 스쳐 지날지라도 잿빛 기왓골과 멀리 둘러선 남산과 철로변 고분군만으로도 그윽히 감도는 옛 서라벌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경주. 오랜 연륜이 빚어낸 자연스런 조화감이리라. 그처럼 하나의 분위기가 틀 잡고 익어가기엔 곰삭을 만큼한 세월이 필요한 것일테니까.

  유구한 시간 거슬러 오른 기원전에서부터 가야 신라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선인들의 족적 그 편린들. 부장품으로 함께 묻혀 삭아가는 주검 곁에서 그래도 마제 석기나 토기 등은 흙으로의 환원을 거부했다. 살아남아 증명할 역사 되고자 함이었던가. 오랜날 땅에 묻혀있던 터라 혹여는 조각나고 어느 건 새새에 흙물배여 본연의 빛을 잃기도 한 그들. 변질되고 부식되어 푸석푸석 쪽 떨어지는 木製나 철기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영롱한 건 옥이나 금붙이들이다. 그 어떤 하나를 가만히 마주하고 있으면 그가 머물던 시대가 투명하게 되살아나 무릎걸음으로 다가섬을 느낀다. 바랜듯한 녹유빛 청자에서는 개성의 고려조를, 질박함에 바탕을 둔 백자에서는 조선조 여인이 그려진다. 비록 청자도 비색이 아니요 백자 역시 순백은 아니지만 누렇게 색 바랜 윗대 조상 사진이나처럼 소중히 간직해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들이다.

  자연과의 일체감 그리고 線과 균형에 대한 뛰어난 감각이 한국 미술의 특색이라 평한 분이 있었듯 옛분들의 높은 미적 안목에 감탄하며 큰 자긍심을 갖게 하는 박물관 나들이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맞아주는 건 신석기시대. 어설픈 내 숫자개념으로는 헤아려 짐작조차 어려운 上古의 아득한 옛적이다. 선이 굵은 빗살무늬 토기 조각이며 굽 높은 잔 등의 출토로, 그때도 이 터에 누군가가 문명을 가꾸며 살았음을 증명하는 동삼동 조개무지 뿐이랴.

  영생 또는 영원을 생각해 본다. 한 생애 죽음으로 마감하고 떠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 자신의 미래를 후세에 부촉하고 눈 감으면서도 차마 아무런 흔적조차 남김없이 무의미하게 스러져 갈수만은 없었던가. 아니면 훌훌히 떠나야 하는 먼 먼 여행길 외로울까 동행시키는 남은 이의 배려인가. 고분속의 마구馬具며 보관寶冠, 기명器皿과 장신구등 살아생전 필요했고 아꼈던 것들을 함께 묻는 부장 풍습에서 따신 인정미가 느껴진다.

  사후에도 사물을 느끼고 인식하며 현실의 삶과 단절된 곳이 아닌 삶의 한 과정으로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결과일까. 생시에 썼던 일상 용구를 그 곁에 묻어 삶과 죽음을 동일시한 先代의 세계관. 어쩌면 이승이 이쪽의 삶이라면 저승은 저쪽의 삶일런지 모른다. 해서 이쪽저쪽의 경계를 넘는 일쯤으로 생과 사를 파악하였다. 그래서일까. 내 유년기의 한 章에 각인되어 있는 선명한 기억. 호사롭게 꾸민 장례 행렬로 전송한 할머니였지만 그분은 집 뒷동산 양지녘 우리 소꿉터 가까이에 모셔져 있었다. 그러고도 안방에 궤연 받들어 조석상 올리며 문안드리던 것처럼 죽음은 한 생의 완전한 종말은 아니었다. 윤회와 내세를 믿기에 끊임없이 선을 지향하며 덕행 쌓고자 함이 아닐런지. 따라서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박물관에 찾는다는 건 단순히 유물과의 감상어린 만남을 위해서가 아니다. 생명이 근원한 그 깊이를 들여다보게 하고 무량한 시간 속의 한 점에 불과한 유한한 삶의 길이를 생각하게도 한다. 더해서 잠시잠깐이나마 영원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 자신에의 정관靜觀이 가능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로써 한결같이 밖으로만 뻗치는 의식의 촉수를 차분히 정돈해 안으로 거두게 된다. 허나 돌아서 시정에 들면 이내 엉켜드는 욕심. 이제는 시덥잖은 흔적 하나씩 지워나가야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스레 남기는 어수선한 족적들. 이 글마저 소음으로 남을 내 서툰 흔적은 아니던가. 생각의 갈래가 많을수록 늘 하던 버릇대로 하늘을 본다. 어느덧 박물관 추녀 끝에 놀빛 젖어드는 저녁. 너른 오동잎 하나 시나브로 지고 있다.-1989 / 목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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