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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잎 다듬다가
07/12/20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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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잎을 다듬다가 끈끈이주걱과 파리지옥이라는 식충식물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벌레(외적)를 덫에 걸리게끔 유인해서 먹잇감으로 삼는 발칙한 식물.

생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엄혹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자 미물조차 놀라운 기지를 발휘한다.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고 붙박혀 사는 식물의 경우, 

부드럽고 연한 이미지의 '식물성'과는 달리 험한 삶의 현장에 맞닥뜨리면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고자 다양한 방식의 생존전략을 구사해 나간다. 

호박잎의 가시나 장미 가시처럼 밤송이도 마찬가지,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을 방어한다. 

잎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이거나 칼날처럼 예리한 식물을 스치면 앙큼한 흉기에 자칫 손을 베이게 된다.

마늘이며 양파는 표피에 상처가 나는 즉시 톡 쏘는 매운 냄새를 풍겨, 되도록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는다. 

미모사나 자귀나무는 잎을 건드리자마자 잎줄기를 접어버려 상대방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독성을 지닌 버섯류나 열매도 있으며 쐐기풀처럼 온몸을 독기 묻은 털로 무장도 시킨다.

적이 접근했을때 주위에 알리는 특수 신호체제를 가진 지능 높은 식물도 있다고 한다.

  침엽수 숲의 피톤치드(phytoncide)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강한 화학물질이며 참나무의 탄닌 또한 그러하다. 

따지고 보면 소나무의 송진은 나무가 상처진 아픔을 치유하며 내지르는 비명소리 나아가 눈물이다. 

 뿌리가 땅에 박혀있어 미동도 할수 없는 식물은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본능의 지시대로 자체 방어기전을 마련해뒀던 것. 



타 지역과는 달리 늦가을에 파종을 해 봄 내내 시금치며 상추, 열무 등 푸성귀를 조달해주던 채전이다.

올해는 작황이 시원치 않아 별 재미가 없던 차, 가로늦게 싹이 튼 호박 모종이 실하게 번지기에 

불볕 그늘막도 만들어주고 아침마다 물을 줬더니 뒤란 텃밭을 혼자서 그악스레 장악하다시피 했다.

여름 농사는 올해 처음 지어다.

숫 호박꽃이 흐벅지게 피어나기 시작한지는 한참 전의 일. 

열매를 매단 암꽃은 옳게 크지를 못하고 도중에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니 윤나는 애호박은 구경도 못한 채다.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호박 대신 호박잎으로 만족키로 하고 

연한 호박잎을 줄기째 꺾어 호박잎 국도 끓이고 호박잎쌈 또한 수차 식탁에 올렸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토속적인 맛이기도 한 호박잎은 입맛 쳐지는 여름철 저녁찬거리로 제격.

일단 재료가 준비되면 거칠고 센 부분인 겉껍질 벗겨내 다듬는 작업부터 세심히 해둬야 한다.

한인마켓에서 단으로 묶어놓은 호박잎을 사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한풀 숨이 죽은 이파리라 부드러운 편.

금방 딴 호박잎을 다듬으려면 가시가 어찌나 찌르는지 다룰 때 목장갑이 필요할 정도다. 

이때 얼핏 연상되는 한 장면, 

지금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블럭 담장 위에 날카로운 병조각을 죽 박아둔 살벌한 풍경을 더러 본적이 있다. 

훔쳐갈 것도 별로 없을듯한 달동네일수록 담벼락 넘어 침입해 들어오는 도둑을 막기 위해 조악한 방편막이를 해두었다.

그만큼 별볼일없이 오죽잖은 '나'일지라도 애써 지켜내려는 치열함이 짠하도록 처연스럽다.

모든 생명 가진 것은 자신의 생존과 후손의 번식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이렇듯 자기 방어에 철두철미 최선을 다한다



호박잎을 보호해주는 예리한 가시들.

얼핏 스쳐 지나버리면 모를테고 건성으로 홀낏 보면 알 턱이 없는 비밀 병기다. 

나약하고 연한 한목숨 부지하고자 말없이 벌이는 처절한 항거에 다름아닌 가시

호박잎 싱싱한 채로 다듬어 본 적 없다면 결연한 무장의 자취 알 길이 없을 게다. 

호박줄기 끝부분을 빙 돌아가며 껍질을 벗겨 잎맥까지 죽 내려가면 표피 도르르 말리며 동시에 잔가시가 거의 제거된다. 

달팽이에게 뜯어먹히지 않으려 촘촘히 돋힌 이 가시들은 

고슴도치 가시처럼 생사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호박잎의 생존 전략이겠다. 

이 역시 에릴 정도로 짠하다 

주변에서 자주 접하곤 하는 신경질적인 긴장감의 정체, 되도록 표티 안 내려해도 고스란히 들키게 마련인 속내다.

우열경쟁의 장에서 낙오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는 억척스런 안간힘이야말로 안쓰럽기 그지없다. 

저마다 내심 '처지면 안돼' 주문을 외우고 최면을 걸며, 

오늘도 자아라는 본디 바탕에 단단히 갑옷을 입히고 자존감이라는 창을 꼬나쥔채 피곤하게 겨뤄대는 이들.

초월의 경지까지는 아니어도 그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니, 헐렁하게 나이듦이 이렇게 좋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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