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혜암 현문 대종사
11/12/20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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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현문 대종사 법문   

 옛 사람이 말씀하시기를, 더럽고, 냄새나는 지 - 수 - 화 - 풍 四大가 
우리의 생각 생각에 썩어져 가는 줄 아느냐? 
 내 목숨이 한번 숨을 들이 쉬었다가 내 쉬지 못하는데 있는 줄 아느냐? 
 내 목숨이 한번 숨을 들이 쉬었다가 내 쉬지 못하는데 있는줄 아느냐? 
 이래 가지고 네가 부처님과 조사가 출세하면 만나겠는가? 
 네가 선지식 밑에서 한 번이라도 법문을 들어서 탁마 수행 하였느냐? 
 네가 머리를 모아 잡된 말 하는 것을 끊고 古人의 語錄을 들여다 보느냐? 
움직이고, 머므르고, 앉고, 누울 때라도 끊임없이 의심을 일으키느냐? 
죽 먹고 밥 먹을 때라도 이와 같이 점검을 하느냐? 
사람을 대할 때 매하지 않느냐? 
별안간 너머지고 자빠질 때 화두에 의심이 있느냐? 
때 가운데 사람으로 더불어 옳고 그름을 시비하지 않느냐? 
때때로 이와 같이 진보해 나가느냐? 
보고듣고 깨달아 알 때 번뇌 망상이 사라지고 그 의심한 생각이 버젓하게 살아 있느냐? 
 좋은 일이 내 앞에 있을 때 공부 생각이 있느냐? 
趙州는 무엇을 인해서 無라고 했는고? 
이도리를 깨달아 이 세상에서 부처님의 혜명을 잇느냐? 
위로 어른을 모시고 아래를 거느리는데 서로서로 공경을 하느냐? 
앉고 눕는데 내몸의 편안한 이익을 취하는 그 생각이 앞으로 무서운 지옥고를 초래하는 길인 줄 아느냐? 
이와 같이 古人은 우리중생을 위하여 간절히 공부를 점검하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럼 이 用은 어디서 생기느냐 하면 체體에서 일어난 것이다. 체體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한 생각 일으키기 전에 부처님 끼리도 보지 못하는 것을 體라고 한다. 
用이라고 하는 것은 한 생각 일어나기 전에 體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用이 體를 여의지 못한다. 體는 또한 用에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體도 또한 用을 여의지 못한다. 
이것이 무엇과 같으냐 하면 물이라고 하는 것은 젖는 것이 성품인데 젖을 때 動하고 젖었느냐 하면 動하지 않고 물이 젖는 것이다. 파도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동하는 것과 향하는 것으로 항상을 이루었는데 인풍因風이라고 하는 바람으로 인해 그 파도가 생겼다. 
물은 젖는 것이 성품인데 그 젖는 성품에는 절대 생멸이 없다. 는 성품이 생멸이 없을진덴 파도 물에 젖는 것이 어찌 생멸이 있겠는가. 
파도라고하는 것은 물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파도도 또한 생명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화두를 하는데도 선각자에게 자꾸 물어서 많은 문답이 오고 감으로 해서 진보가 있는 것이다. 이 중생은 부처의 성품으로 인해서 業을 맺는다. 동시에 因이란 것은 종자를 말한다. 業因이 六趣에 날 때마다 선악의 業力을 의한 바 따라난다. 가령 천상에 날 과보를 지으면 천상에 난다. 그러나 태어나는 곳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을 절대로 알지 못한다. 

중생계의 모든 중생이 樂을 인하여 몸을 받는다. 우리가 이 몸을 받은 것도 부모의 음욕심에 의하여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樂心을 받아가지고 이몸이 생긴 것이다. 樂을 인하여 業을 받으며, 또 樂을 받아서 몸을 의탁하게 된다. 위탁이 있은 즉 망녕된 뜻이 생기고 망녕된 情이 있으므로 망녕됨이 있고, 망녕된 바가 있으므로 피차가 있고 피차가 있은 즉 시비가 있다. 

그렇지만 참으로 본 성품을 바로보면 생명이 없는 부처의 성품이 계합契合된다. 즉 부처의 성품과 나의 성품이 한 덩어리가 되어 생멸없는 用을 일으킨다.물 밖에 파도없고 파도밖에 물없는 도리를 잘알면 *安心立命處를 얻은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를 통달하면 태 - 난 - 습 - 화 四生이 일시에 다 녹아 없어지고 산하대지가 온전히 마음뿐이다. 이 마음을 여의고는 어디나 도저히 의탁할 수가 없다. 따라서 三世에 망녕되어 몸을 받아 날 사람도 없을 것이며 또한 망녕된 육체의 과보도 없을 것이다.

 다만 시방세계가 오직 내 마음에 있다는 실증을 체험한 분상에서는 자유자재로 내가 나타나야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無心으로 나타나는 뜻을 따라서 천상에 나고 싶으면 천상에서 나고 인간에 나고 싶으면 인간에 난다. 돌아오고 돌아가는데 조금도 걸림이없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이런 경계를 볼려고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이 생각 생각이 의심으로 반성하는 것을 잃어버리지말고 비추어 觀照하여야 한다. 

定과 慧가 구족하므로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스스로 소멸되고 지혜가 또한 밝아지며, 
죄업은 날로 끊어져 없어지고 善業을 닦는 것은 날로 승하여 번뇌가 다 할 때 生死가 끊어지며, 미세한 생각이 다 할 때 圓覺大智慧가 두루 밝아서 시방세계를 고루 비춤이 끝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한가한 사람의 경계며 부처라고도 말한다. 

이런 경계의 세계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아무리 입으로 외워도 이익 될바가없고 오직 한 번 들어도 부지런히 실천함으로서 되어지는 것이다. 먼저들은 법문을 잃어버리고 또 새로듣는 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참선을 하는데 화두를 한 번 드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화두만은 그렇지 않다. 그 한번 든 생각이 공간에 바늘하나 꽂을 틈없이 꽉 차 있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원숭이가 참선을 하는 흉내를 낸 과보로 천상의 몸을 받았다고 하였다. 더욱이 참선을 하는데는 남녀, 노소가 없는 것이며 시간이 길고 짧음이 없는 것이다. 

내가 오십년 전에 지리산 천은사 삼일암이라는 조그마한 선원에서 참선한 일이있었다. 
처음엔 하동 칠불암에서 공부를 할려고 했었는데 처음으로 삼일암에서 높은 선지식을 모셔다가 선원을 한다기에 이왕이면 큰 스님 밑에서 공부 할 생각으로 그곳에 갔던 것이다.
 그 선원은 전국 각지에서 공부 잘 하는 선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웠다. 
그런데 그 때 천은사 큰절에 나이 칠십세나 되고 이름은 고은이라고 부르는 노장님 한 분 계셨는데 이분은 중노릇을 수 십년 했어도 참선은 몰랐다. 강당이나 염불당 또는 기도처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 방면에는 아는 것이 많았지만 참선을 하는 것은 평생동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노장이 내일이면 결제를 할 텐데 올라와서 “소승도 스님들과 같이 올라다니면서 공부를 할 수 있읍니까?”하고 물었다. 그 때 입승스님의 말씀이 “한 철 양식을 미리내도 안받을 텐데 그 따위 소리를 한다.”고 호통을 치셨다. 그러나 고은노장이 뜻을 굽히지않고 사정 사정하므로 조실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대중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더라도 받아주어야 한다. 이 노장이 공부를 할려고 하는 뜻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하시면서 그 노장께 묻기를 “이왕이면 스님께서 아주 올라오셔서 공부를 하는 것이 좋지않느냐.”고 하시자 그 노장의 대답이 또한 가관이었다.
 “돈 빌려준 문서와 쌀 빌려준 문서를 지켜야하고 특히 우리마누라 궁둥이를 떨어질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근 사십명 대중이 조실스님을 모시고 재미있게
 공부를 해 볼려고 하던 참인데 그 노장의 소리를 들으니 신심이 뚝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조실스님의 명령이고 보니 대중의 불평도 어쩔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노장이 공부하기위해 큰 절에서 올라다니는데 그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대중이 모여서 공부하는 이야기를 하니 그 영감은 깜깜 절벽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웃으면서 “원숭이가 참선하는 흉내를 내고 천상락을 받았다는데 저런것도 무슨인연이 될까”하고 비웃었다.
마침 반 산림을 살고 조실스님이 법문을 마치고 내려와서 대중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부터 십오년전 내가 남반에서 慧月스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그때 어떤 젊은수좌가 와서 혜월수님에게 묻기를 “소를타고 소를 찾는다는데 이게 무슨 도리입니까?”하니 혜월스님께서 “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느냐.”하셨다. 그 때 내가 조실스님께 ”혜월스님이 젊은 수좌에게 잘 일어 주신 것입니까? 하고 묻자 조실스님께서 혜월스님께 방망이를 내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늙은 놈이 그래가지고 어떻게 학인의 눈을 열가보냐.”하셨다. 
나는 무의식중에 한 번 물은 것이 그만 혜월스님께 몽둥이만 한짐 지어드린 결과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조실스님은 그 때 무엇이라 말씀하시겠읍니가?”하고 묻자 
조실스님이 “그 젊은 수좌가 혜월스님께 물은거와같이 네가 나에게 물어라.”하시기에 
가사장삼을 입고 큰 절을 세번드린 후에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니 그 무슨 도리 입니까?”하고 물었다. 
그 때 조실스님의 말씀이 “네가 소를타고 소를 찾는다니 찾는 소를 그만두어라. 네가 탄 소나 이리 가져오너라.”하는 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아래 큰 절에서 올라다니는 보잘 것 없는 고은 노장이 <알았다>고 하면서 손벽을 높이쳤다. 
 그 순간 전 대중은 웃으면서 어지럼병이 더큰병 된다고, 저 노장이 이젠 미치기까지 했다고 놀려댔더니 조실스님께서 그럴 일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 노장을 조실방으로 데려가서 한참후에 나오시더니 확실히 견성했다고 인가를 하셨다. 
그 소리를 들으니 눈앞이 캄캄했고 사흘동안 밥을 먹는데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우리대중에 박추월이라고 하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돌아앉아서 
꼬박 십육일 동안을 물 함모금 마시지 않고 정진하는데 그 사람 참 지독하였다. 
그러다가 아래 윗 이가 내려앉아서 곧 죽게 된 것을 내가 수백리를 가서 약을 구해다가
 살린일이 있었다. 공부잘한다고 뽐내던 수 십명 선객들이 재미있게 공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그 고은노장을 업신여겼는데 그 노장이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때 노장이 조실스님 앞에서 땅을치며 대성통곡하기를  “만약 소실스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영겁을 무명속에서 살뻔 했습니다.”하고 슬피우는 것을 보았다. 강원에가서 공부하는 몇몇 제자를 선방으로 불러들여 참선을 하게했고,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던 마누라도 한 살림 장만해서 따로 살도록 마련해 주더니, 해제하기도전에 <서광사>라고하는 대찰에서 조실로 모셔갔다. 
그러니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선 후배가 없는 것이다.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조사의 말 한마디를 듣고 깨달아 일생을 늙도록 공부한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이란 선생을 잡아먹는 것이라고도 한다. 공부하는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相法이다. 相法이란 “잘한다” 또는 “내가 제일이다”하는 자만심을 말한다. 
가령 계율이 청정하고, 도가 높다고 자만하면서도 속으로는 한량없는 ‘도둑’을 키우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으로 간다.
초발심자경에도 있는 말이지만 “밖으로 나타난 바가 좋으면 가장 존경을 받는 것 같지만 안으로 얻는바가 없으면 썩은 배와 같다.”하였다. 우리가 남에게 무엇을 주고도 주었다는 생각이 없으면 복을 받을텐데 고양이 쥐 생각하듯 주었다는 생각을 우리는 갖고있다. 
모든 相을 위하지 않으면 모든 성현의 뜻과 나의 뜻과 합치된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모든 상을 여의면 존중하기가  부처님과 같다.”하였다. 우리가 무엇을했거나 하는 相이 
일어나더라도 잃어버려야 한다. 잃어버리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을 알아내는 의심을 반성하면 된다. 따로 방법을 내면 분별이 되지만 의심을 일으키면 그대로 소멸된다. 또 세상에서 가장 깊은 애정이 부모와 자식사이의 애정이다. 
그러나 이 애정이라는 것은 생전에는 좋은 것 같지만 사후에는 반대로 원수지간과 같은 것이여서  지옥에서 서로만나도 때려 죽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있는 사람에게 애정심이 일어날 때는 우리가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을 부르는 마음으로 반성하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의 은덕이 인연있는 사람에게 자연히 내린다. 이것이 가장 사랑하는 마음이요 그를 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맺어진 인연은 영화의 화면에서 살짝 나왔다 사라지는 허무한 관계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알지 못할 때 영겁동안 생사의 고통과 번뇌 망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 몸둥이를 가져 위하면 소용없다. 이몸은 죽은 송장과 다름없는 것이다.  참으로 위하는 것은 아무개야! 부르면, 네! 하고 대답하는 그놈을, 어머님! 하고 부르면 오냐! 하고 대답하는 그 놈을 위해야 참으로 잘 위하고 효도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참선을 하는 길 밖에 없다. 
雨後淸山 暴布勢는     비온뒤 푸른산 폭포형세는 
聲氣泡花彈白雲이라    소리기운에 거품꽃은 흰 구름을 탄다 
傍人若聞當何事하면     곁사람이 만일 무슨일 하느냐 물으면 
淫聲潭潭枕上穿이로다    시내소리는 맑고 맑아서 배게 위를 뚫는다 하리라. 

 雪滿空庭人不到인데     빈뜰에 눈이 가득하니 사람이 이르지를 못하고 
枝枝梅花振香風이라.     가지가지 매화는 향기가 진동한다. 
傍人若聞當事何하면      곁 사람이 만일 마땅히 무슨 일을 하느냐 물으면 
一窓明月僧睡攻이라      한 창에 달은 밝았는데 선승은 졸음을 친다 하리라.

 參講無別意           강원에 참례하는 것은 별다른 뜻이 없다. 
敎中學無生하라.      가르키는 가운데서 낢이 없음을 배워라. 
他年汝我憶             다른해에 네가 나를 생각하고자 할진덴 
回首壁山層하라.       머리를 벽산 층계에 돌이킬지어다 

 *공안公安= 고측古則 ? 화두話頭와 같은 말. 관공서의 문서,곧 공정하여 범치못할 
법령이며, 그 법령에 의지하여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표준이란 뜻. 
*당처當處=본래 그 자리. 곧 우리의 마음 자리 
*의단疑團=話頭禪에서 도를 구하는 의지가 간절하여 격激한 것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견성함으로 마음을 깨닫고 생사를 초월함으로 마음이 
편안함에 이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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