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한암 중원 대종사
06/16/201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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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중원 대종사 漢巖 重遠 大宗師 

한암漢巖 스님의 행장
한암스님은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하였고, 1897년 금강산 장안사의 행응行凝선사에게 출가 수행하였다.本貫은 온양 方씨이고  이름은 重遠이며, 법호는 漢巖이다.
한암스님은 1899년 경북 상주 수도암에서 悟道하시고 50세 되던 1925년에 서울근방의 봉은사의 조실스님으로 있었다. 
그러나 곧 맹세하기를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三春에 말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고 하면서 또 다시 오대산에 들어갔다. 그후 27년 동안 그는 동구밖에 나오기 않은 채 평생을 그곳에서 일생를 마쳤다. 그는 오대산에 처음 들어올 때 소지했떤 단풍나무 지팡이를 中臺 뜰앞에 꽂았다.  日影을 재어보기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꽃힌자리에서 잎사귀와 가지가 돋아나와서 하나의 훌륭한 정자나무가 되었다. 
지금 오대산 중대앞에있는 정자나무가 바로 스님의 지팡이다.  부석사에는 의상법사義湘法師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있고 순천 송광사에는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런데 신라 고승과 고려고승의 지팡이와 지금 그자리에 서 있다고 하는 나무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나무가 바로 옛날 고승들이 꽂았던 지팡이라고 한다. 
 역사가 오랜 절 마당에는 여러가지 전설과 비화가 있다. 어찌보면 마당에 서있는 나무 한 구루 굴러다니는 돌 하나에도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는지 모른다.  오대산하면 방한암, 방안암하면 오대산이라고 할 만큼 오대산과 한암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오대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와 적멸보궁 주변에는  한암의 면목을 전하여 주는 이야기가 많아 숨어 있다. 한암은 주변에 여러가지 이야기만 남겼을 뿐 평소부터 저술하여 후세에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겨우 일발록一鉢錄 한권을 저술하였는데 상원사가 1947년 불에 탔을 때 그 한권의 원고마저 재가되고 말았다.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한암의 밑에서 득법한 제자도 몇사람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탄허와 보문과 남암이  가장 지행이 뛰어나서 자뭇 종풍을 크게 떨치더니 
보문은 아깝게도 일찍 돌아갔고 탄허는 1983년 6월 5일 월정사에서 입적하였으며, 난암은 일본에 간 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한암은 1951년에 가벼운 병이 생겼다. 병이난지 7일이 되는 아침에 죽 한 그릇과 차 한잔을 마시고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음력 2월 14일이지"하고 말한 후 四時에 이르러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禪床 위에 단정히 앉아서 태연한 자세를 갖추고 죽었다. 
 옛날부터 득도한 분들이 모두 생사에 用無生死의 경계에 이른 까닭이다.  당나라의 등은봉 선사는 거꾸로 서서 돌아갔다고 하며 관계화상은 자기 몸을 태울 화장나무를 미리 준비하였다가  위에 앉아서 제자들에게 불지르라고 한 마디 명령하고 그 불이 다 붇기 전에
 돌아갔다고 한다. 
 고려의 보조국사는 법상을 차려놓고 제자들과 백문백답을 끝마친 다음 법상에서 내려와 마루에 걸터앉은 채 그대로 조용히 열반하였다. 죽음이 범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포와 괴로움이 되고 있으나 보조국사나 한암선사같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는 죽음이 아무런 거리낌도 되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밤에 잠을 들 듯 아주 태연하게 죽을 수 있다. 
 이리하여 아홉살에 반고씨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궁극을 캐묻던 어린 소년은 1951년 음 2월 14일 상원사에서 76세 때에 바로 그 반고 이전의 궁극의 세계로 조용히 사라져 갔다. 아니 어쩌면 한암선사는 그 궁극의 세계를 넘어서 더 멀리로 날아갔을는지도 모른다. 스님의 世壽는 76세,, 법람은 54세였다. 

 다리밑에 하늘있고 머리위에 땅 있네  스님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영특하고 총기가 뛰어나
한번 의심이 나면 플릴 때까지 캐묻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9세 때 서당에서 사략史略을 일고 있었다. <태고에 천황씨天皇氏가 있었다> 첫 대목을 읽던 소년은 선생을 향해 물었다. 
“태고에 천황씨가 있었다 하였는데 그러면 천황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읍니까?” 
 당돌한 물음에 선생은 당황했다.  “그렇지! 천황씨 이전에는 반고씨盤古氏라는 임금이 있었지.”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반고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선생은 그 이상 소년의 희의를 풀어주지 못하고 말았다. 

 10여년 동안이나 유학을 널리 공부하시고 22세 때 당시 금강산의 장안사長安寺에 있던 행응노사行凝老師를 의지하여 그는 수도의 첫걸음을 시작하였다. 
그는 촐가할 때, 첫째로 자가 마음의 진성眞性을 찾아보자, 
둘째로 부모의 은혜를 갚자, 셋째로 극락으로 가는 세 가지를 그 자신에게 맹세하였다.
 신계사新溪寺의 보운강회普雲講會에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도결修心訣을 읽다가 다음의 대목에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自性밖에 법이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佛道를 구하고자 한다면, 소신연비燒身煙臂의 고행을 하고 팔만대장경을 모조라 독송하더라도 이는 마치 모래를 가지고 밥을 지으려는 일과 같이 오히려 수고로움을 더할 뿐이다.>라는 대목에서 스님은 촐연히 마음과 몸이 송연하여
  마치 죽음의 시각을 맞이한 극한의식極限意識을 느꼈다. 
 한암스님은 경북 성주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화상鏡虛和尙께 금강경의 한 구절 “무릇 형상있는 것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형상있는 것이 형상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볼지니라.”라는 말을 듣고 안광 眼光이 홀연히 열리면서 한눈에 우주의 전체가 환히 들여다 보였다. 
 그리고 듣고 보는 것이 모두 자기자신 아님이 없었다. 아홉 살 때 서당에서 처음가진 희의는 비로서 아침안개 걷히듯이 풀렸다. 그때 스님의 나이 24세, 입산하여 3년째 되는 가을 이었다. 그런데 반고이전盤古以前의 면목面目이란, 유학儒學에서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 도교학道敎學에서는 “天下母”요, 불교 교리에서는 <最淸淨法界”, 禪理로는 “最初一句子”를 뜻한다. 
 이러한 신비로운 경계를 詩 한 수로 읊어 이렇게 표현하였다. 
각하청천두상?却下靑天頭上x        다리밑에 하늘이 있고 머리위에 땅이있네 
본무내외역중간本無內外亦中間     본래 안팎이나 중간은 없는 것 
파자능행맹자견跛者能行盲者見     절름발이가 걷고 소경이 봄이여, 
북산무어대남산北山無語對南山     북산은 말없이 남산을 대하고 있네 

 한암스님이 어느 날 경허화상을 모시고 앉아서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화상이 문득 
“어떤 것이 진실로 구하고 깨닫는 소식인가,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는 문답대목을 인용하면서 스님께 물음에 
“창문을 열고 앉았으니 와담瓦墻이 앞에있다.” 고 대답하였다. 

 경허화상은 이튿날 법상에 올라가 대중을 돌아보면서  “한암의 공부가 개심開心을 초과했다.”고 말했었다.  한 때 스님이 해인사 선원에서 전등록傳燈錄을 읽은일이 있었다.
 “약산藥山선사가 석두石頭선사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도 하는 것이 없다.”한 대목에 이르자, 
그는 다시 심로心路가 끊어져서 미로迷路를 헤메게 되었다. 
마치 통 밑이 빠져버린 것 같은 허전한 경계를 맛보았다. 한편 경허화상은 그 해 겨울에 함경남도 三水甲山등지를 긴머리에 수염도 깎지않는  모습으로 방랑하면서 스님에게서 자취를 감추었다. 경허화상이 해인사에서 한암스님을 이별할 때 은근히 그를 함께 데리고 가고 싶어하며 시문 한 편과 시 한 구를 지어서 스님에게 준 일이있다. 
그 시문과 시는 다음과 같다. 
나(경허)는 천성이 화광 동진和光 東塵=부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위해 인간세계에 섞여 사는 일)을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삽살개 뒷다리처럼 너절하게 44년의 세월을 지냈더니 우연히 해인정사에서 한암漢巖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행 (性行=사람됨과 그행실)은 순직하고 또 학문이 고명高明하여 1년을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평생에 처음만난 사람같이 생각 되었다.그러다가 오늘 서로 이별을 하게되니 
아침과 해질무렵의 연운烟雲과 山海의 遠近이 진실로 迎送하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즉, 이별의 섭섭한 마음이야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옛 사람이 말하기를, “서로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 차 있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알고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고 하지 않았는가. 과연 漢巖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 (知音=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이 되랴. 
그러므로 여기 詩 한수를 지어서 뒷날에 서로잊지말자는 부탁을 한다.

권장궁발수천익 捲將窮髮垂天翼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 
만향창유차기시 ?向?揄且幾時        변변치 않은 데서 몇 해나 묻혔던가. 
분리향의비난사 分離尙矣非難事      이별은 예사라서 어려운게 아니지만, 
소려부생묘후기 所廬浮生渺後期      浮生이 흩어지면 또 볼 기희 있으랴. 

한암스님은 이와 같은 경허화상의 이별시離別詩를받아 읽고 다음과 같은 詩 한 수를 써서 답했다. 
상국설매재과료 霜菊雪梅?過了     서릿국화 雪中梅는 겨우 지나갔는데, 
여하승대불다시  待如何承待不多時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 
만고광명심월재 萬古光明心月在         만고에 변치않고 늘 비치는 마음의 달 
갱하부세만유기 更何浮世만留期      쓸테없는 세상에서 뒷날을 기약해 무엇하리. 

한암스님은 詩로서 이별을 아쉬워했을 뿐 경허화상을 쫓아가지는 않았다. 
   스님이 30 되던 1905 봄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에 조실祖室로가서 
젊은 선승禪僧들과더불어 5~6년의 세월을 보내시다가 1910년 봄에 선승들을
 해산시키고 다시 평안도 맹산(한암스님의 고향) 우두암에 들어가서올로 앉아 保任에 힘쓰고 있었다.

어느 날 부엌에 홀로 앉아 불을 피시다가 홀연히 계오契悟하였다.

그 계오契悟한 경계가 성주의 청암사 수도암에서 계오開悟한 때와 조금도 차이가 없으나

다만 한줄기 활로가 분명해졌을 뿐이었다.그때 나이 30세 되던 겨울이었다.

그는 이 경지를 보고 난 후 또 우연히 시 두 수를 읊었다.

 

착화주중면홀명着火廚中眠忽明   부엌에서불붙이다 별안간 눈 밝으니,

종자고로수록청從古路隨綠靑  이걸 쫓아 옛길이 인연을 따라 분명하네.

약인문아서래의若人問我西來意   날보고 西來의 뜻을 묻는 이가 있다면

암하천명불습성岩下泉鳴不濕聲   바위 밑 샘물소리 젖는 일 없다 하리

촌고란폐상의객村孤亂吠常疑客   마을개 짖는 소리에 손님인가 의심하고,

산조별명사조인山鳥別鳴似嘲人   산새의 울음소리는 나를 조롱하는 듯,

만고광명심상월萬古光明心上月   만고에빛나는 마음 달이

일조소진세간풍一朝掃盡世間風   하루아침에 세상 바람을 쓸어 버렸네.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있었고, 만공滿空화상은 예산 정혜사에 있었다.

   만공滿空은 스님에게 법을 물었다.

“한암漢巖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되었다

지장암 도량내에 *업경대業鏡臺가 있으니 스님의 業이 얼마나 되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스님은 실로 기상천외奇想天外의 대답을 하였다.

이 질문을 하기전에 마땅히 30방망이를 맞아야 옳다.”

다시 만공화상이 되물었다.

맞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고?”

한암스님은 여유를 두지않고 대답하였다.

지금 한창 잣서리할 때가 좋으니 속히 올라오라.”

만공화상이 쉬지않고 다시말했다.

“엄두巖頭의 잣서리 할 때에 참여하지 못함은 원망스럽지만 

덕산德山의 잣서리할 시절은 원하지 않노라.”

한암스님은 곧 응수하였다.

巖頭와 德山의 명함은 이미 알았거니와 그들의 성은 무엇인가?”

도둑이 지나간 후 3천리가 넘었거늘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의 성은 물어서 무엇하랴.”

이런 만공화상의 물음에 대하여 스님은 또 대답하였다.

금선대 속에 있는 보화관寶花冠이 金玉으로도 비하기 어렵다.”

만공화산은 마지막 네모진 백지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서 한암스님에게 보냈다.

오대산 길가에서(五台山投石)

스님이 상원사에 계실때였다.

만공스님께서 오대산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돌아가시므로 스님께서 山門까지 전송하였다.

그때 만공스님이 앞서가다가 문득 돌맹이 하나를 주어가지고 스님앞에 던지므로

스님은 다시 그돌을 주어서 개울에 던저 버렸다.

만공스님은 혼자말로 이번 걸음에는 손해가 적지 않다.” 하였다.

   書信問答

   스님께서 묘향산에 계실때에 만공스님이 스님에게 편지하시기를

우리가 이별한지 십여 년이나 되도록 서로 거래가 없었으니

구름과 명월과 산과 물이 어디나 같건만 언제나 북쪽을 향하여 바라건데 

북녘 땅에는 춥고 더움이 고르지 못할까 염려되오니, 북방에만 계시지 마시고 

걸망을 지고 남쪽으로 오셔서 납자들이나 지도함이 어떠하시오?”하고 물어왔을 때 

스님께서 답장을 보내시기를 가난뱅이가 묵은 빚을 생각합니다. "하였더니

 만공스님이 다시 이르되

 손자를 사랑하는 늙은 첨지는 자연히 입이 가난 하니라.” 하였다.

   스님께서 또 이르되 도둑놈 간 뒤에 활줄을 당김이라.”하니,

만공스님이 다시 이르되 도둑놈 머리에 벌써 화살이 꽂혔느니라.”하였다.

   또 일정시대에 경성제대 교수로 있던 일본 조동종의 명승 사또오는 

한국 불교계를 전부 돌아본 후 마지막으로 

오대산 상원사의 한암스님에게 와서 법 문답을 한 일이 있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大義입니까?”

이 물음에 대하여 곁에 놓여있던 안경집을 들어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사또오는 다시 물었다.

스님이 일대장경一代藏經과 모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보아오는 동안

경전과 어느 어록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까?”

스님은 가만히 사또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참배나 갔다 오라.”

스님께서는 젊어서 入山하여 지금까지 수도하여 왔으니

만년의 경계와 초년의 경계가 같습니까, 아니면 다름니까?”

한암스님은 잘라 대답하였다.

모르겠노라.”

사또오가 일어나 절을 하면서 활구법문活句法門을 보여 주어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인사 하였다.

活句라고 말하여 버렸으니 벌써 死句가 되고 말았군.”

*사략史略=간단하게 ㅣ술한 역사

*수심결修心訣=고려 보조국사가 지은 책. 참선하여 마음을 닦는 데 필요한 것을 말한 책.

*약산선사藥山禪師=(751~834)=(751~834)당나라 유엄惟儼선사의 이름.

석두화상의 법을 잇다. 예주 약산에 있으면서 설법교화하였으므로 약산이라 일컫다.

*석두선사石頭禪師=(700~790)당나라 스님. 希遷선사의 법호.

두산에 살았으므로 석두화상이라 일컫음.

*업경대業鏡臺=지옥 염마왕청에 있는 거울.

여기에 비추면 죽은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업행이 그대로 나타난다고한다.

 *마조馬祖=(709~788)중국 선종스님. 남양회양南嶽懷讓선사에게서 법을 받고

禪風을 크게 드날린 도릴화상道一和尙 속성이 마씨이므로 그때 사람들이 마조라 부르다.

*일물一物=한 물건.

*조주趙州=(778~887)중국 임 제종 스님. 남천보원南泉普願의 법 제자.

趙州의 관음원에 있었으므로 조주라 한다.

*건혜乾慧=유류有漏의지혜. 겨우 삼독에 젖은 습성이 다 했을 뿐 아직도 참다운

덕을 갖추지  못한 것.

*공문空門=불교를 말한다. 불교는 空의 사상으로서,

그 천체를 꿰뚫은 근본의 뜻을 삼는 것이므로 공문이라한다.

*결택結澤=지혜로서 무든 의심을 결단하여 이치를 분별하는 것

*견처見處=유루법有漏法의 다른 이름.

그르친 견해를 일으키는 소의처所依處가 되므로 이렇게 이름함.

*운문雲門=(?~949)중국 雲門宗의 시조. 운문산 문언선사文偃禪師를 가리킴.

*범찰梵刹=부처님을 모신 절을 일컫는 말.

*임운任運=아무런 事情도 첨가하지않고, 다년히, 如如히, 의례히라는 뜻.

*불자拂子=삼이나 짐승의 털을 묶어서 자루 한 끝에 매어달은 기구.

 주로 모기 ?파리 따위를 쫓는데 쓰는 도구.

*의단疑團=수행중에 일어나는 의문.

또는 화두선에서 도를 구하는 의지가 간결하여 激한 것.

*투탈透脫=깨닫는 것.해탈을 뜻함.

*진여眞如=대승불교의 理想槪念의 하나. 우주만유에 보편한 상주 불변하는 본체.

이것은 우리의 사상개념으로 미칠 수 없는 진실한 세계로

오직 성품을 증득한 사람만이 알수있다고 함.

*소소영영昭昭靈靈=알아 깨닫는 심성.

*오근五根=보고-듣고-냄새맏고-맛보고-접촉하는 다섯감각 기관인 

----몸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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