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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 울타리
05/08/20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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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따라 걷다가 탱자나무 울타리를 만났다. 전망좋은 바닷가에 바투게 붙어있는 규모 큰 양식장, 도로변을 따라 주욱 탱자나무 생울타리로 담을 삼았다. 틈새가 있어 바람은 왕래하지만 이곳과 저곳 경계를 분명히 지어주는 당당한 담장이다. 여간해선 틈입할 수 없는 철옹성으로 웬만한 콘크리트담보다 더 안전해 보인다. 반세기 전만해도 마을에 역병이 돌면 집집마다 탱자나무 줄기나 엄나무 가지를 꺾어다 대문 위에 걸쳐놨다. 날카로운 가시에 악귀 막아주는 주술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리라.


어릴때 종이깔대기에 담아 팔던 고동 속을 빼낼 때도 길쭉하고 튼튼한 탱자나무 가시가 동원됐 눈다래끼도 그 가시로 터트려야 뒤없이 아물었다. 새잎 돋기도 전에 앙상한 탱자나무 가지마다꽃이 피어났다. 작은 나비처럼 날아갈 듯 하늘거리다 다섯 장의 꽃잎 하르르 지고나면 곧장 탱자가 맺혔다. 꽃의 향이 좋아 향료를 만든다고 하나 요샌 별로 흔치 않은 탱자나무다. 초록색 어린 열매는 지실(枳實)이라 하여 말려서 한약제로 쓰이는데 거담작용과 위장의 기운을 북돋아준다고 한다. 노랗게 익은 탱자는 향이 좋아 실내에 두면 모과처럼 자연방향제 역할을 가으내 해준다.


탱자나무,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영주 소수서원을 두 차례 다녀오며 금성대군 관련 유적지를 설핏 스쳤다. 대군을 위안치(圍籬安置) 시켰던 장소 옆에 세운 금성단에서 안내문을 읽고 비로소 그 뜻을 헤아린 바 있는 위리안치. 그에 더한 가극안치(加棘安置)란 중죄인을 유배소에서 바깥출입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둘러 가두는 지독한 형벌이다. 막상 탱자나무를 꼼꼼스레 살펴보니 강인한 위용으로 버틴 가시를 숨기기엔 푸른 이파리 자그마한데다 어설플 정도로 성글다. 탱자나무는 오연한척 도도한척 할수록 왜그런지 더 고적해 보인다. 나무 자체가 냉혹하고 쌀쌀맞아서인가. 유배온 죄인 바깥출입 자유로이 못하게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쳤다는데, 그처럼 올봄 코로나사태로 뻔히 밖을 내다보면서도 나가지 못했던 심사 괜히 더 힘들었던 건지도.


그 이전에도 유명한 탱자나무를 만나본 적이 있었다. 강화도 갑곶에서 본 탱자나무는 기념물로 지정된 보호수였다. 정묘호란 당시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와 오랑캐의 침입을 막고자 성 주위에 탱자나무를 심었다니 4백여 성상을 살아내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그 탱자나무에 대한 인상은 자못 비애스러웠던 반면 금성대군 위리안치 자리에 심어진 탱자나무는 웬지 처절하나 꼿꼿한 정의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군주가 못나 오랑케의 말발굽에 강토 짓밟힘 당한 인조실록은 부끄럽지만, 어린 조카의 왕좌를 넘본 형을 인륜의 이름으로 갈군 금성대군의 서슬푸른 기개는 천추(千秋)에 남을 터.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이름은 유(瑜),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로,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친형에 맞선다. 그는 조카를 내치고 왕이 된 수양대군에 반발하다가 삭녕에 유배되었다. 세조2년에는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하며 이에 연루되어 대군은 순흥땅에 위리안치된다. 조선시대 중죄인에 가해진 가장 중위리안치(圍籬安置)를 당했을망정 대군은 비밀리에 순흥부사 이보흠과 결탁해 재차 단종 복위를 꾀한다. 그러다 탄로가 나며 세조 3년 단종과 금성대군은 모반혐의로 사사되었다. 이 정변으로 순흥도호부는 예천 안동 풍기로 쪼가리났다가 2백년도 훨씬 지나 순흥부는 복원되고 충절 지키려다 순절한 주민들과 금성대군을 기리는 금성단도 세운다. 


금성단 옆에 복원시킨 안치지에 심어진 탱자나무. 본래의 목적은 중죄인의 문밖출입을 가시로 막자는데 있었다. 동시에 외부인의 출입도 금해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시켜 고립케 하는 혹독한 벌이다. 위리안치 죄인은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의금부 도사가 유배지로 압송하고 가시울타리를 치는데까지 직접 점검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때 탱자나무를 주로 이용했으며 집 둘레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출입문에는 자물쇠도 채웠다. 열쇠는 종이로 싼 다음 봉인(封印)하여 따로 보관하였다. 따라서 출입이 봉쇄돼 전혀 드나들 수 없었고 음식이나 옷가지는 울타리에 작은 구멍을 낸 곳으로 제공했다 한다. 조선시대 대군들 중엔 왕권강화를 위한 제물로 희생양된 경우가 꽤 있었다. 


사철나무나 개나리며 싸리나무 생울타리는 보기도 좋은데다 정감서린 자연친화적 울타리다. 그러나 집 주위 빙 둘러 나무를 심고 가꿔서 생울타리 삼는 집이 점차로 사라져 간다. 단가도 높이 치는데다 울타리 구실을 할만큼의 세월을 참고 기다리지 못해서이리라. 시골에 흔했던 탱자나무 울타리는 더구나 요즘은 좀처럼 보기 어렵던 차다. 작은 새들의 안전한 피신처가 되주는 탱자나무 새새에서 지줄대는 새소리. 허나 탱자나무 가지에 돋은 예리한 가시는 불친절하고 독하다. 얼히고설킨 가지사이로 날카롭게 솟구친 가시는 바늘보다 더 따꼼하게 찔러댄다. 가시 끝에 손을 대보니 얼마나 억센지 강인한 기세가 벌침처럼 느껴진다. 빈틈없이 조밀하게 얼크러진채 치솟은 가시로 인해 숫제 잎새는 존재감이 미미힐 정도다.


그러나 처음부터 강하고 억세게 태어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신생아만이 아니라 병아리도 갓 부화되선 눈도 못 뜬다. 성서에 나오는 겨자씨도 싹이 틀 때는 미약해 보이나 풀 정도가 아니라 큰나무로 자라 뭇새 깃든다잖는가. 아무리 빳빳한 탱자나무 가시라도 새로 움 돋아난 햇 가시를 만져보니 예리한 생김새는 날카로와 보이나 질감은 아주 보드라왔다. 녹각 역시 처음 뿔이 나올 땐 이리 노골노골 연하지 않을까 싶었다. 존재하려면 뭐든 나름대로 강해져야 하니 이처럼 시간 속에 강성 인자가 프로그램화 돼 자동으로 경화시키보다. 연하던 탱자가시가 든든한 방패되어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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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와 세조 그리고 금성대군 - J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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