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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라 · Ⅱ
01/29/20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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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의 한 촌가>


한고비에 이른 삼동의 어느 날눈이 오고 있다는 뉴스 진행자의 다소 들뜬 음성이 들린다창가에 서니 건넛집 지붕에 시설(枾雪)앉듯 희끗한 눈 자욱이 보인다늘 그랬던 것처럼 고작 시늉만 내다 그치고 말 눈세상이 온통 하얘지는 설경 기대는 역시 어림도 없는 일인가.


반도의 남쪽 끝에 위치해 부산 사람은 비교적 강추위를 모르고 산다. 온난한 기후라 겨울철 난방비가 적게 드는 잇점도 있는 곳이다. 허나 부산의 겨울은 좀 싱겁다. 눈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러 타지로 나가야 눈 구경을 할 수 있는 부산. 해풍이나 칼칼해질 뿐 은세계가 빚어 내는 겨울다운 정취를 맛보기란 쉽지가 않다. 한 자 넘게 폭설이 내리는 강원도 산간에서야 눈이 질릴 법도 하건, 부산에서는 쌓인 눈 접하기가 벼랑 흔한 일이 아니다. 어쩌다 눈 소식이 들려도 금정산에 올라야 설경과 만나게 된다.


지난해 겨울. 정선 사북 지나 태백 가는 길에 흐벅진 설국 품에 안겨 보았다. 구성지게 퍼붓는 눈, 솔밭이란 솔밭은 죄다 한데 어우러진 푸짐한 쑥 버무리떡 같았고 어쩌다 보이는 잿빛 너와집은 눈에 폭 파묻혀 더욱 납작했다. 자욱한 눈발 속 빙판길이라 속력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도로상황. 시간 또한 셈하지 않기로 하고 아예 물외한인(物外閒人)되어 한갓지게 누려본 여유였다. 천천히 밀려나는 풍경은 먼 북구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백설 무게에 지질린 암청빛 삼나무 숲, 지어 선 낙엽송 나목마다 하얗게 핀 상고대가 신비로웠다.


아― 그리운 나라, 되돌아 갈 수 없는 유년의 고향에도 눈은 얼마나 소담스레 내렸던가. 충청도의 한 모서리 서해안 변에는 겨우내 눈이 흔하디 흔했다. 하늘이 앞산자락에 닿을 듯 낮아진 날이면 푸석푸석 내리기 시작한 눈이 종당엔 탐스런 목화송이 되었다. 이윽고 온누리 하나되어 경계가 없어지면서 고즈넉해지는 마을. 물색 모르고 마냥 좋아라 고샅길을 내닫는 아이들 좇아 삽사리도 덩달아 뛰었다. 동화 속 어린왕자의 마음같이 순수했기에 더욱 향수어린 그리운 그 나라. 이제는 어디에서 다시금 맛보랴, 동심만이 누릴 수 있는 은총 같은 추억 속 그 기분을.


가을걷이 마치자마자 성큼 다가서던 겨울. 방학이 되면 나는 소재지 집을 떠나 한층더 궁벽진 시골인 대호지 외가로 곧장 달렸다. 산촌이자 어촌인 그곳, 거친 바람에 문풍지 우는 겨울은 길고 깊었다. 입성이 변변치 않아서였을까, 모질게 춥기도 추웠다. 봉창을 메우고 구들 달구어졌어도 윗목 콩나물 시루에 물 주려면 살얼음이 잡힐 만큼. 


그러나 한창때인 아이들은 추위도 안 탔다. 추녀 끝 고드름 따다 칼싸움을 하는가 하면 눈사람 만들기에 빨개진 손끝 호호 불면서도 신이 났었다. 긴 꼬리 연을 날리고 토끼몰이 쫓아다니느라 하루해가 짧기만 하던 시절. 위험하다며 한사코 말리는 어른들 모르게 청솔가지 깍짓동에 숨겨 둔 썰매 꺼내 방죽으로 내달리면 이미 또래들 목에 두른 명주수건에선 김이 올랐다. 


때로는 해풍 사나운 갯가에 나가 곱은 손으로 굴 따랴 파래 뜯으랴 정신이 없어, 귓바퀴 어는 것쯤 개의치 않았다. 어느 땐 바닷가에 밀려온 성엣장 타고 노느라 집 생각은 까맣게 잊기도 했다. 아이들을 찾아 야단이 난 줄 모르고, 우리는 젖은 엉덩이 말리려다 화톳불에 옷자락 그슬리기 일쑤였으니. 축축해진 털신을 살짜기 청마루 밑에 밀어 넣어도 지청구 대신 어느새 부뚜막에 올려 보송보송 말려 주시던 외숙모 생각도 난다.


그 두터운 사랑마냥 어디나 가림없이 넉넉히 쌓이던 눈. 천지 구분 못할 만큼 눈 내려 초가지붕은 물론 무 구뎅이도 소복, 묻어 둔 김장독도 소복, 복닥하니 새하얀 솜이불 덮으면 이불 한 자락 끌어당기려 시샘 부리는 건 잿간이었다. 조석으로 쳐내는 아궁이 온기로 눈 쌓일 틈이 없었던 잿간. 안채 사랑채 군불까지 지펴야 했으니 날로 키 높여가는 잿더미만 그래서 흰빛이 아니었다.


이웃한 돼지우리 구정물에 코 박고 사는 꿀꿀이네 가족이나 시끄러울까 사위가 적요롭기 그지없는 한낮. 까치밥 볼 붉은 감나무에 매달려 건들대는 시래깃단 홀로 눈바람과 동무했다. 연달아 내린 폭설에라도 갇히면 종일토록 마실꾼 하나 없이 고립된 채 적막강산으로 가라앉던 마을. 어쩌다 눈길 뚫고 우체부나 지나갈 뿐인 동구 너머 시나브로 엷어지는 햇살. 이어서 낮은 굴뚝가에 저녁 연기 퍼져 나갔다.


눈 오는 겨울밤은 유독 고요했다. 적막이 싫어서였던가. 밤나무 알맞춤한 가지 베어 다듬은 윷으로 늦도록 시끌벅적 즐기던 윷판. 그도 아니면 호롱불 심지 돋구고 화롯가에 둘러앉아 이 잡는 일이 예사롭던 시절. 출출하면 배추뿌리를 깎거나 살푼 언 홍시를 녹혔고, 소쿠리 그들먹 찐 고구마에 무청 시퍼런 동치미 곁들이면 그게 밤참이었다. 외숙모 무릎 베고 듣던 구성진 옥단춘전이 문화생활의 전부였던 당시다. 


먼데서 간간 부엉이 우는 한밤중, 눈 무게 감당 못해 생소나무 줄기 쩌억 부러지는 소리며 홰에 오른 닭들이 퍼덕대는 날갯짓 소리 가물가물 들으면서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이튿날, 여물 끓이는 짚 내음에 새벽잠 깨면 닭장 둘레에 족제비 발자국이 나 있더라는 두런거림조차 아늑히 느껴지던 이불속. 이어서 집 앞 골목을 따라 눈길 내는 대빗자락 소리 사각사각 들려 왔다.


방학되기 바쁘게 내닫는 외갓집이었다. 한 달 여의 시간이 꿈결처럼 홀연히 가고 개학 맞아 본가가 있는 당진에 가는 날. 아쉬움에 자꾸만 뒤돌아보는 내게 손사래질 거푸하며 점으로 멀어지던 외숙모는 매번 걸린다는 말씀을 달고 사셨다. 첫차 대어가느라 눈덮여 길도 없는 고갯마루 숨차게 넘던 희뿜한 새벽. 어둠 속에 하얗게 빛나는 눈섶의 길 흔적따라 책가방이랑 올망졸망 보따리 자전거에 싣고 외숙부는 앞장을 서셨다. 한번씩 멈춰서서 자애의 눈길로 돌아보시던 외숙부님인들 어이 생각나지 않으랴.


어느새 설이 낼모래로 다가왔다. 오늘, 그곳에는 옛날처럼 펑펑 눈이 내릴까. 푸근한 사랑 넘치게 건네주시던 두 분 모습과 함께 그리운 나라는 내 정서의 텃밭으로 늘 거기 있으리니. 언제이고 다시 한번 그 눈길 걷고싶다.

 

≪93.에세이문학 게재≫


<93년 겨울 태백산에서>


그리운 나라, 고향, 겨울방학, 설국, 충청도, 상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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