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bell
촌장(kubell)
한국 블로거

Blog Open 07.15.2012

전체     640826
오늘방문     144
오늘댓글     2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친구 새글 더보기
  달력
 
돌고 도는 세상
03/24/2020 23:30
조회  463   |  추천   13   |  스크랩   0
IP 121.xx.xx.44














엊그제 갈맷길을 걷다가 만난 근로현장들이다.

처음 사진은 바지선(barge)이라 불리는 부선(船)이 바다에서 채취한 모래를 뭍에 하역하는 장면다. 

화물을 운반하는 바지선은 수백 톤의 모래를 싣고 예인선에 의해 항행하다 연안에 접안해서 싣고온 화물을 부린다.

바지선은 동력장치가 없으며 선체가 넓고 바닥이 평평하다.

다른 사진은 미역 가공공장의 작업 모습이다.

여기서는 제철에 대량 구입한 양식미역을 포크레인으로 한입씩 물어 옮겨 콘베이어(conveyer) 시스템에 올려 놓는다. 

이어서 끓는 물에 살짝 되친 뒤 물기 빼고 소금 듬뿍 쳐서 이른바 염장미역이라 불리는 상품으로 가공시킨다는데 공장 내부

작업과정은 볼 수 없었다.

바지선 하역인부들도 그렇고 미역 가공장 기술자도 물론이고, 바닷가에서 양식장 밧줄을 거두는 일이며 대량으로 나온 미역을 다듬거나 잡은 생선을 손질해 말리는 작업을 하는 일꾼들 대개가 언뜻 봐도 외국사람들이었다.


미국이민을 가기 전인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리 흔치 았았다.  

당시는 농촌으로 시집올 여자가 없어 시골 노총각들이 동남아 처자와 더러 국제결혼이나 하는 정도였다.

요즘은 식당 주방일이며 서빙은 물론 노인요양원 간병인 태반이 이주여성들이다.

배를 부리는 항만이나 건축현장, 경상도 양식장이건 전라도 섬의 염전이며 촌구석 농장일에 종사하는 이들도 외국인 노동자들.일손이 많이 가는 허드레 잡일이나 기술이 필요없는 단순노동 또는 장시간 힘들여 작업해야 하는 현장엔 그들이 있다.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임금수준 낮은 이른바 3D(Dirty, Difficult, Dangerous)업종 기피현상에 따라 사업장에서 인력부족 현상을 겪게 되자 자연히 그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메꾸게 된지도 제법 오래됐다.

88올림픽 이후 이어진 호황기 때 질 좋은 일자리들이 대폭 늘면서 최저임금제가 도입되어 월급액이 크게 증가했다.

그로써 내수시장이 급속 성장하자 눈높이가 상향되며 삶의 질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공장 등 산업체 일자리를 외면다.

동시에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노동조합이 결성된데 따른 골 아픈 사안들을 기업주들은 값싼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 쓰는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해나갔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로, 외국인 근로자 수는 10만명 수준에서 40만명 이상으로 급격히 늘었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통계에서 동포 취급을 받아 제외된 상당수의 조선족은 이에 포함되지도 않은 수치였다. 

그렇게 2019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 250만 시대를 열었다.

외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인력난을 해소시켜주고 더구나 저임금으로 일해준건 고용업체 입장에서야 반가운 노릇이겠으나 

결국 모두가 새옹지마, 세상사 돌고 도는 것이며 양지가 있으면 응달도 있다. 

이는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시 젊은 백수 양산으로 이어지며 이태백이란 신조어가 생기고 저임금이 고착화되는 현상을 만들었다.

그에 따른 숱한 문제점은 아마도 학자들 여러 수십 편 학위논문을 쓰고도 남을 터다.


지난 가을 학기에 다문화가정에 대한 공부를 하며 남다른 시선으로 이주 노동자들을 관찰했다.

미국에서 이민살이를 했던 나 역시 현재 한국인이 바라보는 베트남이나 필리핀 파키스탄 캄보디아 몽골 같은 나라 출신의 외국인에 다름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250만 외국 노동자 가운데 불법체류 근로자가 전체의 15%를 넘는 걸로 나타났다.

그들은 처음부터 밀입국한 게 아니라 산업연수생 제도 등 정식루트로 들어와 일하다가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체류기간이 지나도 그냥 숨어서 산다. 

이들은 교육수준이나 준법정신이 비교적 높아서 사고 안 치고 악착같이 일 돈 많이 벌면 귀국을 한다는 점이 미국 현지 사정과는 두드러지게 차이다.

미국 경우 통상 어떤 업체에서건 취업비자를 내줘서 외국인을 고용하려면 그에 따른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전에 내국인을 고용하려는 노력을 한달 내외 기간동안 신문광고 등으로 보여줘야 하나, 한국은 내국인 구인 노력 기준일은 단 7일이니 그저 시늉이나 낼 뿐이다.

또한 미국은 전문기술을 증명할 경력증명과 자격증 등을 요구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지만 한국은 그런 게 거의 필요없다.

한국은 취업비자 만기가 3년이며 연장은 별도의 수수료 없이 최대 2년 미만까지 할 수 있어 융통성이 넉넉하다.

거기다 중국 조선족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 아시아의 고려인은 동족임을 배려해서 입국절차가 더 용이하다. 

자국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부득불 일손이 부족한 타국으로 나와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해주고 돈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들. 

근로여건 개의치 않고 그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버는 돈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성실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못 사는 나라 국민이나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눈에 띄게 차별하고 홀대하거나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인해 야기되는 문제는 특히 동남아 여성들과 국제결혼한 다문화가정 케이스에서 자주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해외 파견 노동자 역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징용에서부터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며 멕시코 에네켄(애니깽) 농장 노동자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당시 외국에서 번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준 그들은 고마운 지사들이었지만, 현지 입장에서는 가난하고 말도 서툰데다 피부색 다른 그저 값 싼 외국인 노동자였을 과거의 아린 역사를 지닌 한국인.

1960~70년대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노동자를 파견 독일 광부와 간호사들은 눈물의 마르크화를 고국으로 송금했고, 중동에 보낸 건설업자들은 착실히 달러화를 보내 고국의 근대화에 힘을 보탰다.

난생 처음 해보는 세탁소 일로 열 시간 넘어 부대끼면서 이주노동자로 산 이민생활 이십년 세월.

겨우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스스로의 밥벌이나 한 주제에 내세울 일이라곤 눈꼽만치도 없지만, 광활한 미국땅을 보면서 이렇게 흰소리 치기도 했다.

안그래도 비좁은 한국땅 그것도 반쪼가리 뿐이니, 한명라도 더 해외로 나가 인구밀도 줄여주는 것도 애국이라고.

그처럼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보니 펄럭이는 태극기 사진이나 애국가만 들려도 가슴 뭉클해지는 순정파가 되기도 했다.

친정이 잘 살아야 시집살이를 해도 기 펴고 산다더니 발전된 모국의 국력이 곧 교민의 힘이라는 것도 그때 절감했다.

직접 이해상관이야 없어도, 원전을 중동에 수출하고 박세리 김연아가 국위선양을 할 때면 내가족 일이듯 뿌듯하고 흐뭇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무량히 너른 대륙의 땅덩어리를 무한정 부러워했다.

청청하게 지켜내는 자연환경도 진정으로 부럽고 이 모두를 올바르게 향유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참으로 부러웠다.

이번 사재기 광풍만 구경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주 노동자, 외국인 근로자, 3D(Dirty, Difficult, Dangerous)업종, 서독광부, 파독 간호사, 취업비자, 국제결혼, 불법체류, 이태백
이 블로그의 인기글

돌고 도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