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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의 도서관 규모
09/25/20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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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로렌조 엘 에스코리알 (San Lorenzo de El Escorial)수도원의 전체 모습   -구글에서 다운로드-











 

 

 



사전에 코스 정하고 철저하게 여정을 짜서 계획대로 여행다닌 것이 아니라서 오늘은 어딜 둘러볼까? 잠시 생각부터 가다듬어야 했다.

아무래도 수도이므로 볼거리가 많을 터라 발길 닿는대로 중심거리를 배회하다가 일단 역에 비치된 관광 가이드 팜플릿을

챙겨 지도를 살펴봤다.

세고비아나 톨레도로 빠질 생각도 들었으나 마드리드에 대한 예우도 그렇고하여 명소 한곳 쯤은 찾기로 했다.

유럽에서도 가장 큰 궁전으로 알려진 2천여개의 방이 있다는 마드리드 왕궁을 갈까,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 (Alcala de Henares)를 갈까, 선택의 기로에서 약간 망서려졌다.

머뭇거리다 최종 낙점한 곳은 팜플릿 사진에 반해 택한 장소, 장엄한 건물이 호수에 비친 반영 근사하기 이를데없기에 선뜻 

왕실 수도원인 산 로렌조 엘 에스코리알 (San Lorenzo de El Escorial)로 향했다.

1557년 큰 전투에서 프랑스를 격파한 펠리페 2세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마드리드 교외 아반토스 산기슭의 부지를 직접 선정해 왕궁의 수석 건축가에게 예루살렘 성전 본딴 건물을 짓게 했다.

균형잡힌 기하학적 형태와 장식을 최대로 절제한 바로크 양식을 특징으로 한 수도원은 남북 길이가 207m, 동서 162m로 무척 방대한 규모다. 

16개의 정원, 15개의 회랑, 88개의 분수, 1,200개의 문, 2,673개의 창문이 있는 어마무지 크지만 요란스럽지 않은 건물이다.    

이곳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다 스페인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장소이나 엉뚱하다 할 정도로 수도와도 멀리 떨어졌고 또 너무 외졌다. 

그럼에도 주말이면 갖가지 행사가 줄이어 단체학생들과 가족 단위의 당일치기 관광객들로 계절없이 붐빈다고 한다.

LA 근교처럼 바짝 메마른 대지에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무 어설프게 듬성듬성 서있는 창밖 풍경은 황량 그 자체라 부지런히

기차는 달려도 지루하도록 더디게만 여겨졌다.

가도가도 황야 뿐 모양새 번듯한 도시는커녕 마을도 별로 나타나지 않아 어쩐지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한시간 거리, 수도에서 서쪽으로 45km 떨어진 삭막한 야산에 산 로렌조 데 엘 에스코리알은 기다리고 있었다. 

왕립수도원이자 성당이며 교육기관이면서 의료시설인 곳, 5만권이 넘는 장서가 소장된 대도서관과 왕실의 영묘가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산 로렌조는 스페인 왕령지의 하나이다.

역에 도착한 즉시 수도원 가는 길을 물어보고는 방향부터 옳게 잡은 후 아기자기 고풍스런 작은 동네를 가로질렀다.

고목 어우러진 품격있는 공원과 허물어져 가는 낮은 성터를 지나 그늘도 없이 이어지는 빤한 신작로 길을 척척 걸어나갔다.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가는 외에 사위는 고요했고 여행객도 많은 편은 아니어서 매우 한적한 길, 쾌청한 날씨였으니 망정이지 무섬증 일 법한 외딴길이었다.

어림잡아 1km 넘게 걷는 동안 웬지 미궁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마저 들었고 숲이 빈약해서인지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은근 휘휘하기까지 했다.  

배낭 무게가 새삼스레 짐스러워질 즈음 저 멀리 자태도 선연히 뾰죽지붕이 나타났다.

산 로렌조 수도원이 가까이 다가오자 압도해오는 어마어마한 건물 외양에 절로 주눅이 들었고 뿜어져 나오는 기가 하도 쎄서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학 캠퍼스이듯 드넓은 대지에 요새처럼 견고하고 완강하게 버텨선 건물은 누구라도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반듯이 쌓아 올린 사방의 높은 석벽은 빈틈 하나없어 지붕위의 돔 양식과 십자가만 없다면 성곽이나 감옥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만큼 전반적인 분위기가 냉랭하고 무뚝뚝한데다 창문도 건물 크기에 비해 갑갑할 정도로 작게 내놨다.

산 로렌조 역시 스페인 유명 건축물들처럼 사진을 산언덕에 올라가 찍거나 드론을 띄우지 않는다면 도저히 한꺼번에 전모를

다 담을 수 없었다. 

안그래도 왜소한 사람 위축감으로 잔뜩 쫄아 작아지다못해 아예 물방울로 잦아들고 말 것도 같았다. 

 










 









고개를 치켜들고 다녀야 하기는 실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성당 중앙 첨탑은 높이가 200m 넘는다는데 그곳 천정화는 장엄하다

못해 아연하게 만들었다.  

그 많은 방은 물론 복도마다 금빛 휘황하고 화필도 섬세하게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회랑의 벽이란 벽 역시 전부 그림으로 채워졌는데 대형 벽화는 구약과 신약을 연대별로 일목요연하게 그림으로 해석해 놓았다.

회화보다 더 놀랍던 것은 도서관의 금박입힌 고서, 천체에 관한 자료들, 정교한 지구의, 각종 은제 시계들로 18세기에 이미

스페인이 보여준 차원 높은 과학문명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바다 건너 멀리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세계를 주름잡게 되는 해양대국의 기틀은 이 도서관에서 이미 짜여져 있었다.

지구의를 돌리면서 수사들과 학자들은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르렀을테고 하루를 쪼개 분 초를 정확히 계산해 냈기에 그들은 시야를 넓혀 거침없이 해외로 영토를 확장해나갈 수 있었다.  

이에 큰 역할을 한 콜럼버스는 잘 아다시피 스페인 사람이 아니고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이다.

제노바에서 항해 지도 제작에도 종사했었던 뱃사람 콜럼버스는 항해 붐이 일고 있는 포르투갈로 이주하여 국왕 조안 2세에게 항해 계획을 밝히고 원조를 요청하나 묵살당한다.

이에 의지를 굽히지 않고 기회를 엿보던 콜럼버스는 당시 떠오르는 신생국가인 스페인으로 건너가 이사벨 여왕을 만나게 된다.

여걸이었던 이사벨은 그의 제안을 수락, 신하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콜럼버스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한다.

1492년 8월, 그는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팔로스 항을 떠나서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일단 대서양 북아프리카 연안인 카나리아 제도를 항해한 다음 본격적으로 서쪽을 향해 출발했다. 

선원들의 반란 조짐을 가까스로 잠재운 뒤 조심스럽던 항해 끝에 그해 10월, 지금의 바하마인 산 살바도르 섬에 도착한다.

당시 그의 신대륙 상륙을 인도 발견이라 믿은 스페인 정부에서는 그의 성공에 고무되어 콜럼버스로 하여금 네차례에

걸쳐 대규모 탐험대를 꾸리게 하였다.

그의 사후에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인도가 아니라 새로운 대륙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곳에서

막대한 양의 금은과 귀한 물자를 얻게되며 스페인은 부국으로 급성장한다. 

스페인은 그리하여 영국보다 앞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으나 흥망성쇠라는 세상의 이치에서 예외될 수는 없었다.

이날 수도원의 수도없이 많은 칸칸의 방을 죄다 섭렵하고 다녀 다리가 묵직해서, 대성당 지하 왕들의 무덤과 18세기 때 식민지에서 가져온 온갖 기화요초를 심어 가꾼 온실이며 기하학적 무늬로 다듬어 놓은 정원 구경은 접었다.

팜플릿 사진에서 눈길 사로잡혔던 건물 반영 매혹적인 네모난 호수도 그림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림엽서처럼 예쁜 윗동네 카페에 들러 치즈케익 한쪽으로 기운 돋운 다음 가뿐하게 왕립수도원을 떠났다. 


산 로렌조 엘 에스코리알 (San Lorenzo de El Escorial), 펠리페 2세,왕립수도원, 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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