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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수레바퀴 자국
05/02/20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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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정국이 석달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자주 메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이라는 이론이 현실에 대입되거나 대비되곤 했었다.

막상 그는 죽기 전에 이 피라미드가 뒤집어져야 옳았다고 말했다지만. 

그처럼 겪고보니 자아실현욕구는 차라리 안전욕구의 하위개념이 아닌가 싶게, 어쩔 도리없는 상태가 되자 글/포스팅에라도 의존하며 두려움과 갑갑증을 견디고 버티려 했던 셈이다.

심리학을 공부하진 않았을지라도 누구나 다 들어 알고 있는 메슬로우가 주창한 욕구의 5단계 이론인 Maslow's hierarchy of needs.

물론, 인간 욕구단계설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 적용 되는게 아니라 개인에 따라 그 욕구의 정도나 실현 단계가 다를 수 있다.

더러는 이번 판국에 불면증이나 식욕저하로, 먹고 자는 기본 욕구마저 충족시키기 어렵더라고 했다.

실지로 나부터도 입맛이 현저하게 떨어져 구미 당길만한 별식을 찾는 나답지 않은 기행도 서슴치 않았다.

그 못지않게 누구나 만족이 되어야 하는 최우선 목표는 바로 자기안전에 대한 욕구라는 걸 절감하고 통감하게 됐다. 

자기를 지켜내고자 하는 자기안전문제가 기본욕구로 자리잡으며 안전에 대한 방어기제는 풀가동되었다.

안전하다는 푸근한 안도감이 들지 않으면 우리는 두려워 겁먹게 되며 불안에 떤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과도하게 반응하다보면 사람마다 차이는 있으나 신경과민 나아가 강박증세로 발전되기도 한다.

우울함과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또는 대처하는 방법으로 약을 복용하거나 알콜에 의지 또는 SNS에 편집적으로 몰두하다보면 중독증상에 이르기 십상.

취미생활로 건전하게 운용되던 운동조차도 지나치면 과유불급이고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면 병적이 되고 만다. 

신들리거나 무슨 시합에 대비 트레이닝하는 것도 아니면서 끝없이 해대는 '걷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진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참으로 지독한 무력감에 시달렸고 무시로 착찹한 심경이 되곤 했다. 

맨 처음만 해도 어리둥절한채 뭐야? 하다가 너무 어이없어서 이게 말이 돼? 아예 무시하려 들었다.  

<뒤숭숭한 나비효과, 우한 폐렴>을 포스팅 한 것은 1월 29일이었다.

그 열흘쯤 전에 한국에 역병이란 게 퍼졌으나 그리 심각하진 않았다. 

<난리가 따로 없네>란 포스팅은 2월 19일이니 그즈음부터 전염병의 위세가 실감나기 시작했다.

얼마지나 대구에 황당할 정도로 수많은 감염자가 쏟아지면서부터는 하도 기막혀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초조해지고 괜히 심란스러워 안절부절하면서 나날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지냈다.

한국에 첫 사망자가 나왔던 이틀 후인 2월 22일에 올린 <자숙의 시기>, 이미 모든 교육장과 도서관이며 공공시설이 셔터를 내린 때였다. 

마구 고함치고 싶었고 뚜렷한 대상도 없는 그 무언가에게 소리질러가며 악을 쓰고 싶었다.

어딘가 휑 뚫린 도로를 마구마구 질주해보고 싶었다.

혼자 그래봤자 나아질 기미는 물론 아무 소용도 없었으며 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정지되면서 모든 일상의 동작 역시 이제 그만 상태가 되버렸다. 암울했다.

<J블로그, 고마워요>에 연달아 <그래도 삶은 현재진행형 >이란 글로 2월 24~25일 계속 포스팅을 했다.

공포마케팅일지도 모르는, 선동일지도 모르는, 어떤 힘앞에 무력하게 우리 모두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동시에 아주 두려운 적이 사방 각처에서 창끝을 겨누고 있다는 두려움이 피부로 느껴졌다.

극도의 공포감이 몰려들며 틉틉한 늪에 빠지듯 공황상태에 빠져들어감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었다. 

장시간에 걸쳐 느껴보기로는 처음인 불안장애였다.

<늪속에서 이 사람이 사는 법>을 쓴 날은 2월 29일로 이쯤되자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며 슬그머니 현실과 타협에 들어갔다. 

무기력감은 아주 고약스러웠다. 좌절감과 체념을 동시에 몰고 왔으니까. 

그때부터 의기소침해져서 세사 몽땅 회피하고 싶어졌으며 외면한채 망각하려 다른세계로 도피해버렸다. 그렇게 블로그에 몰입했다  

3월 1일 삼일절 행사도 취소됐고 그 와중에 봄꽃이 피기 시작하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를 필두로 <노림수가 궁금하다>에 이어서 <중세의 괴질, 오늘의 역병> 등으로 날마다 포스팅을 해댔다.

하루하루 포스팅 놀이만이 존재의미이기나 하듯이.

마음은 뇌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하녀라고도 한다. 사람의 마음을 운전하는 것은 뇌라는 얘기다.

학자들은 뇌는 이성적인 것보다 오히려 감성적인 것에 의해 움직이고 감성보다는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듯 싶어도 그 바탕에는 본능과 감성이 깔려있기에 본능과 감성이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행동도 나오기 어렵다고 보았다.

맞는 말이었다. 그말에 동의하듯 본능이 이끄는대로 이런저런 잡설을 마구잡이로 방류시켰다. 

때로는 불가해한 사안에 대해 합리적 의심도 하면서 조리있다기보다는 장황하게 수다 늘어놓았다.

3월 6일 공적 마스크 5부제 구매 실시에 이어 11일 WHO에서는 팬데믹을 공식선언했다.

사태는 점점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첨단문명시대에 느닷없이 동물농장이 재현되고 있었다.

<경계대상이 되다니>그리고 <마스크가 기가막혀>에다 <두어시간 공간이동>하며 <빨리빨리 유전자와 면역력>에 이어 <양심이 찔려요>를 쓰다가 자기만의 바닷가를 만들라느니 봄이 울더라고도 했다.

<혹시나?>하며 SF소설같은 상상의 나래도 펼쳐보다 <그래도 필 수 밖에 없는 꽃>이라며 제철 꽃소식에 안타까워도 하다가 <코로나 블루> 로 삼월 마지막 날을 마감했다.

돌이켜보니 한국에서 코로나가 기승부리며 혼을 쏙 배놓은 시기가 바로 이 3월 한달간이었다.

<놀이=치유의 바닷가>란 제목이 나온 건 4월 2일,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 정신 차려지자 <고통도 길이 들면>이란 포스팅을 올렸다.

바짝 긴장했던 신경줄이 좀 풀리자 < 종잡을 수 없어> 궁시렁대며 <무얼 추려내려고?> 곰곰 따져도 가면서 <진실 게임 ㅡ 거센 파도가 토해낸 쓰레기 >에 이르러선 현사태의 역학관계/ 인과관계를 나름 짚어보게도 됐다. 이 모두는 불청객 covid-19가 남긴 흔적들이다.

한바탕 무섭게 휘몰아치며 마구잡이로 달겨들던 코로나라는 보이지 않는 적병 바이러스가 점차 소멸, 한국에서는 오월들어 거의 안정적으로 평정되었다는 낭보가 들려온다. 

미국의 뉴스는 현재상황 아직도 혼돈의 와중,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시작된 일마다 반드시 끝나는 날도 있다.


생명있는 모든 것은 살고자 하는 존재 아닌가.

세계 각국의 그런대로 안정된 삶의 형식을 송두리째 무너져내리게 했던 코로나바이러스.  

도대체 뭐가뭔지 지금껏 오리무중에 이해불가인 코로나 정국도 이제 거의 극복기에 이르렀지 싶다. 

어느 나라나 할 거 없이 진흙길 내달린듯 거의 똑같은 수레바퀴 자국 아주 거칠게 내놓고는 때가 차니 코로나도 물러날 터.

아수라장같았던 뉴스화면 더이상 안봐도 되고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안전이 약속된 내일이 기다린다는 행복이 얼마나 중한지.

주어진 하루하루의 무탈함과 이 순간의 안정된 평화가 더없이 귀해, 이에 깊이깊이 감사하게 된 요즘이다. 

그간 세상이 멈춰서자 타의에 의해 각자 조용한 시간을 갖게되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를 성찰해보게 됐다.

나아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주행을 하긴 하되 세상은 전과 같아질 수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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