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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 서울역
09/15/2019 23:00
조회  699   |  추천   21   |  스크랩   0
IP 121.xx.xx.44

 

몇 십년만에 마주한 서울역인가.
강산이 두 번 변한 세월동안 미국살이를 했고 한국서 살 적에는 관심밖이라 주목하지 않았던 서울역이다.
담황빛 벽돌을 쌓아올린 다음 지붕 중앙에 초록색 돔을 얹어 그럴싸 단단해 뵈던 서울역.
학창시절 고향을 찾을 때도 서울역은 거기 항상 서있는 덤덤한 그냥 건물일 뿐이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상경해도 언제나 총총 역사를 빠져나와 제각기 갈 길 가기 바빠 서울역을 뒤돌아 본 적 없었다.
올 추석 차례지낸 다음 귀향길 교통편은 열차를 이용할 작정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기차 출발시간보다 훨씬 일찍 서울역 지하에 도착했다.
한눈에 단박 들어오는 한글 안내판인데도 복잡한 지하역에서 기차 역사로 올라오는 동안 이리저리 길을 찾아 허둥거렸다.
글자 하나 모르는 낯선 이국 도시에서도 헤매지 않았는데 내나라에서 길을 잃고 기차시간 놓쳐 난감해지는건 아닌가

마음 급해졌다.
어찌어찌 인파에 쓸려서 넓다란 대합실을 거쳐서 밖으로 나왔다.
여기가 어디야? 두리번거려봐도 세브란스병원이 보이던 예전 서울역 광장은 간곳 없고 죄다 낯선 풍경들.
저만치 기억속의 그 서울역사 낯익은 지붕이 보였다.
반가움에 쫓아가 보니 지하 차도 그 너머, 가닿을 길 없는 건너편에서 겨우 지붕 꼭대기만 드러내고 있는 서울역사.
그때부터 뭔가에 홀린듯 얼이
빠져 어리벙벙해지며 뒤죽박죽 정신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원래 방향치에 길치이긴 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동서남북 가늠이 안되고 앞뒤 분간도 안섰다.
시선을 둔 정면에 똑바로 나있는 넓고 긴 홀이 보이기에 무조건 직진을 했다.
대리석이 깔린 그 길이 끝나자 자동적으로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남영동쪽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전혀 알 수 없는 도시풍경이 기다릴 뿐 차만 씽씽 내달리고 인적조차 드물었다.
다시 되짚어 처음 자리로 돌아와 나이든 행인에게 염천교 근처였던 서울역 광장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가 가르킨 곳은 내가 향했던 곳과는 반대방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상 서울역(地上-驛) 또는 국철 서울역(國鐵-驛)이 있고 지하 서울역(地下-驛)으로 구분돼 있으니

초행이라면 누구라도 헤매고도 남을 법 했다.
거기다 지상역은 12개 승강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8번 승강장은 KTX, 새마을, 무궁화 열차의 출발장이다.
9∼12번 승강장은 KTX, 새마을, 무궁화 열차의 도착장이며 12번 승강장은 경의선 열차, 천안행 전동열차의

승강장이라니 얼마나 복잡한지 촌사람 충분히 얼떨떨할 만 했다.
현재 사용되는 역사는 2003년에 개장한 민자역사이며, 구 역사는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어 있는데

거기까지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 쏜살같이 층계를 뛰어내려갔다.
아, 거기 옛 추억의 장소가 된 서울역사 건물이 오른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추억속에 살아있는 예전 역사와 해후하니 반가움 짙어서인가, 왈칵 눈자위가 매워졌다.

왼쪽으로는 유리로 된 세련된 새 역사 건물이 큰 쇼핑몰 거느리고 자태도 날렵하게 서있었다.
옛 역사 주변엔 시위대 천막과 현수막이 어지러웠고 길가엔 홈리스들이 아무렇게나 누운채 거리잠에 취해 있었다.
전엔 없었던 강우규 의사 동상이 결기어린 몸짓으로 두루마기 깃 휘날리며 앞으로 내닫았다.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란 그분의 유시가 어수선한 시국과 흐린 하늘 분위기와 얼추 맞았다.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 형장에서 순국하기 직전에 남긴 시라고 오석에 새겨져 있었다.
서울역, 동시대를 산 우리에게는 기쁜 만남과 아쉬운 헤어짐의 장소였던 서울역이라 보는이마다 느낌이 남다르지 않을까.

 

 

 

 

 

 

 

 

 

 

 

 

 

 

 

 

 

 

 

 


 

 

<다음은 문화대백과사전 '서울역' 전문을 옮겼음>

1900년 7월 8일경부선의 경성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후 1905년 3월 24일남대문역으로 개칭하였다가 1915년 10월 15일에 다시 경성역으로 환원하였다. 1925년 9월 30일에 서울역사가 준공되었는데, 도로면에서 볼 때 2층, 철로에서 볼 때 3층이다. 서울역사 역시 이 시기의 다른 역사들과 마찬가지로 철근 콘크리트로서 부분적으로는 화강석을 사용하였는데, 시공은 조선호텔을 지은 아오미 하지메가 맡았다.

역사 자체만 볼 때 연면적 6,836㎡(지하 2,747㎡, 1층 2,637㎡, 2층 1,452㎡)로 1914년 준공된 일본 도쿄역사의 4분의 1 규모이다. 초기 설계안은 과도한 예산이 문제가 되어 규모를 축소하였는데 준공과 동시에 협소함이 인식되어 장래 증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였다.
서울역사는 현재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난 외관을 갖고 있어 사적 제284호로 지정되었다. 건물 표면에 붉은 색의 타일을 부착하고 흰색의 화강석 수평 띠선을 두르고 벽면 모서리에 귓돌(quoin)을 설치하여 변화를 유도하였다. 이러한 수법은 부산역사나 신의주역사 등 당시 서양의 고전적 양식을 채용한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의장수법이었다.
서울역사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역시 중앙의 돔이다. 비잔틴 건축양식에서 이용되는 펜던티브(pendentive)를 이용하여 사각형의 평면에 돔을 올려놓았는데 펜던티브에서 얻은 원형의 뼈대위에 돔을 올리지 않고 펜던티브와 돔을 결합시켜 돔의 높이를 낮춤으로써 시각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이는 전체적으로 르네상스 건축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외관에 대해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평면계획을 보면 중앙부에 큰 홀을 두고 그 앞쪽에 2층 높이의 큰 출입구를 외부로 돌출시켜 입구로 삼았으며, 홀 좌우에 2층 건물을 덧붙였다. 현관지붕은 볼트(vault)구조이며, 정면에 거대한 창을 내고 그 가운데 애디큘러(aedicula) 모양의 감실을 만들어 시계를 배치하였다.
서울역은 개장한 이래 108년의 긴 역사를 가진 철도의 관문이며 2004년 4월 1일 KTX 열차 개통과 함께 서울통합민자역사로 새롭게 단장을 하여 현재 경부고속철도, 경부선 일반(새마을, 무궁화), 경의선의 시종착역이다.
1984년 4월 10일 「국유자산의 활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공포되면서 철도부대사업이 추진되었는데, 이 가운데 민자역사 건설사업은 급속한 경제발전과 도시팽창에 따라 역 주변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노후 협소한 역무시설을 현대화하고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편의시설 확충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서울역 민자역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987년 8월에 착공하여 1989년에 준공하였는데, 그 이름은 한화역사(주)로 지하 2층, 지상 3층으로 역무시설 1,790평은 철도청에 무상으로 귀속되었다. 대지면적은 31,262.8㎡로 연면적은 25,129.63㎡인데, 이 가운데 역무시설은 5,916.5㎡이다.
1989년 3월 (주)한화유통이 서울민자역사를 건설하여 운영하였으나 고속철도 건설사업에 의한 서울역 개량사업과 기존시설의 개선을 위해 1999년 12월 31일철도청과 한화역사(주)가 서울통합역사개발사업 추진협약을 체결함으로써 2000년 5월부터 서울종합민자역사 사업이 추진하여 지하 2층, 지상 5층의 역사가 2004년에 준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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