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 운봉 성수 대종사
11/13/20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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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성수 대종사 雲峰 性粹 大宗師

운봉스님의 행장行狀

1889년 12월 7일 성도제 전날밤에 안동에서 출생하셨으며 속성은 동래 정씨다.

어머니 꿈에 빛을보고 잉태하셨는데 낳으실 적에 한줄기 서기가 한 줄기 솟으니  동리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명사]

  • 1.도를 닦아 이룸. 또는 학문의 참뜻을 깊이 체득함.
  • 2.<불교>깨달아 부처가 되는 일. 특히 석가모니가 음력 12월 8일에 보리수 아래서 큰 도(道)...

스님의 이름은 성수라 했고, 호는 운봉이다. 어릴적에 향교에 들어가서 글을 배움에 총명하기가 뛰어났다.  열세살에 부친을 따라 은혜사에 불공드리러 갔다가 발심하여 김일하 스님께 의지하여  출가 득도하였다. 열다섯 살에 수계하고서 강원에 입학하여 회응스님 밑에서 이력을 보셨다. 스님께서 스물 셋 되시던 해에 금강산 범어사 금강계단에 가서 만하스님께 

구족계를 받았다. 스물 다섯에 비로소 본사를 떠나서 청화산 원적사에가서 선교스님께 율을 배우고,  참선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금강산 오대산 묘향산 지리산 등 천하명산 제찰을 찾아다니며 선지식을 침견하고 공부에 노력하셨으니 이렇게 하기를 10년 만인 계해년 산동에 저 호남땅 백암산 운문암에 지내시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행정진하시더니,  때는 납월 보름날, 새벽녘에 먼 동이 트는데 문박에 나갔다가 홀연히 한가닥 옛길이 확철히 관통하니 의심해오던 公安과 가슴속에 맑혔던 물건이 활연히 해소되였다.  그 무량한 환희심을 계송으로 읊으시니,

출문맥연한철골 出門驀然閑徹骨하니

문밖에 나왔다가 갑작스레이 차운 기운이 뼈속에 사무쳤네.

활연소각흉체물 豁然消却胸滯物이로다

가슴곳에 오랫동안 걸렸든 물건 활연히 살아져서 자취가 없네

상풍월야객산후. 霜風月夜客散後에

서릿발이 날리는 달밝은 밤에 나그네들 헤어져 떠나간 다음

채루독재공산수 彩樓獨在空山水를

오색단청 누각에 홀로서서 공산에 흐르는 물 굽어 보누나.


하셨으니 그해가 꼭 서른 살 되던 해였다.  이로부터 모든 공안을 밝혔음에 고인의 속임수를 벗어나서 任運등이 걸림없게 되었다.운봉스님은 부산 선암사에 해월노화상을 다시 찾아가 참례하니 여러가지 물음으로 탄련을 받았으되 모두 막힘없이 대답하였다. 하루는 운봉스님이 묻기를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어느곳에 安身立命하고 계십니까?”하니

혜월스님께서 양구(良久=가만히 계심)를 하셨다. 

스님께서 냅다 한대 치시면서 말하기를

“산용(活龍)이 어찌하여 죽은 물에 잠겨 있읍니까?”

“그럼 너는 어찌 하겠느냐?” 스님께서 문득 拂子를 들어보이셨다.

 큰 스님께서는 짐짓 “아니다”하시거늘

“스님, 기러기가 창밖에 지나간 것을 모르십니까>” 

큰 스님께서 하하하, 웃으면서

“너를 속일 수 없구나.하시고 임제정맥 등등 臨濟正脈燈燈 상속을 기록하시어 

부족하시고,전법계를 주셨다.


일체유위법 一切有爲法이 本無眞實相이니

일체 함이 있는 법은 본래 진실상이 없는 것

어상약무상 於相若無相하면 卽名爲見性이니라.

저 상에 만일 상이없으면 곧 그대로 견성이니라.


스님이 호를 운봉당이라하니 스님은 여기에서 혜월스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스님께서 얼마 후 도봉산 망월사에 가셨는데 거기에는 용성화상께서

 ‘만일선회’를 설시하여 시시로 대중을 경책하고 계셨다

.

“불자야, 인명이 호흡간에 있거늘  어느 여가에 딴일을 분별하리요.

惺惺하게 정신차려 머리에 붙는 불을 끄듯 하여라.

이 몸은 금생에 제도않으면 어느 생을 기다려 공부할 것인가?”


여기에 스님께서 입승 한 철을 보시는데, 

하루는 용성스님께서 법사에 오르시어 말씀하시기를,

“상세제불이 나를 보지못하였고, 역대조사도 나를 보지못했거든 

여기대중은 어떻게 나를 보겠는가?” 하시기에 스님께서 일어나 말하기를,

“유리 독, 속에 계십니다.”하였더니, 제방에서 이 말들을 가지고 논란이 많았었다.

뒤에 덕승산에 지내실 적인데, 만공스님께서 문중으로 사숙님이 되시고 보월스님은 형제벌인데 큰 선지식등이었다. 한번은 옛날 이야기가 났는데

. ‘운거스님은 희상 뒷산 암자에 사는 암주에게 옷 한벌을 보냈더니,

암주가 옷을 받지않고 하는말이, “우리 어머니가 준 옷만해도 입고남소.”하거늘,

“어머니가 낳기전에 무슨 옷을 입었는가?”하고 반문하니, 대답을 못하였다.

 그 스님이 죽은 뒤에 그래도 오색사리가 났다.”하는 이야긴데,

암주가 부모 未生前 옷을 알았다면 어찌 대답을 못했으며,

몰랐다면 어떻게 오색사리가 낫겠는가?하는 말이 났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름에는 안동포를 입고 겨울에는 진주목을 입는다.”고 답하리라 하니,

 이로부터 제방에서 스님을 청해 모시어 선지禪旨를 거량擧揚하였다.

통도사-범어사-도리사-내원사 등에서 20여년을 납자를 재접하시며 

선문종지를 펴시니 도법의 성황하기가 당세에 우뜸이었다.


신사년 봄에 단석산으로 물러앉아 계시다가, 다음해인 계미년에 동해안의 

월내포 묘관음사에 옮기시어 병환으로 편찮으심을 보이시니

 제자 향곡 香谷이 모시면서 뭇기를 “스님께서 도를 깨치셨습니까?”

“깨달았다면 벌써 도가 아니고 도라하면 벌써 깨달음이 아니니라. 하시고 

냅다 하대 때리시었다.

 또 묻기를, “대적삼매 大寂三昧도 변함이 있읍니까?”

. “누가 적정 삼매라 하더냐?”

“열반로두涅槃路頭가 어데 있읍니까?” “아야 아야”라고 하셨다.

 또 나아가 물은 일이 있었다.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어데로 돌아가시렵니까?”

“이웃마을 시주네 집에 물소가 되어 가리라.”

“그러면 소라고 불러야 하리까? 스님이라고 불러야 하리까?”

“풀을 먹고 싶으면 풀을 먹고 물을먹고싶으면 물을 마시리라.” 

돌아가시기열흘 전에는, “스님께서 입적하시는 날은 어떤 날입니까?”

“토끼꼬리 빠지는 날이니라”하시더니 과연 2월은 卯월이니 토끼달이라,

 이달 그믐날 저녁에 손수 유표遺表를 써서 후사를 부촉하시니


향곡혜립장실 向谷惠林丈室하노라.   향곡혜림 장실에 부치노라.

서래무문인 西來無文印은        서쪽에서 온 문체없는 법인은

무전역무수 無傳亦無受로다     전할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것일 세.

약리무전수 若離無傳受하면     전하느니 받느니를 뚝 떠나면

조토부동행 鳥兎不同行하리라   해와 달은 동행하지 않으리라.

하셨다. 그때에 향곡이 최후로 다시묻기를,

스님께서 돌아가신뒤에 저회들은 누구를 의지하리까?” 하였더니,

님께서는 오른 손으로 자리를 치시면서 육자배기를 읊으셨다.


“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묻어 오는구나.

우장 삿갓을 두루고서 김을매러 갈거나.” 하시고,


 편안히 드러 누으시어 숨을 거두려 하시거늘

향곡이 황급히 “스님”하고 부르니 “날 불러 뭣하려는고?”하시고, 

입적하시니, 세수는 오십여덟이시고, 승납은 마흔 다섯해이시다.

제방에서 스님 가심을 슬퍼해 마지않으니 그 법을 이은이가 20여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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