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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규화가 집니다
05/31/2018 14:35
조회  660   |  추천   11   |  스크랩   0
IP 104.xx.xx.204



오월 내내 뒤란이 수백송이 꽃등불로 환했다. 

일부러 초대한 적 없음에도 색색의 꽃씨 날아와 진분홍, 담적색, 연분홍꽃 곱게도 피었다.

척박한 토질 개의치 않고 훤칠하게 자라는 식물이니 수더분한 성정만으로도 충분히 아낌받을만한 꽃. 

꽃이라면 어느 꽃을 막론하고 굄 받기 마련인데 그러나 이 꽃만은 예외였다.

애정어린 눈길 준 적도 없거니와 따사롭게 이름 불러주지도 않았건만, 그 꽃은 제 몫의 한 생애 충실히 살아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은 채로 이제 그 꽃 이울어가는 중이다.



유년의 여름 화단에 백일홍, 봉선화, 체송화, 칸나와 함께 탐스러이 피어나던 꿏 채키화,

충청도에서는 채키화라는 국적불명의 이름으로 두루 통하던 꽃이었다.

뜻도 모르며 그저 남 따라부르던 그 꽃이름이 훗날 알고보니 촉규화였다.

단오 무렵에 피어서인지 단오금이라고도 불렸고 잎 겨드랑이마다 층층이 꽃이 피기에 층층화라고도 했다.

그러다가 꽃이 큼직해 사발꽃 또는 접시꽃이라는 한글 이름이 새로 자리잡게 됐다.



거친 밭 귀퉁이 쓸쓸한 곳에 무성하게 핀 꽃송이....

고운 최치원 션생이 일찍이 촉규화(蜀葵花)라는 한시를 남겼다.

당나라에서 공부하던 고운은 높은 학문적 경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변방에서 온 자신을 눈여겨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척박한 시대 환경을 탄하며 시가 촉규화다.

촉규화(蜀葵花)의 촉(蜀)은 나라 이름 촉에, 규(葵)는 국거리 재료인 아욱 규다. 

유비가 세운 촉한은 사천성에 도읍지를 정했으니 그 땅엔 유독 아욱이란 식물이 많았던걸까.



그보다는 접시꽃같이 고왔던 망처에 대한 기억을 처연한 심사로 읊은 시로 유명인이 된 한 시인 정치가.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는 표현대로 그의 책은 시집 초유의 스테디셀러로 뜨기도 했다. 

시골학교 교사의 아내로 가난하게 살다 젊은 나이에 이승 등진 여인를 그리는 지아비의 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였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애틋해하며 눈물 흘렸다.

허나 시인의 맑은 시심을 아낀 사람들을 그 남자는 보기좋게 배신해버렸다.

젊은 홀애비로 애들 키우며 살 수 없으니 곧장 재혼한 건 그렇다치자. 

붉은 머릿끈 질끈 동여맨 전교조로 나타나 투쟁일선에 슬그머니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그의 시집을 던져버렸다.

접시꽃, 모진 넘 옆에 있다 벼락 맞는다더니 그 바람에 미움을 사 눈총먹으며 구박뎅이 신세가 된 꽃이다. 

어느 댁에서는 이 싹이 올라오는 족족 꼴도 보기싫다며 죄없는 꽃모종을 뽑아버렸다고 한다.  



캘리로 이사 온 그해 가을, 뒤란 여기저기 잎사귀 너울거리는 식물이 자리를 잡았다.

관엽식물같이 시원한 잎새가 일반 잡풀과는 달라 보이기에 자라는대로 그냥 놔뒀다.

서리 내리는 겨울 잘 견뎌내고 봄을 맞아 부쩍 키 돋우면서 봉오리 맺히자 비로소 그 식물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릴적 눈에 익힌 채키화였다, 아니 촉규화였다.

일부러 나는 접시꽃이란 이름 대신 발음 딱딱하지만 촉규화라고, 거의 강박적이라 할만큼 의식적으로 그리 부른다.

하도 무성해 작년엔 씨만 해도 거의 한됫박이 될만큼 많은 꽃을 피운 촉규화였다.

접시꽃이란 호칭이 싫어 몇해 내리 꽃이 피어도 본숭만숭하며 냉대했던 그 꽃, 영문도 모른채 미움 받은 그 꽃.

또 다른 이름 일일화(一日花)처럼 단 하루 피었다 지는 꽃인데도 층층이 연달아 피기에 한달여 줄창 꽃 흐드러졌었다.  

오월이 기울며 촉규화도 끝물, 화무십일홍이듯 어느 권력인들 지는 달 아니되랴.

셰계의 이목이 집중된 한반도, 그 중 남녘의 미래도가 자못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접시꽃 배신 - J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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