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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근로자, 남의 일 같지가...
02/20/20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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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가설무대 설치작업하는 동남아 노동자(호미곶)

건축현장에서 페인팅 작업하는 중동인 노동자(김해)

미역양식장에서 밧줄을 거두는 흑인 노동자 (기장)


동병상련일까.

외국인 근로자, 아무래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들을 바로보는 눈길 애틋해지는 이유를 알만한 이는 알 것이다. 

한국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역지사지가 아니되니 쉬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한국인은 너나없이 무작정 대부분이 무의식에 가깝게 이런 전철을 밟아나간다.

대책없이 자식 대학을 보내 큰학교 나와도 마땅히 할 일은 없고 3D업종으로 치부된 노동일은 무조건 기피한다.

사지 멀쩡하면서 청년실업 수당은 받을망정 몸으로 때워야 하는 막일은 거들떠도 안본다. 

그렇다고 실력이나 되냐하면 촌구석 오지에 들어선 유명무실한 대학교란 곳이 수두룩한 한국 실정.

보나마나 그렇게 속빈 강정같은 간판만 딴 경우 부지기수다.


요즘 젊은이들은 제 능력탓 대신 불공정한 사회 탓하기 일쑤고 뒷바라지 제대로 못해준 부모 원망까지 한다. 

사회에 나와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좌절감과 무력감을 겪게되면 울분부터 차올라 앵그리영맨이 된다는데.

경쟁사회에서야 실력없으면 응당 도태되기 마련이다.

무시당하며 억울하게 살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릇 이 시대 청춘들 뿐만인가.

그럼에도 성실히 능력이라는 내실 다지기는 커녕, 기를 쓰고 화이트칼러로만 살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허황된 구름이나 좇으며 캥거루족으로 부모의 짐짝되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젊은이들.

물론 제 밥벌이도 못할 정도로 나약하게 그리 키운 부모 책임도 크다.

기껏 한다는 짓이라고는 무림의 고수 흉내내며 연예계 판을 돌거나 심심풀이 삼아 편의점 알바생 자리나 기웃댄다.


그러니 노동현장의 숱한 일감들이 일손을 찾지못해 궁여지책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일 밖에는.

제 발등 찍듯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빈곤문제가 골머리인 미국이나, 인도와 중동인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영국.

부메랑이다. 인과응보의 귀결이다.

취업자격을 얻어 체류하는 외국인이 어언 백만을 넘어섰다는 한국, 여기에 더해 불법 외국인노동자도 다수라 한다.

시작은 필요한 노동력 충당을 위한 이민정책이지만 먼 훗날 발가락 물고 늘어진 게의 집개 발되지 말란 법 없으렷다. 


이십년 전 한국에 살적에도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국적 여인들이 식당에서 일하는 걸 가끔 보았다.

오늘날 한국의 식당 주방일이나 서빙 또는 노인병원과 요양원 간병 도우미는 대부분 그들이다. 

인력난에 시달려온 중소기업체나 아파트 공사장은 일찌감치 외국사람이 태반을 차지했다.

소소한 일용잡직과 농촌 배추 뽑고 오이 따는 일까지 어느새 외국인이 도맡았다.

따라서 이제 한국에서는 여러 분야에 종사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아주 흔히 만나게 된다.

  

조선족은 한국말을 쓰긴하나 어투가 영 다르고 서남아시안은 한눈에 피부색이 차이난다. 

파키스탄이나 중동인도 제법 눈에 띄지만 요샌 토종 아프리칸도 자주 보인다.

얼마전 바닷물 속에서 끄집어 올리는 밧줄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기에 다가가 무슨 일을 하는냐 물었다.

그는 숙인 고개를 흔들기만 했다. 

불법체류 노동자인가 여겨질 정도로 그는 유별스레 웅크린 자세를 풀지 않았다.

답변은 공동작업을 하던 동네노인이 대신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할 줄도 모른다고.

밧즐에 미역 포자 심었던 거 깔끔하게 다듬는 단순노동을 하는 거라고.


이민초부터 십오년을 나 또한 그렇듯 오전내내 세탁물에 손아귀 쥐나도록 텍을 달았다. 

오후엔 세탁해 들여온 옷 포장하느라 어깨 혹사시키는 단순노동을 끊임없이 반복했었다.

유학생활을 한 전문직 종사자라면 몰라도 말이 어설픈 처지의 이민자가 단순노동 외의 업종은 선텍의 여지가 없으니.

손님들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도 나이든 쥐 독 뚫는다고 나이 덕에 그나마 눈치와 요령으로 실수없이 대처했다.

일이 밀리면 퇴근 늦어지기 일쑤, 미리미리 준비해놓아야하는 일이라 남아서 미처 처리못한 잔업을 해결해야 했다.

봄 가을 바쁜철이면 일요일도 성당에서 곧장 가게로 직행해야 했다.

그래도 불평이나 군소리 없었던 것은 자영업이라 몸 사리지 않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었기 때문.   

마음이 공연히 심란스런 날은 한국의 설이나 추석으로 미국에선 일을 해야하는 평일일 경우였다.


남의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언어문제가 걸림돌로 얹혀있는 동안은 그로인한 중압감이 보통 아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시도한 일이 다문화가정 심리상담사 자격취득이었다. 

물설고 낯설은 타국에서 매일 언어장벽이라는 스트레스를 겪어가며 초기이민자의 고단한 삶을 실제 살아봤던 나. 

해서 편견 깊은 한국사회 속 다문화가족에 대한 공감대가 나름 짙었다.


다행히 내가 겪은 미국이라는 사회는 Melting pot이나 Salad Bowl 문화로 대변되는 나라다. 

따라서 의사소통의 불편함 외에는 문화적 갈등 혹은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다문화주의 사회였다.

반면 한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 단일문화, 단일국가라는 민족적 순혈주의가 타 국가에 비해 월등 강하게 작용해 온 나라.

그러한 한국사회에 거주하면서 막노동일을 해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남다른 피부색과 어눌한 말씨로 인해 아마도 주위 시선 따가이 느끼기도 여러번이었을 터다. 그게 짠하다.

 

외국인 노동자, 피부색, 사회적 편견, 불법체류자, Melting pot, Salad 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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