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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천 휘도는 죽서루
11/01/2018 05:00
조회  1089   |  추천   18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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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서루' 회화로 조선 후기 엄치욱 작: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에 어른들이 이르길, 가을철에 하늘 우중충하니 꾸물거리면 단풍 익히려고 날씨가 그러하다 하셨다오.

그래야 단풍이 제대로 곱게 물들어간다면서요.

날씨 딱 그런 날, 오십천이 휘감아 도는 절벽 꼭대기 자연 암반 위에 지은 고풍스런 누각을 보고왔소이다.

평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저만치 우뚝 선 죽서루가 무덤덤히 맞아주었소. 

누각에 오르려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바윗길을 타고 언덕을 걸어올라야 하더이다.

관동제일루란 말이 호사가의 과장된 수사법이 아니던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보물

213호라는데 건립연대는 미상이나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하오.

누각 입구 우측에 뒤틀린 괴목 하나가 바위에 뿌리내린 채 기우뚱 서있는 걸로 미루어봐도 이곳에 응축된 세월의 깊이가 가늠되었소.

안뜰에 빽빽히 늘어선 죽림 지나자 허리 굽은 늙은 팽나무와 잘도 조화이루던 고색창연한 누각 죽서루. 

관동팔경의 여늬 누각이나 정자가 바다를 향해 있는데 반해 죽서루는 강을 끼고 있는 누각이외다.

하도 가풀막져 내려다 보기도 겁나는 깎아지른 단애,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오십 구비나 굽이쳐 흘러 동해로

빠진다는 오십천이 누각 저 아래서 암록색 담(潭)을 이루어 소용돌이치며 흐르더이다. 

낭떠러지에 바짝 이리 거창한 누각을 지었으니 그 옛날 공사중에 크게 상하거나 다친 이 없었을지 궁금하더이다.

그만큼 누각 앉힌 위치가 아슬아슬한데다 아름드리 기둥마다 자연 그대로의 암반을 이용하거나 바위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가까스로 끼워맞춰 세웠더라오.   

그러니 송강이 읊었던대로 죽서루는 '빈 난간 높이 걸려있어 여름 또한 가을 같다.'고 쓸만도 하더이다.

사통팔방 거칠 것없는 강바람 시원스레 누각 드나들테고, 마루청 틈새로 서늘한 땅기운 올라와 삼복에도 부채

필요없을듯 하였소이다.

죽서루 벽과 천정에는 내노라 하는 시인묵객들이 들러 쏟아낸 예찬시와 헌사가 즐비해 편액, 현판이 스물

여섯 점이나 되었소.

그중에는 정조와 숙종이 내린 시도 있고 율곡선생도 한 수 남겼더이다. 

여기 얽힌 재미있는 일화, 정조가 김홍도를 관동으로 보내 관동팔경을 그려오라 했는데 죽서루 그림을 보고

오십천이 하 넓어 바다로 착각한 어제(御製:임금이 하사한 시)를 내렸다 하오.

"돌 다듬고 절벽 깎아 세운 누각 하나/누각 옆은 푸른 바다이니 바닷가에는 갈매기 노니네..."란 시문이라오.

죽서루가 선 자리는 단단한 암석지대로 기묘하게 생긴 괴석의 경연장, 그중 으뜸은 용문바위가 아닌가 싶소.

벼랑끝 정상 바위숲에 절경을 빚어놓고 바다로 향하던 용이 뚫고 지나갔다는 자리란 설화 만들법도 하였소. 

그 바위에 초서체로 쓴 암각서가 새겨져 있다하나 암각서는물론 안내판에 명기된 선사 암각화도 찾을 길이

없었소이다.

언덕에서 오십천 물줄기 감상하기엔 급경사라 오금 저리고 대신 사방을 둘러보니 멀리 구름에 싸인 태백산과

여러 높고 낮은 산봉우리 자색으로 아름찬데, 바로 코앞에 들어찬 거대 구조물이 그만 시야를 교란시키더이다.

세계동굴엑스포타운이라나 뭐라나 암튼 주변 자연경관 아랑곳않는 독불장군처럼 생뚱스레, 삼단 케잌 녹아서

흘러내리듯한 모형에 깔조차 치졸하기 짝이없어 몹시 눈에 거슬렸소.

도대체 무슨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 뜻 부여하기 심히 모호한, 이걸 허가 감독한 관계 당국의 빈약한 미적감각과

안목수준이 내내 안쓰러울 따름이더이다.

더구나 언젠가 이 무지막지 커다란 조형물을 철거해야할 때 그 비용 뒷감당은 결국 누구 몫이 되겠소? 

쓴입맛을 다시고 누각에서 내려오자 죽서루 왼편에 '송강 정철 가사의 터'란  표석이 있읍디다.

일반 시비와 달리 팔각으로 우뚝 치솟은 화강암 기단부 각 면마다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

그리고 가사창작의 배경이 음각되어 있었소이다.

정철이 45세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와 객사 진주관에 딸린 이 누각에 올라 관동별곡 축서루를 지었다하오.

"진주관 죽서루 아래 오십천 흘러내린 물이/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이는 아름다운 정경을 상감

보여드리고 싶은 의 곡진한 마음일 것이외다.

풍류를 아는 가객 정철일진대 멋스런 죽서루에 올라서야 당연히 명문의 글 나오고도 남음직하였다오.

이 누각이야말로 조망을 최대치로 배려해 경관 뛰어난 고지대에 지었으며, 누마루는 복층 구조로 개방감을 극대화시켰고 지붕은 막새기와로 이은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였소.

정면 7칸 측면 2칸의 장방형 건물을 지형 변형시키지 않고 본디 그대로의 자연 속에 슬그머니 들어앉혔더이다. 

어디나 할 것없이 대부분의 누각이나 정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곳만은 제한없이 올라갈 수 있어 잠깐 

머물다가고 싶었으나 짜여진 일정에 맞추느라 그대로 내려왔소.

행여 다시금 죽서루를 찾게된다면 그땐 누각에 올라 시심을 궁글려도 보겠지만 그보다 오십천 건너에서 죽서루를 오래오래 바라다 보고 싶소이다.

 






 




<아름드리 둥근 기둥을 자연 암반에 끼워춰 단단히 고정시킨 그 옛날 솜씨에 감탄>

<산자수명한 자연을 훼손해도 유분수지 이게 대체 말이 되오? 건너편 죽서루에 미안하지도 않소?>





,관동팔경,삼척 죽서루, 오십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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