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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고문서의 귀향
02/08/20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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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참성단이 있어서 한번은 꼭 가보고 싶던 곳, 마니산을 우러르며 강화대교를 건넜다. 천연 요새와도 같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맨앞에 서서 외세 침탈의 수난을 견뎌내며 호국의 보루로 의연히 서있는 섬. 강화도는 한강으로 들어가는 내륙 뱃길이 시작되는 관문이기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한반도 5천년 고난의 역사가 압축된 강화다. 몽골항쟁의 근거지이자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격전장이었으며 유사시에는 임시 왕도가 되어 임금의 몽진처이기도 했던 강화도. 하여 바람 거칠었던 우리의 역사를 일별하려면 강화를 찾으라 했던가.

한국 다니러 간 길에 잠시 시간 내어 강화도를 찾은 지난 가을. 언니네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 팬션에서 하루 묵으며 강화 곳곳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둘러보았다. 지붕없는 박물관이란 말대로 단군설화에서부터 갑곶 돈대며 덕진진(德津鎭)
포대 등, 가는 곳마다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는 강화섬.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잘 생긴 고인돌이 있고 왕실의 주요 서책을 보관해 온 외규장각이 있어 섬 전체가 문화유적지인 강화다. 찢어진 창호문 틈새로 보이는 텅빈 내부의 외규장각 앞에서는 한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언저리를 마냥 서성거렸다.

병인양요 당시 약탈 당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외규장각 도서 일부가 이명박 정부와 프랑스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끝에 마침내 우리에게 인도되었다. 외규장각을 떠나 150년 가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수장고에 유폐되어 있던 도서들이 뒤늦게나마 고국으로 돌아왔다니 반가웠다.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강화도에 만들어 둔 규장각 부속 분관이다. 조선 말기 열강 침탈의 포화가 휩쓸기 전, 강화도 외규장각에는 의궤를 비롯한 1000여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어느 침략군이나 그러하듯 강화도에 입성한 프랑스 해군은 문화재를 마구 불태우는 등 훼손시키고는 주요 서책 349점을 약탈해갔다. 이처럼 국난때마다 유출된 우리의 문화재는 일본 프랑스 미국 등지에 총 7만 5,000여 점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75년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원이었던 사학자 고 박병선 루갈따 박사에 의해서였다. 그러고도 한참후인 1992년,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위상을 갖춘 후에야 우리 정부는 프랑스에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달라는 공식 요청을 하였다. 이듬해인 93년 미테랑 대통령이 떼제베를 우리나라 고속철도의 표준모델로 채택시키기 위한 판촉활동의 일환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이때 양국 정상은 외규장각 도서를 상호교류하고 대여(반환이 아닌)한다는 원칙에 서명을 했다. 합의대로 우선'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상하 두 권을 가져왔으나 수행단의 일원이었던 담당사서가 울면서 인도를 거부했다는 후일담이 들렸다. 해서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야 겨우 하나만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그간 양국은 반환협상을 계속했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고 한다. 도중에 국내 여러 단체가 프랑스 행정법원에 반환청구 소송을 냈지만 이도 기각당했다. 문화를 사랑하는 나라가 남의 나라에서 약탈해 간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점잖게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촉구해봐도 별무 반응이던 프랑스였다. 지지부진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프랑스에 영구대여 대신 갱신대여 방법을 제시하므로 프랑스 측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교착상태에 빠졌던 협상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반환협상 과정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밖에 없어 여러모로 순탄치 않았다. 문화재 반환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은, 외국 문화재 다수를 소장하고 있는 나라마다 앞으로 이런 예를 근거로 벌어질 반환운동에 대처해야 할테니 선례를 남길 수도 없을 터. 

거기다 국제관례에 준한 반환 조건도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한다. 한국은 무조건적 반환을 요구했으나 프랑스는 등가교환을 주장했다.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는 대신 한국이 소장한 문화재 중 비슷한 가치를 지닌 것을 보내달라는 얘기다. 반면, 적법한 문화재를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국내 문화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결국 프랑스 측은 한국에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 '갱신 대여'라는 방법을 채택했다. 입장바꿔보면 프랑스 측도 그 정도의 수위를 유지할 밖에 없는 셈. 어떤 경로로든 자국에 들어온 문화재를 본국의 요구대로 다 반환해주다보면 문화대국의 긍지인 루블박물관이 텅 비어버릴 일 아닌가.

프랑스 국내에서는 '문화재 반환의 선례가 아니라 대여일 뿐'이라며 자국 여론을 설득, 양국은 어렵사리 합의문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보다 실리, 한국 이대통령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에 사실상 돌려주기로 합의한 외규장각 도서는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를 기록한 의궤(儀軌) 191종 297권이었다. 의궤는 조선 왕실의 풍속과 생활, 경제, 행정,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담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약탈당한지 무려 144년만의 귀향이며, 19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한 한국인이 중국 도서로 분류된 도서 목록중에서 이 책들을 발견한 지 35년만의 귀국이다.

반환 형식이 산뜻명쾌하지는 않지만 일단 의궤 일부가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된 것만으로도 경사다. 참담하게 열강에 짓밟힌 지나간 역사야 되돌릴 수 없는 것. 과거를 거울 삼아 국력을 더욱 튼튼히 키워야만 그런 수모를 겪지 않는다는 뼈저린 교훈으로 삼을 일이다. 내 힘이 약하면 언제라도 먹히고 마는 게 국제사회의 역학구조 아닌가. 안그래도 노골적으로 얼씬거리는 중국 러시아에다 요샌 영국 프랑스도 인근 공해상에 자꾸 기웃댄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한반도 상황인데다 변화무쌍하게 돌아가는 세상이요, 걷잡지 못하게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다. 정신 바짝 차려 국내에서부터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가 있다. 그런 의미를 되새기며 지난 가을과는 다른 감회로 외규장각 앞에 다시 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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