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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수탉이 지키는 아르카
08/31/2019 06:00
조회  522   |  추천   21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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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서로 손짓하며 부르는 소리'라는 시가 있다. 

숲을 건너온 바람맛은 그처럼 정갈하고도 감미로웠다.

비구름 밀어내는 바람이 아침부터 서늘하게 불어왔다. 

걷기 아주 좋은 날씨였다.

산뜻하고 쾌적한 기분이라 얼마든지 슝슝 빠르게 전진해 나갈 수 있으나 서두를 까닭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일정 조절을 더 느슨하게 해야 할 상황이라, 일찍부터 부지런 떨지 않고 일부러 느지막하게 길을 나섰다.

 

속히 목적지에 닿고싶은 마음에 경쾌하게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

동서양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액자 안 풍경이 괜찮다싶으면 주저없이 멈춰서서 한컷 누르고 

거의 다 왔다는 기쁨에 긴장풀고 들이킨 빈 맥주병을 이용한 인테리어, 길가 레스토랑인데 얼핏 벌집같았다

꼬루냐 지방의 선돌 고인돌 등 거석문화 흔적, 고인돌을 식탁과 의자 삼은 휴게실에 앉아있는 도미니카공국에서 온 코랄 

최종 목적지에 이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기다리고 있는 아르카 마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갈리시아공립알베르게 표식을 표주박 둘러맨 귀여운 고양이 아이콘으로 통일, 저 아래가 알베르게 입구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소 나누는 순례객들과 애견을 데리고 걷던 프랑스 아저씨도 거기 한몫  

 이 마을엔 이름난 와이너리가 있다고 하나 그외 주민 대부분은 순례객 대상인 숙박업과 레스토랑, 바를 주업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섞인 Santa Eulalia de Arca 성당은 스페인답지 않게 이상스레 마을에 유일무이한 성전 


카미노에 나서면 하나부터 열까지 뭐든지 혼자 정하고 혼자 해결하고 혼자 수습해야 한다.

매사 다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점이 무엇보다 카미노의 큰 매력이랄 수 있겠다.

체적 존재라는 자각과 자아정체성을 확인한다는 게 이토록 뿌듯할 줄이야.

마치 뒤늦게 자기 정체성을 찾은 이민소년이듯 숫된 회심의 미소마저 일렁인다.

나는 왜 여기 왔는가에 대한 답도 얻어냈으니 수확이 알찬 셈이다. 

무언가를 제때 꼭 이뤄내려는 강박증도 피곤한 일이고 자로 잰듯 정확하게 귀맞춰져야 하는 결벽증도 불편하다. 

카미노에 오른 것은 스스로 정한 이런 틀로부터 벗어나려 함이며 숨가쁘게 옥죄는 질곡들과 결별하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그 과정에서 자주 자신을 되짚어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자기성찰이 따르면서 자숙의 시간도 갖게 되었다.

여유롭게 세상을 관조하다보니 삶에 대한 시선 한층 너그러워져, 부족하다고 늘 자책했던 내 어께도 토닥여주고 싶어졌다.

그동안 호기심, 열정, 자신감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로 알았다. 

해서 나이 생각하라며 자꾸 누르기만 했던 호기심, 열정, 자신감이다.

카미노 완성을 목전에 두고서야 그들과 더불어 공유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었으니 이 또한 큰 수확이겠다.


 






 

아들이 카톡으로 거듭 당부하길 쉬엄쉬엄 다녀시라, 일등할 필요는 물론 체력자랑할 일도 아니라 했다.

분초 다투며 시간재는 마라토너도 아닐뿐더러 백미터 달리기 경쟁하러 온게 아님을, 안그래도 스스로에게 줄창 주입시켰다. 

설렁설렁 걸으며 이런 여유 허락해주신 하늘의 은총에 감사했고, 자연과 하나되어 걷는 동안 힐링이 무엇인지도 체감됐다.

이곳은 아르카( Aeca)라는 작은 마을, 굳이 멈추지 않아도 됐으나 페드로우소(Pedrouzo)만 지나면 콤포스텔라에 입성한다.

그전에 카미노 마무리를 위한 제반준비도 필요할 것 같았고 콤포스텔라만은 심신 정결히 가다듬은 다음 들어가고 싶었다. 

이삿날 택일하듯 일진좋은 날짜 뽑기까지야 하겠나마는 진작부터 일기화창한 날 들어가자며 기상상태 나름 고려해온 터였다.

그 조건에 맞추려면 하루 더 외곽에서 뜸을 들여야 하겠기에 머물 장소로 택했는데, 의외로 성당도 훌륭하고 마켓도 풍성한

짜임새있는 마을인 아르카였다.  

시청앞에 선 커다란 수탉 동상 깃털이 실제처럼 윤기나는 청남빛인데다 축구경기장 가듯 멋스럽게 묶은 수건이 눈길 끌었다. 

고색창연한 Santa Eulalia de Arca라는 성당은 벽체가 많이 헐었고 문이 굳게 잠겨있기에 사용하지 않는 줄 알았다. 

옆 건물인 사제관에 가서 물으니 순례자를 위한 저녁미사가 있다고 했다.

되돌아가는 길에 바삐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서 내일 먹을 도시락까지 미리 챙겨 두었다. 

시간맞춰 다시 성당으로 가 미사참례를 하고 강복을 받았다.

경건한 분위기로 인해서인가, 느닷없이 눈가가 매워지기에 얼른 천정을 바라보았다.

샨데리아 불빛이 빙그르르 돌았다.

제대 위의 가리비가 환한 빛줄기와 함께 바투게 다가서는 느낌도 묘했다.

이 길이 곧 끝난다는 게 어쩐지 허전하고 아쉬웠다.

영원이듯 카미노 길이 계속 이어져 걷고 또 걷고 싶었다.

세상만사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 마련이나 한편, 길은 또 어디에나 열려있다.  

내일이면 닿는 콤포스텔라는 우리 모두의 케렌시아(Querencia), 아득한 세월토 기다렸다는듯 두팔 벌려 반가이 맞아줄테고.


간밤부터 루를 동행한 코랄과 고인돌 식탁에서 과일 나눠먹으며 스케쥴도 조정 

아르카, 시청사 앞 수탉, Santa Eulalia de Ar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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