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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章
02/28/2020 17:30
조회  377   |  추천   8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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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자연스럽게 손 맞잡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규칙적으로 일기를 쓴다거나 일정 형식에 따른 글을 계산하고 쓴 적은 없지만 아무튼 낙서 같은 것을 즐겨 왔다. 생활 속의 단상들을 간간이 메모해 두었다가 오죽잖은 그 편린들을 짜모아 노트에 정리해 놓기도 했다. 그렇게 글과 나는 별 부담없이 만났다. 흉허물없는 친구같고 스스럼없는 가족같이 편안한 관계로.


써놓은 글들에 시 혹은 소설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지만 제대로 된 글은 물론 아니었다. 체계적으로 문학공부를 한 바 없다보니 어디까지나 자아도취에 빠진 낙서에 준하는 글 수준이었다. 이름이야 무엇이든 모양새가 어떠하든 그 작업은 나를 매료시켰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직 글을 쓰는 순간의 열락(悅樂)이었으니까. 

 

그만큼 무턱대고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글쓰기의 기초인 문법도 제대로 모르는데 간결체니 단문체를 알 턱이 없었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어떤 자세로 문학에 임해야 하는지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글쓰기는 예나 이제나 제 신명에 겨운 일종의 광기이자 편집된 몰입이다.  쓴다는 그 자체가 졸고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분출하는 기()에 밀려서 쓰고, 속에서 이글거리며 터져 나오고 싶어하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인식의 굴레, 나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사랑한다. 생활과 의식의 괴리, 그 혼돈과 갈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은 잠시일망정 얼마나 큰 은총인지. 처음부터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나 목표가 분명했다면 애당초 나는 아마도 글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과단성있게 일을 추진해내는 끈질긴 성품도 아니고 뛰어난 의지력과도 거리가 뜬 자신이므로.


막연하기만 했던 문학에의 꿈. 그 꿈 한 자락을 잡았을 뿐 딱히 수필이라는 장르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온 것은 아니었다. 시와 소설, 동화에다 시조까지 끄적거려가며 자유분방하게 항해를 계속해 오던 중. 드디어 정박하게 된 곳이 수필이란 기항지로, 내 유랑의 배는 거기서 마침내 닻을 내린 것이다. 그 기회도 우연히 왔다.


행복의 정상과 절망의 끝 자락을 두루 섭렵한, 오미자 차맛과도 같은 나이에 어느덧 이르렀다. 글은 지금까지의 내게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해본다. 우선은 글을 통한 자기 구원의 역할이 가장 값진 것이었고 ‘나 여기 살아있음’ 의 존재증명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가치이리라되풀이 말하지만, 나는 글쓰는 그 자체를 즐겼으며 그 순간 일종의 엑스터시마저 느끼곤 했다. 흔히 문학은 뼈를 깎는 고행이며 통렬한 가슴앓이라고들 한다. 반면 너무 안이한 자세로 글을 써온 나. 내게 있어 글쓰기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도, 각고의 아픔도 아닌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향락일 따름. 다만 유념하고 있는 점은 사물을 마음으로 보려하고 또 숨어있는 내면의 핵을 발견하고자 나름대로의 진지한 시도멈추지 않았다.


여나믄 살 무렵,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정신을 기린 작문을 써서 상을 받은 기억과, 여학교 때 교지에 쓴 시 몇 편이 고작인 문학과의 인연. 대체로 차분한 성정이라 책과는 가까이 지냈
으나 외람되이 감히 글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다질만큼 야무치지도 못했다. 물론 등단 욕심을 부릴 여건도 아니었다. 잡문이나 끄적거릴 뿐, 어디까지나 독자의 한사람임에 만족했다. 이러한 우리가 뜻밖의 해후를 한 것은 그로부터 십 수년 후. 큰 아이가 초등 1학년 때 담임의 권고로 모자가 백일장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글과 나는 정식으로 만나게 됐다. 80년대 초의 일이며, 이후 나는 글과 열애에 빠졌다.


그러다 느닷없이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별다른 연고도 없으며 친구 하나 없는 타향객지 부산에서 시간을 바칠 일이라곤 자연 글쓰기와 책읽기였다. 읽은 책은 거의 다 독후감을 남겼는데 그 덕에 무질서하고 조악한 붓이 얼마쯤은 다듬어 질 수 있었다. 차츰 틀을 잡아가는 글. 나는 익명의 자유를 맘껏 누리며 여기저기에 글을 참 많이도 투고했다. 바로 이 시기, 나의 글은 훈련을 되쌓고 연마를 거듭할 수 있었으니 그때가 나의 습작기였던가. 그러나 습작시절은 과거완료형이 아니고 현재도 수련기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리라.


미완의 章, 그 앞에 선 나는 여전히 수줍은 신부다.  




-부산일보 1995- <나의 습작시절>에 대한 청탁원고로 한정된 장수에 묶여 뒷쪽 마무리가 꽤나 급했습니다.

미완, 글쓰기, 백일장, 습작기, 독후감, 시, 소설, 동화, 시조, 수필,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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