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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연순씨
02/22/2020 16:59
조회  508   |  추천   1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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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순씨는 언니 친구다.

중학 동창이나 서울에서 같이 대학을 다닌 친구 사이다.

현재 그녀는 1인가구, 함께 사는 가족이 없는 말하자면 독거노인이다.

그러나 연순씨는 놀랍도록 자기관리가 철저한 멋진 노인이다. 

지금도 칠첩반상 골고루 식탁에 올려 항시 자기를 대접한다. 

일흔 아홉 나이라 상노인 같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도 매일 수영장에 다니고 뒷산에 올라 운동을 한다.

젊어서부터 규칙적으로 다져와 일상화된 삶의 패턴일 뿐 새삼스러운 노력이 아니다.

작은 키에 곱상한 외모지만 강단진 그녀, 걷는 자세 반듯하고 의연스러워 뒤에서 보면 나이 가늠이 어렵다.


연순씨는 남편을 오십줄에 떠나보내고 드넓은 집을 홀로 지키다 이젠 살림 줄여 거처도 옮겼다.

딸네와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한 그녀지만 그렇다고 딸을 귀찮게 하는 엄마는 전혀 아니다. 

노인이라도 자식에게 의존하려는 나약함 자체를 수용 못하는 '놀랍도록' 강하고 독립적인 연순씨.

슬하에 딸만 둘인 연순씨, 독신인 큰딸은 미국에서 지내고 결혼한 작은 딸은 지난 가을 입대한 아들이 하나.

연순씨 가계도는 이렇듯 아주 단촐해 귀하디귀한 외손자가 군대 가기전 삼대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 여행은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그녀는 힘들기 짝이 없다고 알려진 췌장암, 그것도 두번째 수술날짜를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조기발견이 어렵고 예후도 좋지 않은데다 수술을 해도 완치 확률이 낮은, 곧 생존률이 극히 적은 암의 하나가 췌장암. 

수술을 받을 당시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친구들은 전혀 몰랐다.

항암치료 받는 동안까지 연락두절 상태, 친구들은 미국 딸집에 갔으려니 했다. 

언제나 단아하게 가꾸고 다니던 그녀는 머리칼 빠져버린 모습을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터.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비밀에 붙인 암수술인데 병원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을 통해 소문이 퍼졌다.  

세상 어떤 비밀도 끝까지 감춰질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녀는 자기 차를 직접 운전해 퇴원을 했듯 이후 전과 똑같이 차를 몰고 운동하러 다녔다고 한다.

반년만에 동창모임 자리를 찾은 그녀, 굳이 아는척하지 않았다.

다들 아무일도 없었던 무상심하게 대해줬다.

그 모임은 줄창 계절별로 단체여행을 가던 터, 강릉으로 봄여행을 가게됐다. 

이때 음식문제로 연순씨는 비로소 근황을 밝히며 이해를 구했다.

누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묵연히 고개만 주억거렸다고 한다.


그렇게 이태가 지난 작년 여름 그녀는 췌장암이 재발해 다시 입원을 했고 또 수술을 받았다.

흐트러짐없이 강인하게 견뎌온 그녀도 반복수술에 자신감을 잃고 심신이 확연히 지쳐갔다.

재차 받게된 항암 방사선치료로 그녀는 완전 기진맥진, 미국에 사는 딸이 와서 한달간 머물며 간호를 했다.

지난달 언니는 동창들 넷이서 연순씨와 함께 사흘간 고향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전히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놓지 않았으나 화상 입은듯한 피부를 보자니 가슴이 쩌르르하더라고.  

시어른께서 췌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중 운명하셔서 그 처절한 고통을 곁에서 지켜본 바 있다. 

평소 그리 당당하셨던 분이 참다참다 신음이 고함으로 변해 소리지르기 일쑤였다. 

진통제로 연명하다시피 하며 신장투석까지 받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우한폐겸 확산으로 이젠 운동도 못나갈 연순언니, 집안에서 혼자 놀 수 있는 취미라도 있을지 안타깝다.

여지껏 잘 버텨왔듯 어떤 상황일지라도 끝까지 힘내세요, 연순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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