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bell
촌장(kubell)
한국 블로거

Blog Open 07.15.2012

전체     611833
오늘방문     206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친구 새글 더보기
  달력
 
시테섬에서 쓴 오래전 편지
11/09/2019 21:00
조회  1105   |  추천   18   |  스크랩   1
IP 121.xx.xx.44


인류 문화유산 중의 하나이자 파리의 상징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세느강이 감싸고 도는 시테 섬에 자리했다.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 및 잔다르크를 시성한 프랑스 역사의 현장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여 첨탑과 지붕이 불에 타 붕괴됐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유럽여행 출발 며칠 앞두고 전해들었다. 
파리시민들이 뻔히 보는 중에 네 시간여 불길에 싸였던 것은 문화재 보존이 우선이었던 까닭에 화재 진압이 더뎌졌다고 한다.

850년이나 된 성당 건물 자체도 문화유산이지만, 그 안에 소중한 문화재가 많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었다.

화재소식을 듣고 의아했던 점은 화재로 사라진 숭례문같은 목조건물도 아닌 석조건물이 어찌 그리 허망하게 주저앉나 싶었다. 

스페인을 한달에 걸쳐 걸어다니며 숱한 성당을 만났는데 지붕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있는 한 성당을 꼼꼼히 살펴보니 지붕 마무리 전에 수많은 원목 받침과 나무 서까래를 쓴 게 확인됐다. 

※ 첫눈에 반한 프로미스타 - J블로그  blog.koreadaily.com ? kubell  참조.

노트르담 성당 화재 원인은 한때 테러에 의한 방화라고기도 했으나 보수공사 중 전기회로 과부하로 최종 확인되었다. 

'과부하'에 관한 포스팅 감이 두엇 되는데 우선 노트르담 대성당, 카미노를 마치고 2박3일 파리에 머물며 첫날 시테섬을 찾아 칸막이 쳐진 대성당 상부를 이모저모 사진에 담아두었다.

그외 파리 명소와 Paris Museum Pass를 구입해 뮤지엄을 샅샅이 돌다시피 하며 사진을 수도없이 찍었는데 며칠전에 그 사진 전부를 유실해버려 쓸 거리가 없어진 터라 예전 글을 아래에 옮겼다.

<컴퓨터와 셀폰 활용반>에 들어가 열공하며 너무 많은 자료를 셀폰에 다운로드시켜 놓은데다 유럽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도 그대로 다 저장돼 있던 관계로 폰 자체에 '과부화'가 걸린 탓에 사진을 몽땅 날려버리고 말았던 것. 

삼성서비스센터에 가봐도 사진 복구가 안된다니 흠~그럼 어쩔 도리가 없지, 쿨하게 손을 털었지만 블로그에 쓴 사진 외엔 모두 사라져버려 아쉬운 건 사실. 해서 꿩 대신 닭으로 이십년도 더 전의 글 소환해냈슴다.
 



  시테섬에서 쓴 편지


파리에서의 사흘째. 비로소 나는 시테섬으로 향했다오.

마음 같아서는 첫날 한달음에 달려가보고 싶었지만 멀리 차창가로 스쳐 지나며 줄창 조바심내던 곳.

예정된 시간표대로 실려다니다 그제야 자유시간이 주어졌던 거라오.



시내 지도 한 장과 묵고 있는 호텔 전화번호를 야물게 챙긴 다음 지하철을 탔소이다.

지하도의 역겹도록 지독한 냄새와는 달리 매혹적인 이름을 가진 생 미셀 역을 빠져 나오니

곧장 세느강변이었소.

한강보다 강폭이 좁은 듯 싶은데도 여러 종류의 유람선이 흘러다니고,

오리떼가 물가에서 유유히 노니는 세느강.

무성한 플라타나스 짙은 그늘 너머로 노트르담이 보였소.



세느강 복판에 띄워진 유선형의 시테섬.

먼 먼 옛적, 여기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보금자리를 틀기 시작하며 하나의 마을이 생겨났다지요.

이 섬을 구심점 삼아 점차 부락이 커지면서 파리라는 도시가 형성됐다고 하니

시테섬은 곧 파리의 뿌리인 셈이오.

파리는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로 여기서 출발하면 웬만한 명소는 다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라 하였소.

루블로 해서 오폐라 하우스로, 또는 콩코드 광장에서 상젤리제를 통과하여 개선문으로.

에펠탑을 거쳐 사이요궁까지 걷는 것도 좋겠고 발리드 지난 다음 오르세 미술관으로

혹은 솔본느 대학에서 팡테옹으로 향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실제 베르사이유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이 시테섬에서 반경 한 시간 거리에 들어 있었소.

그러나 넓이에 상관없이 유럽 역사를 선도한 나라의 수도답게 파리는 역시 굉장했고

처처에 관광자원이 깔려있더이다.



시테섬과 연결된 몇 개의 다리 중 당연히 퐁네프를 찾게 됐다오.

오래된 친구의 이름을 입에 올리듯 자연스럽게 익숙해 있는 발음 퐁네프.

푸른 세느강에 기품있게 걸린 반궁형 아치. 그리고 고풍스런 조각이 든 난간과 가로등이

너무나 인상 깊게 아로새겨진 영상 속의 퐁네프는 회색 대리석 덤덤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소.

삼백 년 전에 만들어진 세느강의 가장 오래된 다리이면서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퐁네프를 배경으로 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프랑스 영화다운 시적인 영상미에 혹해, 그 이후 서른 몇 개나 된다는 세느강의 다리 가운데

미라보 다리보다도 오히려 나를 더 몸달게 했던 곳이었소.



퐁네프 다리 위에서 거친 잠을 자며 떠도는 차력술사.

낡은 운동화에 짧게 밀어버린 머리의 무표정한 그 남자는 알렉스였소.

어느 날인가 다리 난간 그의 잠자리를 먼저 차지해버린 여인을 대하게 되지요.

생명처럼 화구박스를 마지막 꿈으로 끼고 다니는 실명 직접의 화가.

손톱 밑에 새까맣게 때가 끼고 핏발 선 눈에다 먼지와 땀에 절어 뻣뻣이 엉킨 긴 머리칼을 한 여자.

시력을 잃어가는 젊은 화가의 자포자기 앞에 알렉스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은

그녀의 지친 영혼에 빛이 되었소. 아니, 피차 난파 직전의 절망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었던 거라오.

아트란티스로! 영화의 끝 장면에서 그대들은 이상향 아트란티스를 향해 세느강의 물살을 힘차게 갈랐지요.

그대들 자취가 짙게 밴 퐁네프 난간을 한참 동안 가슴으로 싸안아보았소.

그대들의 사랑은 혼란스럽고 음울한 듯 했으나 역시 사랑의 진실은 황홀한 불꽃의 명멸이었고,

절정없이 떨려오는 전율이었고, 아득히 잦아드는 행복이었고, 감동 그 자체가 아니던가요.



열병을 치른 듯한 탈진감마저 느끼며 퐁네프를 지나 노트르담 사원과 마주서자

이완됐던 세포들이 다시금 팽팽히 긴장하기 시작했소.

 바라보는 장소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고딕 건축의 백미인 노트르담.

석조 사원 정면 높직이에 도열한 입상 조각들에 우선 압도 당한데다

아치형 문을 따라 둥글게 배치된 수많은 성자의 조각상에 완전히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오.

사원 내부에서 본 ‘장미의 창’ 이라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명성이 오히려 무색할 지경으로

기둥 하나 벽 한 구석 어디든 빈틈없이 정교한 조각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경탄 이전에

유럽 정신의 바탕인 헤브라이즘을 새삼 돌이켜 보게 하였소.

종교의 힘!

그 위대하고도 가공할 몰입의 광기를 보는 것 같아 솔직히 내심 섬뜩하기조차한 기분이었소.

기독교의 성경에서 출발하여 오로지 그 의미를 담는데 충실했던 유럽 문화.

모든 예술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데 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였소.



종지기 콰지모도가 사랑했던 정열적이고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

붉은 치마 자락이 파도치는 그 여인을 위해

목숨 걸고 온 몸으로 종을 쳤던 콰지모도의 순애보를 찾아 종탑에 올랐다오.

숨어서 홀로 사랑한 여인을 지키고자, 하나뿐인 목숨마저 아랑곳 않고 모든 것을 다 바친 콰지모도.

그런 아찔한 사랑이라면 인생 전부를 걸기에 누군들 주저할 것이며 무엇을 두려워하리오.



남북에 좌우 대칭으로 높이 솟은 탑.

비좁은 나선형 계단은 닳고 닳아 가운데가 움푹 패인채 마냥 이어져,

그대로 가뭇없이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느낌이었다오.

가풀막진 층계가 끝나자 곧 바로 지붕 밖.

거칠 것 없는 바람이 상쾌했고 파리 전경이 한눈에 들더이다.

현기증 나는 높이임에도 지붕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허술함 없이 정성바친 조각이 서 있어서 거듭 놀라고 말았소이다.

그리고 이르른 곳이 노트르담의 오래된 종이 있는 곳이었지요.


 

때마침 정오였소. 인근 사방에서 일제히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오.

땅그랑 땅그랑-. 수천의 새하얀 은방울꽃들이 산정 맑은 바람결 타고 흔들리는 것 같았소.

종소리에 향이 있다면 아마도 초겨울 새벽, 암자의 후원에서 스며나던 비파꽃 혹은 금목서 향기 아니리까.

투명히 시립고도 티없이 깨끗한 향기를 닮은 종소리는 전신을 감싸듯 신비롭게 휘돌다가 천천히 허공 중에 스러져 갔소.

마치 그 종소리는 동양에서 온 자그만 아낙을 위해 은총이듯 베푸는

귀중한 소리공양만 같아 오래 그 감동의 여운에 잠겨 있었더랬소.

든든한 목재로 얽혀진 종각안 콰지모도의 종에 기대어 듣던 종소리는 바로 천상의 소리 그것이었다오.

봉덕사의 종이 그러하듯 콰지모도의 종 역시 이제는 침묵하는 종이라

그 자리에서 뜻밖의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거지요.



시테섬을 떠나기 전, 거리의 화가에게서 수채화 두 점을 샀소이다.

노트르담 사원의 옆모습과 원경의 개선문이 가벼이 스케치된 그림을 골라 들었다오.

아일랜드에서 유학왔다는 빛바랜 금발의 화가는 세느강보다 더 깊고 푸른 눈을 가졌더랬소.

그의 남루한 화구와 청바지에 어지러이 묻은 물감이 나를 이끌었듯,

두 장의 그림은 가끔씩 나를 시테섬 사람들 곁으로 불러가곤 할 것이오.

알렉스 그리고 콰지모도는 여전히 그 섬에서 무구한 사랑을 꿈꾸고 있을 테지요. <1993>

 


#파리#노트르담 대성당#노틀르담성당 화재#시테섬#퐁네프#노틀르담의 꼽추#코지모도
"행화촌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시테섬에서 쓴 오래전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