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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꽃길 지나며
05/16/2018 13:00
조회  960   |  추천   14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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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 경쾌한 옛시조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가 겨자꽃 데불고 가는 여정에 문득 떠올랐다. 

청산은 드높이 푸른 산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세속의 경계를 벗어난 모든 자연을 일컫는다.  

노랑나비 호랑나비도 같이 가자 했으니 특별히 누구누구 가리지 않고 다 함께 같이 가자는 말이렷다.

수천의 나비떼가 나풀거리는듯 겨자꽃 만발한 왕의 길을 달린다.

物心一如잠시나마 나와 나비가 하나되는 일체감 속에서 구애받지 않는 대자유를 느낀다.

낯선 길에 올라선다는 건 부푼 설렘이며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라서 여간 행복한 게 아니다.

그러나 지난한 역사의 흔적 지닌 겨자꽃을 바라보자니 마음 하냥 경쾌이 들뜰 수 만은 없었다.

 



길섶 언저리며 산자락 타고 질정없이 마구 노오랑 바람이 나부꼈다.

가볍디 가벼운 꽃바람 일렁이며 끝모르게 번져가는 색감 한껏 눈부셨다. 

겨자꽃 색깔은 풀내음 같은 풋내가 스민 연두빛 감도는 노랑이다.

노랑빛 중에서도 가장 여리고 풋풋하게 노란 겨자꽃.

오래전 프랑스 전원마을 지나며 해바라기 밭을 본 적이 있다.

현요함으로 어질어질 멀미마저 일으키던 강렬한 노란빛이 템페라화였다면 

빛 온유히 부드러운 겨자꽃은 파스텔화를 그려낸다.






삼백년 전 프란체스칸 수도사들이 원주민 땅에 복음을 전하려 

왕의 길 엘 까미노 레알(El Camino Real)을 닦아나갔다.  

이 길이 지금의 원오원 (US 101 Freeway) 도로이다.

캘리포니아 남에서 북으로 해안을 따라 가며 약 구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21등분하여  

 남쪽의 샌디에고부터 북쪽의 소노마 지역까지 미션을 세웠다.

정확히 1769년부터 1823년까지의 일이다. 

왕의 길을 걷던 그들 얼굴은 햇볕에 새카맣게 타 갈라지고 발은 부르터 물집이 잡혔으리라.

때론 숲에서 들짐승과 마주치고 풀섶에 숨은 뱀도 만나 혼비백산하였으리라.

자유분방한 원주민은 모듬살이 방식은 물론 그들의 교화를 영 못 마땅히 여겼으리라.

스페인 국왕은 다그쳐 군대까지 딸려보냈으니 선교의 순수한 열정은 갈등과 수없이 대면했으리라. 

그렇게 역사의 씨줄 날줄을 올올이 짜나가며  프란체스칸들이 꿈꿨던 하늘나라의 소망은 이루어졌던가.

그들 본래의 사명과는 무관하게 아무튼 미션이 건립된 지역은 

훗날 샌디에고, 로스앤젤레스, 샌호세,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수도사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며 유럽의 농경기술과 선진문물을 연마시킨 과 함께 

일일이 짚어보면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도 무수했다.

허나 불완전한 인간사에 필연으로 따르는 공과(過), 과를 상쇄시킬 정도로 끼친 공이 지대하다면 글쎄? 

그 옛적, 미지의 산천 헤쳐나아가면서 수도사들은 돌아갈 길 표시해두려고 

주머니에 갈무려 둔 겨자씨를 한씩 꺼내 발치에 뿌려 놓았다.

겨자씨는 (mustard seed) 성서에 나와있듯 씨 가운데 가장 작은 씨다.

건조한 황무지에서도 잘 번식하는 특성을 지닌 흔하디흔한 식물이 겨자풀인데 

 그 씨앗은 기름을 짜거나 톡 쏘는 매운 맛을 이용해 머스터드 소스를 만든다.

수도사들이 이 땅에 첫 씨앗 뿌린 이후 해마다 꽃 피고지고 씨 여물어 바람결 타고서 온사방으로 번진 겨자씨.

이제는 캘리포니아 길섶따라 광범위하게 터잡은 야생 겨자가 곳곳마다 영락없이 무성한 꽃판을 펼쳐놓았다.

미션이 들어선 언저리라면 캘리포니아 서부 어디에서나 봄의 주빈되어

화려함이 아닌 어딘지 애조띤 화사함으로 온 산야 가득 흐드러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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