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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둥두렷 뜬 정월 대보름달
02/08/2020 01:00
조회  589   |  추천   14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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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날도 깜박 잊어버렸다. 미국에서도 오곡밥 해먹으며 유난 떨었는데 나물조차 준비하지 않은 정월 대보름이 되고 만 셈. 무심하게 저물녘 바닷가 방파제에 나갔다. 어느 중년부인이 갯바위에 서서 달을 보고 비손을 했다. 그제서야 토요일 오늘이 보름날이라는 게 생각났다. 어둡지도 않은데 달은 이미 높다라니 떠있었다. 달님 향해 얼합장배려부터 올렸다. 해수욕장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둥두렷 중천으로 올라온 보름달이 바다에 금빛 레이스 길게 깔아놓았다.


해변가 카페는 주말이라서인지 손님이 바글거렸다. 코로나 때문에 해운대 달집태우기나 여타 행사는 전수 취소됐다는데 전염병 따위 아랑곳않는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바닷가로 나왔다. 당장 큰 변고가 생길듯 호들갑인 뉴스보도와 달리 사람들은 여전스럽게 일상을 엮어나가고 있었다. 사실 왕관을 썼건 베레모를 썼건 감기 바이러스야 걸핏하면 출몰하는 악동의 하나일 뿐. 밤바다는 파도 고요했고 바람결 봄날처럼 온화했다. 상가 불빛이 밝아서 정월 대보름다운 운치같은 건 별달리 느껴지지 않았다. 싱거운 기분이 들어 일찌감치 되돌아왔다. 



아래 7년전 포스팅으로 낮에 만든 동영상  

 

 

     
 캘리포니아를 달린다. 

사막이라 이름붙었지만 사막도 아닌 그저 막막한 황야에 드문드문 죠수아트리와 사보텐 무리가 스친다.

나무도 자라지 않는 척박진 산비탈에 조촐히 피어있는 연미색 야생화가 한참씩 이어지기도 한다.

이름모를 들꽃이 구름처럼 하얗게 흐드러진 들판길도 지난다.

여행 도중 언뜻 스쳐지나고 마는 차창 너머 풍경들이다.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저 혼자 피었다 지는 꽃들.

소박하면서도 한껏 화려하기까지한 꽃들의 향연은 무언가 충만한 기쁨에서라야 터져나올 법한

열락의 몸짓이었다. 아니 차라리 경건한 기도에 가까웠다.




일제히 하늘을 향해 추는 춤. 바람은 그들을 춤추게 하는 음악이었다.

오직 하늘만을 바라며 제 기쁨에 취해서 춤을 추는 포피 꽃송이들을 만났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벅찬 환희심이듯 넘치는 행복에 겨워 너울거리는 혼의 춤을 추는 그네들.

접신한 어린 무녀의 신명 내린 춤판이었다. 포피 보호구역 너른 언덕 가득 핀 꽃 무리는 아주 장관이었다.

가슴에서 둥둥 북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종당엔 아뜩해졌다. 몽롱해졌다. 아예 먹먹해졌다.

허허벌판에 느닷없이 나타난 화염같은 오렌지빛 캘리포니아 포피 군락.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매스게임처럼 물결져 나부끼는 몽환적인 춤판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하느님을 경배하듯 저마다 오롯이 손 모은 꽃들의 춤은 정녕 경탄감이었다.

오, 하늘이시여! 이 날을 마련해주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꽃들은 춤으로 신께 하례드렸다.

허락된 짧은 한 생애,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자 온 마음 다해 밀어올린 꽃봉오리들.

광대무변한 우주 안의 한점 티끌만큼 작은 존재일망정 꽃들은 제각각 설레임속에서

영광된 축복의 순간을 전신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양손 흔들며 일제히 환호하고 있었다.

온몸으로 추는 그들의 춤을 보노라니 홀연 먼 밀림 속 압살라의 무희가 떠올랐다.

흠모하는 단 한분을 위해 숲 깊이 숨어서 율동으로 풀어내는 그들만의 기도.

 



그들 앞에서 절로 앙코르와트가 생각났던 것이다. 오랜 날 잊혀진 채 밀림속에 묻혀 침묵하던 앙코르와트다.

곳곳 돌들마다에는 양각으로 2천여 압살라 무희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들이 신을 찬양하며 바치는 법열의 춤판이 가는 곳마다 질펀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옛날부터 오늘까지도 그녀들은 온 몸으로 신을 찬미하며 경배드리고 있는 중이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몸매로 손가락 묘하게 틀며 추는 춤.

과연 신을 유혹하고도 남을만치 고혹적인 자태인데다

그 춤은 충분히 신을 흐뭇하게 할만큼의 황홀한 몸짓이었다,



나는 장작개비처럼 뻣뻣하니 율동과는 거리가 먼 소위 몸치다.

도대체 몸이 리듬 탈 줄을 모른다. 어깨 들썩대는 흥은 지피나 덩실거리며 춤을 춰본 기억이란 도통 없다.

초등학교적 학예회때마다 어거지로 뽑혀 무슨 무용인가를 하긴 했지만

둔재인 나로인해 재연습이 보태져 아마도 함께 추는 동무들의 시간꽤나 허비시켰을 것이다.

하다못해 한창 젊을 당시 한세대를 풍미하다시피 한 트위스트도 춰보질 않았으니 말해 무엇하리.

마구 흔들기만 하면 트위스트라지만 나는 그게 도무지 열쩍었다.

가령, 분위기를 맞춰줘야 할 상황이라도 예나 이제나 고작 손뼉이나 치는 정도가 전부다.


국화

 

그러나 춤구경은 즐기는 편이다.

강수진의 이지러진 발 모습과 홍신자의 절제된 춤도 인상에 남지만

오래전 해운대 백사장에서 본 무형문화재의 씻김굿은 아직도 강렬하게 내 안에 각인되어 있다.

쾌자자락 휘날리며 낭랑한 목청으로 지성껏 신을 불러내던 그녀. 

마침내 신이 오르자 한바탕 건 춤판이 바닷가에서 벌어졌다.

그녀는 거의 깃털마냥 가벼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 춤판의 압권은 단연, 바다로 향해 길게 펼쳐진 허연 광목천을

그녀 자신이 칼날되어 좌악 가르며 내닫는 찰라의 팽팽한 긴장감이었다.

다들 감히 경탄의 함성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마른 침만 삼켰다.

 

장미

민족마다 나름 고유의 춤이 있다.

고이 접어 나빌레라, 승무의 정적인 춤사위도 아름답지만

겅중겅중 뛰면서 마구 발 구르며 파격적으로 추는 토인들의 춤은 단순해서 좋다.

향불을 사루듯 비밀스런 주문을 외는 아라비아 여인의 춤은 비밀스런 꿈을 꾸게 한다.

빙글빙글 천천히 돌아가며 결속을 다지듯 부족 모두가 손잡고 추는 인디언들의 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고구려 고분속에서는 저마다 소매깃 나붓대며 한 방향으로 춤추는 사람들이 나온다.

축구장을 뜨겁게 달군 붉은 악마의 역동적인 파도는 넘실넘실 그 얼마나 멋지던가.

휘적휘적 산길을 걸어가는 선승의 걸음은 그대로가 禪定의 춤이며

신 향해 전신을 내던지는 오체투지는 인간의 몸으로 표출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춤이다.


수련


'사람들은 춤을 춤으로써 황홀한 경지로 잠겨들고 현세와 내세 사이의 차이같은 것을 뚫는다.

 나아가 그들은 신을 인간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 신과의 대화를 위해,

신을 숭배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고 한다.

태생이 그러하듯 춤은 신을 위한 가장 원초적(原初的)인 인간의 감정 표현수단이며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방식이라고 정의된다. 그처럼 태초의 사람들 몸짓 그 자체가 춤이었을 터이다.

신비로운 빛과 어둠, 아지못할 저너머의 것, 초월적인 그 모든 외경스런 것에 대해

그들은 두손 높이 올리고는 삼가 경배의 춤을 추었을 것이다.

동굴 속 벽화가 보여주듯 더없이 크나큰 흠숭 보내며 최상의 오롯한 몸짓으로 산들산들 춤을 추었을 것이다.

춤은 몸짓이다. 갈망의 몸짓이다. 춤은 움직임이다. 뜨거운 움직임이다.

춤은 공간적 흐름이며 거기에서 짜여지는 고운 문양이다. 춤은 그러나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자연의 춤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무수히 만나곤 한다.


장미


벼랑을 구르며 협곡을 내지르며 포말져 흐르는 물살의 춤은 격정적이다.

피어오르는 새벽 운무는 더없이 환상적인 춤이다. 몰아치는 해일은 파도의 춤이다.

바람 이는 숲에서 잘게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나부낌. 봄날 아롱거리는 아지랑이.

옐로스톤 힘찬 핫스프링의 예측불허 변화무쌍한 춤. 남미 어느 호숫가에 산다는 홍학의 느릿느릿한 춤.

꼬리 살랑대며 지느러미 나붓거리는 열대어의 춤. 비상하는 새의 나래짓.  

반짝이며 남실대며 흐르는 강물결. 열병식을 하는 한여름 옥수숫대.

나래 팔랑이며 꽃에서 꽃으로 따라 흐르는 나비. 나부끼는 억새. 평원을 치달리는 표범의 등.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비바람에 일렁이는 대숲. 만개한 벚꽃구름. 모두가 춤이다.


 튤립

또 다른 춤도 있다. 하늘 높이에서 펄럭이는 깃발. 가을 들녘 허수아비. 삭풍에 떠는 문풍지.

과녁에 꽂힌 화살대.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 찰랑대는 호숫가의 작은 거룻배. 너울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

 그랜드 캐년의 색색 다른 지층은 시간의 춤이며 沙丘에 난 물결무늬는 바람의 춤이다.

무량수전 대들보에 드러난 木理는 나무의 춤이며 댕그랑 울리는 풍경소리는 물고기의 춤이다.

저물녘 달맞이꽃 가슴 풀며 막 피어나는 달마중 춤은 또 얼마나 은근스러운지.

뿐인가.노란 물감 듬뿍 적신 고흐의 붓은 캔버스에서 춤추고

날렵하게 튕겨지는 백건우의 손은 건반 위에서 춤춘다.


와일드 오키드

철따라 여전히 피고 질 들꽃들, 그들이 펼치는 춤사위가 하마 그리워진다.

춤은 분명 그들의 기도 코드다.

하늘 우러러 오늘도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한들한들 춤추는 그들의 몸짓을 다시 만나보고싶다. <2013년 봄>

정월대보름,대보름달맞이, 싱겁게 뜬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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