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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씨는 언제 행복했을까
05/09/201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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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만추, 아산 현충원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일행은 인근에 있는 맹씨 행단(孟氏杏壇)을 찾았조선조의 명재상이자 청백리인 맹사성(孟思誠) 고택(古宅) 앞. 육백 년 생 은행나무를 보호하려고 단()을 쌓았대서 맹씨 행단이라고 부르는 곳이었. 창창한 가을하늘에 대비이룬 샛노랑 은행나무 세 그루가 바람이 불적마다 우수수 나뭇잎을 쏟아내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감탄사가 터짐과 동시에 신라금관이 떠올랐다. 신목(神木)을 본뜬 출자(出子) 모양의 나뭇가지에 곡옥(曲玉)의 영락이 한들거리는 고고하고도 화려한 신라금관.

게티빌라에서 그 가을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보석과 장신구가 전시된 공간, 반지나 팔찌 귀걸이 등속보다 유독 눈길을 사로잡던 황금관은 순금판으로 오린 계수 잎을 가지에 둥글게 엮어 만들었다. 정밀한 세공기술이나 디자인은 신라금관에 미치지 못했다. 허나 그 이전, 월계관은 승자와 영웅이나 천재의 머리에 씌워지는 관이 아니던가. 그리스의 계관시인, 개선장군, 올림픽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런 월계관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월계수는 아폴로신에 바쳐지는 나무였다니 바로 신목이 아니랴. 여러모로 의미깊은 황금신목 월계관의 원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소장품 중 월계관만은 어쩐지 게티씨도 가끔씩 머리에 얹어보았음직 하다. 만일 내가 그 입장이라도 넉히 그러했을 것 같은데...ㅎ



Mummy? 이게 뭥미? 둘러보기 우선순위대로 먼저 설명문을 훑는다. 이크! 낯선 단어 등장에 주눅부터 들어 즉각 순서를 바꾸기로 한다. 언뜻 눈짐작만으로도 충분히 가늠되는 미라다, 은근 께림칙하지만 일단 전시물 상하좌우를 훑으며 꼼꼼히 살핀다. 머리쪽에 그려진 얼굴을 보니 월계관을 쓴 장년의 남자다. 삼베로 두툼히 싸인 발치에 이름이 휘갈겨져 있다. 영정 사진이 대개 그러하듯 한창 좋은 시절의 헤라클레이데스인 모양이다. 


그는 고대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철학자플라톤 문하에서 아카데미아를 운영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구가 24시간을 주기자전하며수성금성태양 주위돈다고 주장한 그다달변으로 코스모스를 논했음에도 미쳐 자신의 사후는 챙기지 못해 어처구니없는 혼돈상황에 처하고 만 장본인 맞나? 헌헌장부까지는 아닌 중키의 남자가 시공을 한달음에 건너뛰어 와서는 미서부 한 빌라 안에 쓰러진 장승처럼 맥없이 누워있다. 아득한 B.C 연대에 죽어 명부에 간 망자를 대명천지로 다시 불러내 눈부신 조명아래 눕혀 놓았건만 그는 태연스럽다. 내생을 기약하는 아니 환생을 기대하는 오색 그림으로 전신이 감싸인 그리스 미라가 문득 제행무상을 일깨운다.


알프스 빙하에서 되살아난 원시시대 얼음인간 '외치'나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깨어나 미라의 저주로 불리는 '투탄카멘'.

고고학이나 과학 연구자료라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번 죽은 자는 흙이 되어야 그 자신은 아무래도 편안하겠다. 한 생애 마감하고 눈 감으면 한줌 재로, 자연의 일부되어 흙으로 회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러운 일.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득한 세월 저편에서 현대로 끌려나온 미라. 뭇 호기심에 노출된채 유리관에 겹으로 싸여있는 미라가 괜히 측은스럽다. 죽은 자를 어떤 형태로든 지상에 다시 불러들임은 망자 욕되게 하는 일,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 즉시 그대로 영영 지상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도 싶다. 이승 등진 넋이 구천을 떠돌며, 남겨진 허울에 연연케 해서는 도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미라에 이어 정성스런 부조로 사방이 꾸며진 대리석 새하얀 관을 둘러본다. 인솔 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학생들은 바짝 다가서서 살아 움직일듯 역동적인 조각을 감상하고 있다. 실제감이 드는 양각의 악사들 입체조각이 빙 둘러 나있는 길다란 대리석 관 앞이다. ㅉㅉ.....본디 주인은 어디다 팽개치고 우두커니 빈 관되어 쑥스러운 구경거리로 나앉았나. 아킬레스의 생애가 새겨진 대리석 관 앞에도 일단의 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다. 수확기의 포도원 풍경이 양각된 관 앞에선 오래 머물렀다. 오동통한 소년들 한패가 사다리를 타고 포도를 연신 따 나른다. 포도확에서는 손에 손잡은 아해들이 부지런히 포도알을 발로 으깨 포도즙을 만들어 낸다. 석관의 임자는 장원의 영주였을까,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처리한 재치가 슬몃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리스를 떠나게 된 육중한 석관조차 이 자리에 오기까지 몇 손을 거치고 몇 다리를 건너는 우여곡절을 겪었을 터, 왠지 씁쓸하다.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명은 헤브라이즘과 더불어 서구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영웅 헬렌이 건국한 나라로 자신들을 모두 헬렌의 자손들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를 헬라스라 칭했던 그리스인들, 그래서 그리스 풍 또는 그리스 전통이나 정신이라고도 해석되어지는 헬레니즘이다.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그리스 문명권. 그들은 언덕으로 된 지형을 공들여 다듬어 여러 단()의 테라스로 만들었다. 그 위에 웅장하고 독창적인 그들만의 고유 양식으로 신전, 제단, 극장, 도서관, 왕궁 등 기념비적인 구조물들을 곳곳에 세웠다. 


초상(肖像)은 헬레니즘 조각의 업적중 하나로 신, 제왕, 귀족, 사상가들의 숱한 조각상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내의 미술관 외에 나라 밖으로 떠나 세계 각처 유수 미술관 등에 그 많던 조각상들이 제각각 흩어져 전시되고 있다. 그중 일부가 게티빌라에 영구소장되어 있는데 온몸으로 굴곡진 세월을 모질게 맞선 이력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신전 중앙에 몽둥이를 들고 위풍당당히 서있는 남자, 황금사자를 때려잡았다는 헤라클레스 조각상만이 요행히 온전할 뿐이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도 양 팔이 잘려나갔듯 대부분의 석상들은 신체 어디든 훼손을 입어 거의 원형 유지를 하지 못한 채다. 아름다운 아미와 코가 이지러진 여신의 얼굴, 근육질의 청년은 턱이 떨어져 나갔고 목이 사라지거나 몸조차 동강난 신도 있다. 갑옷의 장군은 팔 다리를 모두 잃었고 머리 뒷부분이 손상된 석상에 심지어 동체 일부분만 남은 처참스런 형도 보인다. 


굳은 돌이 그 지경일진대 흙으로 빚은 테라코타 소상이며 도자기나 유리 기명이야 말해 무엇할까. 자연재해를 입거나 전쟁의 상흔으로 또는 도굴이나 약탈과정에서, 아니면 암거래 운반 도중에 마블이 깨어져 나갈 정도면 박살나버린 연질의 예술품인들 오죽 많을 것인가. 거개가 신전 장식의 일부이거나 무덤 부장품 혹은 화산재에 묻혀 오랜 세월 매몰되었다 발굴된 것들이다. 멀쩡해 보이는 작품들도 잘 살펴보면, 세심하게 조각을 덧붙이거나 때워 복원시킨 잔 금 흔적이 도처에 나있다. 전시품으로 그나마 고히 옮겨진 작품들 외에 얼마나 숱한 문화재들이 산산조각나 어둠에 묻혀 버렸을까. 험한 풍파 겪은 고된 여정인데 마지막으로 깃든 안식의 터 여기 게티빌라에서 오래오래 평화누리길 기원해 마지않는다.



게티씨는 언제 행복했을까. 나다니엘 호손이 말하길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스스로 그대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처럼 게티씨도 마침내는 그러했을 것 같다.


그는 법률가이면서 성공한 석유사업가였던 죠지 프랭크린 게티의 외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 명문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그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유정개발 사업에 투신, 이십대 초에 이미 백만장자가 된다. 대공황기에도 그는 과감한 주식투자로 성공가도를 달려 석유기업 외에 광산업, 호텔업, 비행기 제조회사까지 인수해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2차대전 이후 중동지역에서 석유채굴권을 확보하면서 몫돈을 벌어, 1957년도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제일의 부호로 등재된다.  


반면 사생활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의 불신임과 갈등, 어머니와는 유산을 두고 극심한 분쟁을 벌였다. 괴팍스럽기로 소문난 그는 다섯번 결혼하여 네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자신의 후계자될만한 재목이 없다고 탄하며 자녀들을 길들이느라 수없이 유서를 바꿔써야 했던 폴 게티. 장남은 요절했으며 차남은 영화에 몰두했고 셋째는 영국에 칩거중이었으며 넷째는 음악에 빠져있었다. 재벌가의 곪은 속내는 어느 나라 사정이나 비슷한가. 가족들은 불화했으며 자손들은 크고작은 사고를 치기 일쑤였으므로, 그는 멀찌감치 영국에 나가 살며 가족들과 소원하게 지냈다. 


대신 영국의 영지에 은거하며 편집증에 가까이 예술품 수집에 매달린 그. 엄청난 양의 역사적 유물과 미술품을 소장하므로 그네들과 날마다 대화 나누다가 마침내 그 곳에서 세상을 떴다. 애정을 쏟으면 하긴 무생물인 돌도 말을 걸어온다고 하였다. '돈이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누누히 말했던 게티는 생전에 우려했던대로 결국 사후 8년만에 그가 일군 거대기업은 텍사코로 넘어간다. 그 와중에 전부인들과 자식들은 재산을 두고 소송을 벌이나, 게티의 유산 대부분은 폴 게티 트러스트 소유가 되므로 워낙 탄탄한 기초 덕에 안정적인 미술재단으로 성장해 오늘에 이르렀다. 게티의 기업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문화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정신적 휴식처로 자리매김 되면서 그 이름을 위대한 컬렉터로 각인시켜주었다.


가진자의 의무를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게티는 문화적인 면에서 무미건조한 로스엔젤레스를 문화도시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예술후원자다. 성격은 다르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를 뒷받침해 피렌체에 문화예술을 활짝 꽃피우게 한 메디치 가문도 역사에 기록된 예술후원자였다.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이 아니라도 예향 피렌체 도처에서 실제 그의 자취와 만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성가족 성당을 지은 가우디는 구엘백작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 재벌들이 문화재단을 만드는 속셈은 상속세를 피하려는 편법의 하나라 눈총을 받는다. 반면 한국에도 청십자병원의 장기려박사와 유한양행을 만든 유일한박사같은 존경스런 분들은, 재능과 재산을 사회에 오롯이 환원한 보기 드문 어른들이시다.


곁길로 샌 화제를 다시 게티씨에게로 돌린다. 태평양을 눈앞에 펼쳐둔 게티빌라 대저택 소유주였던 게티씨. 그는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때가 과연 언제였을까.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각자 가치관이나 관점에 따라 다르므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행복에 대한 정의는 없을 터.  단지, 근사한 사회적 조건이나 물질의 풍요로움은 세속적인 욕구들은 채워줄 지언정 정신적 행복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참행복감은 자신이 즐기고 원하는 일에 심취해 무언가를 이뤄낼 때 드는 만족감 아닐지. 나아가 스스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자각이 들 때 느껴지는 게 아닐런지. 특히 지적 만족감이 주는 포만한 행복은 느껴본 자만이 아는 것.  


게티씨가 진정으로 행복했던 시기는 정신없이 떼돈이 굴러들어오던 때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미녀들과 주지육림 속을 헤매며 향락에 빠졌던 시절도 물론 아니었으리라. 또는 원하던 미술품을 하나하나 소유해나가는 기쁨으로 흥분하던 순간들, 반면 귀한 예술품을 수중에 넣은 만족감은 그때뿐이고 더 나은 것을 갈망하게 만드면서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들이킨듯 끝없는 갈증에 목이 탈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늘어나는 미술품의 양에 비례하여 점점 고양되가는 정신세계를 느낄 때 그의 영혼은 충만한 행복감을 누렸으리라. 


"미술품은 그것을 창조한 사람들의 희망과 분노와 그 작품들이 탄생되었던 시대와 장소를 반영한다. 미술작품보다 더 매혹적이고 풍요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게티의 평소 인식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더구나 궁극엔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미술품 컬렉션의 결과로 그는 두루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한 내면의 행복이 참행복임도 깨달았으리라. 지닌 재산을 자신이나 가족만을 위해 쓰는 것에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예술을 향유하며 문화생활을 확장시켜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을 때라면 누군들 행복을 느끼지 않겠는가. 어떤 형식이든 봉사활동을 하고나면 뿌듯해지는 기분이 들며,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은 거 같다는 경험들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프랑스 철학자 알랭의 '행복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행복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행복은 절대로 그 사람을 속이거나 피하지 않는다.행복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부어 마침내 성취를 이뤘을 때 얻어지는 것. 가슴으로부터 솟구치는 희열에 벅차오르던 행복한 순간들은 돈이나 가족관계에서보다는 애장품들을 쓰다듬는 순간에 그는 느꼈을 것 같다. 생전의 게티씨도 행복은 자기 내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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