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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보다 귀한 것
02/01/201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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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59.xx.xx.1

                                                                      <1979년 대구 봉덕동>


입춘을 앞둔 어느날, 스러지기 직전의 져녁햇살이 건너편 아파트 창문에 엉겨붙어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오후였다. 스산한 바람이 골목을 쓸자 나목인 가로수에 감겼던 지연(紙鳶)이 나풀거렸다.

시장 바구니를 들고 거듭 옷깃 여민채 추위 밀치듯 빠른 걸음으로 집에 오는 중이었다. 그때 무언가 노란 물체가 바로 눈 앞에서 포르릉 빗금을 그으며 날았다. 누군가 기르던 새가 조롱을 벗어난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높직히도 멀리도 날지하고 바로 내 시선의 테두리 안에 엉거주춤 내려앉아 있었으니까.

몇해전 우리도 문조와 십자매를 길러본 경험이 있었다. 당시 모이를 넣어주느라 문을 연 틈에 새는 잽싸게 조롱을 빠져 나오긴 하지만 담을 넘지 못하고 허둥대지 않던가. 안뜰의 라일락 줄기만 오르내리다가 다시 잡혀 갇히곤 하던 새. 새장 안에서만 살던 연약한 새가 달아나본들 먹이며 둥지며 무슨 대책이 있으랴. 곧 쌀쌀한 밤은 다가오는데.

천천히 손을 뻗어 살그머니 새를 움켜잡았다. 잉꼬였다. 노란 깃털에 전신이 감싸인데다 가슴팍에 약간의 연둣빛이 곱게 스민 잉꼬. 행여 주인이 찾을지도 모른다 싶어 한참을 기다렸으나 거리에는 어느새 한풀씩 어둠이 깔리며 찬바람이 스쳤다.

손 안에 든 이걸 어찌할까 망서리다가 풀어놓아 주는 것만이 방생이 아니란 생각이 들며 집에 데려가 보살피기를 작정했다. 새가슴이라더니 파르르 떠는 감촉에 연민마저 이는 그 순간, 녀석은 내 검지 손가락을 암팡지게 물고 늘어졌다. 하마트면 들고있던 찬거리를 떨어뜨릴 만큼 깜짝 놀랄 정도로 아팠다. 조그만 몸통 어디에서 그런 앙칼지고 다부진 힘이 나오는지 의아할 정도로 잉꼬의 쪼는 힘은 지독했다.

집에 오니 두 아이는 새를 보자 손벽을 치며 신바람이 났다. 애들 아빠에게 전화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는 퇴근길에 새장 사오라는 부탁을 했다. 일단 잉꼬의 임시 거처 삼아 바구니를 맞덮어 주었다. 아이들은 벌겋게 부르튼 내 손가락을 보고는 섣불리 건드리는 일 없이 거리를 두고 스스로들 조심을 했다.

잉꼬는 몹시 소란스런 목청으로 계속 우짖었다, 도대체 노래소리라 할 수 없는 날카롭고도 시끄러운 소리였다. 그래도 갑작스레 변한 환경과 낯선 분위기에 놀란 때문이겠지 여겨져 참았다. 밤이 되어 새로 사온 조롱에 옮겨지자 녀석은 좀 안정이 되며 성미가 누그러진듯 잠잠해지는가 싶었다. 그러다가 신경질적으로 둥지를 쪼아대기도 하고 좁쌀을 먹으면서도 요란스레 주변에 흩뿌리는 등, 새 치고는 퍽 거칠고 난폭하게 굴었다.

이튿날 새벽이었다. 비교적 아침잠이 많은 편인 우리집에 이변이 생겼다. 잉꼬란 녀석이 일찌감치부터 어찌나 목청 돋워 지절대는지 아무리 늦잠꾸러기라도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삐삐 쪼르릉 삐삑~여러 종류의 새가 모인듯한 착각마저 일 정도로 무척이나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구사하는 잉꼬. 늦잠 버릇을 단방에 없애준 건 고맙지만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금속성 예리한 소리는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시끄러운 노래를 멈추게 해 볼 작정으로 잉꼬 앞에서 쉿~하고 입에 손가락을 대보기도 했다. 그러나 녀석은 막무가내로 더욱더 소리 높여 우짖었다. 휘파람새에 부엉새 흉내를 내보기도 했고 하다못해 소리개 훠어이~~를 외치기도 했는데 본능일까, 그제서야 녀석은 종종걸음 치며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다. 잉꼬는 둥지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기더니 한동안 잠잠해졌다.

허나 그때 잠시뿐, 잉꼬는 온종일 지치지도 않고 지절거렸다. 통화를 나누던 친구는 새소리가 들리니 청량한 기분이 든다며 자기집에도 새를 키워야겠다고 샘을 냈다. 하긴 새는 꽃이나 열대어와 달리, 살아 약동하는 생명력과 강하고 풋풋한 리듬감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수시로 새장을 들여다보며 싱싱한 배추잎을 매달아 주고 계란 껍질도 넣어주면서 잉꼬와 친해지려 애썼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여전히 녀석은 사납고 거칠었으며 계속 시끄러웠다. 뭐가 불만인지 혼자 푸다닥거리느라 공연히 예쁜 깃털만 날려댔다.

가만 생각해보니 잉꼬는 '사랑새'란 다른 이름이 말해주듯 본래 암수 두 마리가 정답게 사는 게 원칙이다. 해서 다음날 새집째 들고 새 파는 가게에 가, 짝 맞춰 한 마리를 더 데려왔다. 처음엔 약간 경계하는듯 탐색하더니 금방 부리 맞대고 둘이는 인사를 나누는 시늉을 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변할까만은 이후 그래도 전처럼 요란스레 굴지는 않았다.

작에 언어가 통하는 친구를 데려다 줄 것을. 저렇듯 곁에 닮은꽆 동무가 있으니 좋아하는 것을. 한갖 조그만 날짐승도 그러한데 만물 중의 으뜸이라는 인간인 우리는 어떠했던가.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쟁의 비극에서부터 근자 어수선히 오르내리는 북한 뉴스를 접하노라면, 같은 동포가 언제까지 척진채 총 겨루고 대립해 살아야 하나 화가 치민다. 새들조차 같은 말을 쓰는 이웃을 계산없이 반기기만 할 뿐 사상이나 주의 따위에 목숨 저당잡히진 않거늘. 

문득 한마리 새되어 살고 싶음은 하늘 높이 비상하는 나래짓이 욕심나서가 아니다. 새들이 지닌 본능적인 자기류에의 무조건적 사랑이 부럽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보다 귀한 것은 참다운 자유와 평화, 그리고 진실이 통하는 사랑의 마음자리일 따름이다.

<1986>


<2018년 거가대교 앞바다>

보다 귀한 것,잉꼬, 조롱,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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