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마음이란 무엇인가 ?
03/24/201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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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 순호 대종사 靑潭 淳浩 大宗師

靑潭스님의 행장(行狀)

청담스님은 1902년 10월 20일 경상남도 진주시 수정동 54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속명은 이찬호, 법명은 순호, 법호는 청담이다. 1919년 3-1 운동 때 18세 학생의 

몸으로 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1925년 진주농고를 졸업하고 고성 옥천사에서 박영호스님에게 삭발득도 하였다.

1929년 개운사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이수하고, 금강산 유점사, 월정사, 해인사 
등에서 인욕보살이란 별명을 들어가면서 전진 수행하다가 만공대선사의 
인가(印可)를 받았다.
1954년 전국비구승대표자회를 주도하였고 초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위임하고, 
1966년에는 통합종단의 제2대 종정을 역임 하셨다. 
1971 11월15일삼각산 도선사에서 입적하시니 세수는 70세요, 법랍은 46세였다.

 

마음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불교의 교설은 깊고높은 것이여서 대단히 알기 어려운 철학이며
 과학이라고 말한다.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불교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경전은 거의가 한문으로 되어있어서 어려운 글자를 익히고 다시 
그 뜻을 알아야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불교가 어렵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언어를 알지 못하므로 어려운 것이지 그 진리 자체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예컨데 우리가  생명이다 영혼이다 귀신이다 혹은 불성이다 보리다 열반이다 성품자리다 중도의 뜻이다 또는 반야다 법화다 원각이다 화엄이다 하는 그 많은 소리가  팔만대장경 속에서 곳곳이 이름이 달리나오고 그 어의를 쫓아서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불교의 근본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현혹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 많은 술어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한 마디로 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곧 <마음>이다.

마음이란 이 소리에는 앞에서 말한 열반이나 반야-불성-생명-중도-영혼 등이 함축되어 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쉬운 것이 불교라고 생각한다. 현대 학문 전체가 생명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 그 생명의 본질을 해결하지못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간단하며 평범하게 그 생명의 본질을 표현하는 말은 우리말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으로 전부 표현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처음 불교를 우연한 기회에 듣고 대강 불교를 안 뒤로부터 팔만대장경 전부가 이마음 두 글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 마음 두 글자로서 남에게 불교를 이해시킬 수 있고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근 50년 가까이 이 마음이라고하는 것을 가지고 공부에 노력해 왔다.

우리말로 마음이라고 하는것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좀 바꾸어 말하면  “살아있는 것”, 즉 “생명이 있는 것” 을 마음이라한다. 
선종에서는 “심즉시불(心卽是佛) 즉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 말하고, 팔만대장경도 중요 골자는 심즉시불을 말한다. 

우리말로서 제일 표현하기 쉬운것이 마음이다. 나는 마음이 “물질이냐 허공이냐”하고 항상 생각하고 의심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만 해결되면 불교를 이해하기가 쉽게된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외계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도 아니며 밖에 있거나  높은데 있는 것도 아니다.마음이란 우리가 밥 먹고 옷 입고 하는 것이 모두 마음이다.. 배가 고프면 밥 먹을 것을 생각하고 또 우리가 일이 있어서 어디를 가자고 하면 이 몸뚱이는 자연 따라간다. 
그러니 천지의 근본이 마음이고 만사의 주체가 마음이다.이와같은 원리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우주라고 하는 것은 가만히 살펴보면 무한대의 공간과 한량없는 변화를 부리고 있는 물질 현상계를 일러 우리는 우주라고 부른다.
과학의 발달로 우주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무한대한 공간을 관찰규명하여도 거기에는 생명이없다. 

그러기 때문에 허공이 변하여 생명이되는 수도 없으며 만약에 허공이 변하여 생명이 될 수 있다면 그 동안 수억만년 세월에 많은 생명이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은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데서나 생명이 생기지않는다.태초에”아메바”가 생겼다든지 혹은 그 계통에서 시작하여 동식물이 번식 발생하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있다. 허공이 제아무리 커도 그 놈은 생명이 없는 무정물 즉 무기체이다. 
그래서 허공은 무엇을 생각할 수 없다. 또 물질계의 현상이 천태만상으로 변화하지만 그 것 역시 근본자체가 무기체다. 즉 “무생명체 無生命體다.그러다보니 그것들이 태양이되고 지구가 되고 돌이나 나무등 온갖 것이 되었다 하여도 결국 생명없는 물질이 모였다 흩어졌다 할 뿐이다.그러면 그것들이 어떤 원리에서 집산하느냐 하면 현대의 쉬운말로 물리학적으로 또는 화학적인 원리때문이다.예컨데 흘러가는 물이 경사졌기 때문에 흐르는 것이지 물자체가 흐르고 싶어서 흐르는 것이아나디. 동시에 억만겁을 흐르는 한강물은 제가 흐르는 줄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무생명 물질이 서로 모였다 흩어지는 것은 그것들의 자주적이고 자유스런 행동이 아니고 물은 땅이 경사가 졌기 때문에 할 수 이 흐르는것과 같이 땅도 평면이되니 부득이 고이는 것이지 물이 스스로 고이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물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물은 고여 있으면서도 고여있는 줄을 모른다. 고여 있는 거나 흐르는 것이 물의 자유가 아니다. 평면이되어 있기 때문에 고이는 것이고 경사가 졌기 때문에 흐를 뿐이다. 그러면서도 모른다.물질계의 변화도 이와같다. 그러니 지역이나 환경에 따라 돌도다르고 물도 다르다. 물질자체는 생각이 있어 다 다르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생각할 수도 없는 무정물이며, 다만 그렇게 되게만 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가 글을 쓰고 글을 보자는 생각이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산에가자는 생각역시 물질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육체는 물질이다. 물질인 육체에서 배고프다 하는 생각이 나올수가 없는 것이다. 육체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도 그런 생각이 나올 데가 없는 것이다.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생명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는 그것들이 어떻게 하여 구조가 결정된다해서 그것이 생명화 한다면 그것은 비과학적이요 무식한 억측인 것이다.

"물질의 결정체가 그 생명이다”라고 하여 요사이 노벨상을 받고 하는데 나는 이와같은 사실이 어느 때에가서 반드시 번복되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허공 저것이 깨끗하고 맑고 환해서 아무런 구애가 없고 만물 즉 물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은 허공 즉 진공 뿐이다. 
진공은 바위 돌 속에도 들었다.왜냐하면 없는 것과 있는 것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같이 허공은 모든것을 통하여 있다. 이처럼 통하여 있는 허공도 생명이없는 무기체이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내거나 어떻게하여 생명으로 변화한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꽉 막혀 있는 물질 즉 전자가 양자라고 한다면 전자는 양자가아니고 양자는 전자가 아니다.공기가 한번 더 변해서 가령 원소가 되어서 일 백 수십가지의 원소가 산소는 수소가 아니고 수소는 탄소가 아니고 탄소는 질소가 아니다. 서로가 꽉 막혀 가지고 용납이 되지않는 것들이 어떻게 기묘한 작용을 한다해도 그것을 생명화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은 창조주

그러면 왜 세포가 생명이라고 생물학계에서는 말하는가.  '핵산' 그것이 유전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미국의 박사들이 공동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얼핏보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다. 우리가 여기에 앉아 있다가 나가 버린후 십년후에 사진을 찍어도 우리의 형태가 사진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왜 그러냐하면 진공에 내가 점령해 앉아있는 이곳 진공에 사진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으면 그 놈이 그렇게 남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이 공간에만 찍혀있는 것이 아니다. 주위의 모든것도 즉 책상에도 그리고 물병이나 촛불에도 나의 형태가 이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방안에 가득찬 조그마한 먼지에도 분명히 찍혀있다.

그와같이 한 세포가 핵산을 중심해서 뜀박질해 포위를 하면 그것이 한 생명체가 된다고 보고있다. 그런데 그것은 핵산 자체에서 유전시킨다고 유전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 예컨데 한 핵산이 네가지 물질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이쪽 핵산의 내용이 저쪽 핵산으로 완전히 사진이 찍힐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핵산이 운동하여서 일으키는 소리가 서로 녹음이 될 수 있고 영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쪽은 그림자가 된다. 가령 원숭이는 원숭이의 아기를 낳고 개는 개의 아기를 낳고 사람은 어린애를 낳아 모양과 성질까지도 닮는다. 우리가 필림에다 사진을 찍는다 또는 영화사에서 굉장한 영화를 만든다해도 그것은 하나의 그림자요 환상이지 어떤 생명이 있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조작된 녹음테프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은 자기의 자유의사로 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사람의 마음조작에 따라 기계가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녹음기가 혼자서는 억만년이 지나도 아무소리도 낼 수 없다.


이와같이 물질은 전부가 생명이 없다. 서로가 서로의 힘으로 움직일 뿐이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자유행동을 하는 것이다.우리말로 생명을 마음이라고 한다.
이것만이 그저 남이 오라고 하면 '가볼까' 하고 생각할 수 있고 오라고 하든지 말든지 안가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절대 자유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생명이고 마음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물질이나 허공에서는 절대 생각할 수 없고 오직 마음에서만이 이런 생각을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 그것이 곧 나다. 마음 그놈을 빼놓고는 나 [我]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떤문제가 일어나 그것을 골몰히 생각할 때 도대체 어떤것이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할 때는 내가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또 '누가 그런짓을 했느냐.'하고 물으면 '내가 그렇게 행동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그 행동이나 생각이 내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행동할 수 도 있는 것이다.또한 행동하다가도 버릴 수 있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을 더 할 수도 있고 반만 할 수도 있고 시작하다 그 시작을 포기할 수도 있다.그러나 절대 행동과 생각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마음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물질적인 것은 다 현미경이나 다른것을 통하여 볼 수 있는데 이 마음은 볼 수가 없다. 마치 눈이 자기의 눈을 볼 수 없듯이--- 
그런데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그것을 '내가 생각했다' 그러니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의 주체가 곧 나라는 소리다. 그렇게 우리가 표현하고 있다.그러므로 나라고 하눈 주체는 육체가 아니다.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주체가 나라고 할 수 있으니 곧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이다' 하는 이 마음도 마음이요 남을 죽일려고 하는 이것도 마음이다. 이렇게 섞여있어 문제다. 그런 까닭으로 마음과 생각을 분리하여야한다.그 마음은 모든 생각의 주체가 되어서 모든 행동이나 생각의 주체는 할 수 있어도 미리 이것이 생각은 없다. 그때 그때 그 사건에따라 오관에 미치는 바에의하여 그 때 마음대로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정이나 긍정 이것은 내가 아니다. 한 개의 행동이나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행동이나 생각의 주체가 '나'인 것이다. 주체 그것을 우리는 마음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물질도 허공도 아니다. 그런데 그놈이 자기마음대로 부정도 긍정도 하고있다.

 똑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긍정했다가도 부정하고 부정했다가도 다시 긍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주체는 이미 부정, 긍정이 아니며 자기 자유로 한다. 이것은 마음의 자유다. 이것은 나의 자유다.그러니 지식도 아니요 사상도 아니요 신앙도 아닌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나'일 뿐이다.지식도 해 볼 수 있고 사상이나 신앙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과학이나 종교나 철학을 만들어 스스로 신앙도 해보고 또는 자신이 만들었으면서도 믿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은 모든것의 주체인 것이다. 마음은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에게도 구속이 되어 있지않고 부처님이나 진리에도 걸려있지 않기 때문에 이놈이 자유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때나 이놈은 자유로히 어떤 행동, 어떤 생각도 일으킬 수 있다. 

또 그 생각이나 사건을 기억하려고 하면 몇 억겁을 지난 후라도 그대로 기억할 수 있다.

마음은 깨끗한 종이와 같이서 그림도 그릴 수 있고 글씨도 쓸 수 있으며 가지각색의 설계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본래 이놈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은 자유다.' 하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있다.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자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생명이 자유라는 것을 말하고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어째서 생명이 자유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나 자신은 가기 싫은데 왜 자꾸 가자고 하느냐 하고 고집하는데 가기 싫어하는 놈이 자기의 생명인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아니고 가자고 하면 갈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는 놈이 생명인 것이다. 절대로 안 간다는 것, 생각 그놈이 그생각까지는 '절대'같지만 그놈이 임시로 그렇게 생각해 본 것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것을 공산주의자가 알면 참으로 생명이란 것은 물질도 허공도 아니구나 하고 공산주의를 다버릴 수 있다.인생이 죽으면 완전히 끝난다고 하니까 유물론자들이 어쨋든 살아있는동안 자기가 마칠 때까지 힘껏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보아야 별수도 없는 줄 알면서도 그래도 자살하기는 너무 억울하고 이왕 죽을 바에야 마음대로 힘이나 써보자고 발버둥친다. 그래서 그들은 '힘이 진리다.'라고 말하고 윤리나 도덕 또는 종교는 힘 앞에는 
아무 기력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하니 유물주의인 공산당을 하기도하고 자본주의를 하고싶은 사람은 제멋대로 힘을길러 싸워보자고 한다. 이 두사상은 싸움의 결과가 아무것도 없는 줄 잘알면서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설사 싸움에 이겨도 몇 십년을 살지못하고 자신도 죽는 것이다.이들이 아무 이익이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보잘것 없는 자만심과 부질없는 욕심 때문인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 마음은 우리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고 태초 이전부터 있던 것이다. 이것은 만들어질 수도없고 없는 것 조차도 없으며 진공도 아니고 사상도 아닌 까닭에  그 마음의 실체라는것은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누가 만들수도 없고 제가 스스로 만들어질 수도 없다.


그래서 이런것을 가지고 도인 노릇도 하고 정치인 노릇도 하며 살인강도나 불량한 사람 노릇도 하고있는 것이다. 그럼 마음을 깨치면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도 궁금한 일이다.

우리가 그런줄 알면 깨쳐야 하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모르는 '내'가 '나'다. 이것이 법문을 하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듣고 인식할 수 있는것이 아니면 모든것을 부정하는 버릇이 있다. 산(生) 것이 있다고하면 이 우주를 다 더듬어 보아도 없고 오직 내가 법문을 하고 여러분이 듣고 있는 주체인 마음 뿐이다. 이것 내놓고는 다른 생명이 있을 수 없고 있어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생명이 나다. 반면에 '나는 곧 우주생명인 것이다.'라고 우리가 인정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다행히도 삼천년전 인도에 '실달타'라고 하는 분이 그 진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깨달으셨다. 

그는 인생의 죽음과 병듬과 늙음과 탄생함을 원통하고 슬프게 생각하였고 왜 내가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수 없느냐 하고 발버둥친 것이다. 실달태자는 인생의 무상함에 순응할 수 없다고 반기를 들었다. 

 

인생이 병들고 늙어죽는 법이 있다면  반대로 영원히 병들지않고 늙지도 않으며 살 수 있는 법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이것이야 말로 인류 역사에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하여보지 못한 위대한 생각이였다.

다시말해서 우리에게 가장 슬프고 무서운 것은 무엇보다도 죽음인 것이다. 실달타는 이렇게 두려운 죽음의 원리가 있는거와 같이 영원하고 불멸하는 삶의 원리도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실달태자만의 냉철한 판단력이요 그야 말로 무서운 고집인 것이다.

 과거 수 많은 성인들이 있었으나 실달태자와 같은 위대한 뜻을 가져본 일도 없거니와 해결한 분이 없었다. 지구가 둥글다고 고집하고, 지구가 태양계를 중심해서 돈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듯이 죽지않는 원리를 발견했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의 정신을 의심했던 것이다.


실달태자는 설산에서 공부할 때 처음에는 진리를 객관적인데서 찾으려고 했으나 그것은 잘못인줄 깨닫고 주관적인 자기안에서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하였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놈이 무엇이냐 하고 생각해 보았더니 바로 실달타 자신인 것을 알았다.  

 물론 자신의 육체가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을 마음이라고 이름지어 부를 수 있는 놈이 무엇인가를 찾기에 노력하였다.그는 마침내 주체성을 찾았다.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좋아하는 이놈역시 부정과 긍정이다. 부정 긍정을 주체하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는 막연하였자만 누가 하는것이냐 할 때는 틀림없이 실달태자 자신인 내가 바로 부정 긍정하였다. 그러니 부정 긍정을 주체하는 놈이 무엇이냐 할 때는 이 육체가 아니였다. 무엇인가 육신말고 다른 하나가 있었다.  

 도대체 이 몸둥이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데 살기을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그 분명한 생각은 고금을 통해 변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5천년 문화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항상 이 육체를 나라고 착각하고있다. 불교에서는 이 착각을 무명[無明]이라고 하는데 이는 밝지 못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육체를 나라고하는 착각속에 빠져있다. 그러나 그 육체가 나라고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이 확실히 나 자신인데 그 있는 곳을 모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니 육체 이것이 나 자신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그리고 이 생사에 대한 것을 생각할 때는 역시 육체는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남이 죽으니 나도 죽는가보다 하고 중생들은 자포자기하고 사는 날까지 막연히 살아간는 것이다. 그러나 실달태자야말로 정말 역사상 가장 천재요 너무도 밝은 분이였다 

참으로 진리를 구현하려는 대욕심자 이다. 

영원히 안 죽을려고 자기를 발견한 것이다. 일찌기 예수님이나 공자님도 이런것을 가르쳐주어도 감히 듣지도 않을 소리였다. 달태자는 보리수 밑에 앉아서 부정과 긍정을 자유로이 주재하는 즉 내가 곧 무엇이냐? 하고 다른것은 모르더라도 이것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자기 정신을 못차리고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남을 따라 다니는 것은 마치 껍데기나 다름없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미친 사람인 것이다. 남의 말에 따라다니고 남의 행동에 끌려 다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가령 예수님을 믿는 삶이 있다면 예수님의 진실한 그 뜻을 따를 수 있겠는가? 또 부처님을 믿는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참모습을 찾아야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부터 우선 알고 남을 찾아보아야 하는것이 순서가 옳을 것이다.  

 

그리하여 실달태자는 6년 동안 한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살펴보니 일체 망상과 잡념이 즉 장사하고 농사짓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아들 딸 낳고 정치를 하고 사는 것이 완전히 허무하고 헛된일이라는 결론이 나서 모두 미련없이 만사를 깨끗이 던져버렸다.아무 죄악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한것도 아니고 복도 아니고 무슨 종교나 철학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 쓸데없는 헛된 일이었다.  

죽기 싫어하는 인간에게는 아무 계산이 안되는 일이어서 실달태자는 다 던져버리고 6년동안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6년 동안에 허공에 다 녹아 없어지고 

물질인 에너지와 에테르까지 모두 없어졌다고 보고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남는 것은 인생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주체성을 그렇게 빌견하고 보니 참으로 놀랠 정도로 이상했다.  

6년의 피나는 고행끝에 섣달 초파일 새벽에 동방의 샛별이 밝아지는 것을 보는 순간에 

자기자신의 깊은 의미를 각성한 것이다. 그 주체성을 통털어 알고보니 알았다고 해도 말이 안되고 깨달았더고 해도 안되고 얻었다고 해도 안되고 모든 언어나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인생이 무상하다고, 왜 죽게 되었느냐고, 원통히 생각하면서 쫓아다니든 그 마음이 이 순간 내 마음과 조금도 달라진게 없었다. 그러니 깨친것도 아니고 아니깨친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생각으로도 안되고 말이나 글, 또는 형용으로도 안되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때 처음으로 말씀하시기를 나 자신을 '깨달았다.' 는 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쾌활, 쾌활' 참 기특하고 기특하다. 어찌 미처 이럴 줄 내가 알았으랴. 이제 일체중생을 보니 전부 부처님과 똑같은 일체 공덕을 갗추어 가지고 있었다.

  

아! 이치가 그러한데 개가되어 서로먹으려고 머리가 깨지도록 저희들끼리 물고 싸우는가 하면 개미가되어 저희끼리 싸우고 일체중생이 이와 똑같은 형식으로 싸우고 헤메고 있다. 

이러고 보니 부처님 말씀대로 참으로 가련하고 슬픈 것이다. 

예수님이나 공자님은 박애[博愛]와 인[仁]을 말했지만 우리 부처님은 자비[慈悲]를 말씀 하셨다.  

박애나 인은 부처님의 자비의 설법인 사랑의 자심[慈心]에 해당하고 슬프고 가련하게 여기시는 비심[悲心]의 설법은 오직 부처님만이 말씀하시였다. 

똑같은 부처 자리를 가지고도 어찌 저렇게 딱하게 개나 소가 되었을까. 저 중생이 언제 마음을 깨쳐 생사를 자유자재 하는 본래 인간이 되겠느냐 하는 근본적인 존재를 밝혀야만 하였다. 이것은 과거 - 미래- 현재의 삼세일유법체향유[三世一有法體恒有]란 논리가 성립되지 아니하면 안된다. 즉 전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금생에 실달태자가 이렇게 확실히 있듯이 그런 원리가 있으니까 전생에도 또 다른 몸둥이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개가 되거나 소가 되거나 남자가 되거나 여자가되거나 하는 것은 무진연기[無盡緣起]의 인연을 따라 이룩되는 것이다

이것은 끝이없는 과거로 부터 훈습된 만물의 현상인 것이다. 즉 모든것이 인연을 따라 몸을 받으니 아니되어 본 것이 없었다.눈에 보이지않는 미물까지 그것도 한개의 생명체이다. 그리고 심지어 풀도되고 초목도 되어 온갖 것이 아니되어 본적이 없었다. 거기다가 더 기적은 바위들이 된적도 있었고 허공이 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실달태자가 지금은 마음을 깨친 부처가되어 조금도 다름이 없는 바윗돌이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바위는 무생물인데 그래도 부처님께는 보였다. 이런 것은 우리가 깨치기이전에는 '그러하다더라.'하고 말만 내어놓은 것이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큰나큰 죄를 짓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실제로 경험못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이 이런 것일까 저런 것일까 하면 굉장히 잘못된 착각이다. 이와같이 미래를 내다보니 이 마음을 못 깨친 사람은 당장 죽으면 한없이 죽고 또 태어나고 또 무엇이든 태어난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죽을 때는 아주 죽는 줄 안다.  

 

심지어 공자님도 죽으면 영원히 죽는 줄 알고 죽었지만 아직까지 죽지않고 있는 것이다. 살아 생전의 모습과 같은 존재로 또 무엇인가 되어가지고 돌아다니고 있다. 

이 마음 못 깨달았으니 천당이나 지옥에서 개나 소가되어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다. 왜냐하면 제 마음대로 만들기 때문이다. 물질도 조화를 못하는 것이고 허공은 조화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 마음밖에는 조화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이 우주에 주체인 진리의 '핵'이된다면 그것은 산 것이다. 허공은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우주의 '핵'이 될수고 없고 또 물질이 될 수도 없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이 마음이 우주의 '핵'이 될 수 밖에 없다. 우주의 생명이 곧 나 자신이고 내가 또한 전 우주의 생명이고 진리고 핵심이고 이것이 깨친 부처님이고 하나님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히 깨친것을 부처라고한다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다 진리다 신이다 또 옥황상제다 해봤자 불교식으로 말하면 하나의 마음 못깨친 중생인 것이다. 즉 범속한 생명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도 공자도 전생 후생을 몰랐고 오직 실달태자만 안 까닭이다. 그런데 최근 심리학계에서 어린애나 어른이나 최면술을 걸어서 시험을 해본결과 전생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전생 이야기를 분명히 한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40세를 먹었다 20세를 먹었다 10세가 되었다 하고 자꾸 나이를 소급해 보면 그때 그때의 연령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 말한다. 또 한살이 되었다 하면 우리는 기억할 수도 없고 추측할 수도 없는 일을 자세히말한다.

최면술이라는 것이 별것이아니다. 나도 그 전에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만드는 마술인줄 알았는데 자세히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최면술이라 하는 것은 다른것이 아니고 바로 정신을 통일시켜주는 한 방편인 집중법인 것이다.  

 

잠을 재우는 것이 아니고 모든 잡념을 다 제거해 주는 것이다. 마음을 안정시켜 가지고 잡념망상을 가만히 제거해 준다.잡념을 없애고 나면 정신이 가장 분명해 진다. 그렇게 되면 과거나 미래는 다 통하게 된다. 

마음은 아무 생각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며 사상도 아니고 밝고 어두운 것도 아니며 둥굴고 모난것도 아니며 남성도 여성도 아니며 선한것도 아니다  

 

이와같이 일체를 초월하다보니 만사가 다 통하고 있다. 그러니 이것을 내놓고 우주의 주체가 있을 수 없고 진리가 있을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 마음을 깨치지 않고는 참 지도자라고 할 수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우주의 '핵'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핵인 이 마음을 깨치기 전에는 누가 이 옳은 지도자가 되겠는가. 하기야 있기는 있겠지만 모두가 다 다른 소리를 한다. 기도를 했거나 무슨 수를 써서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르지만 확실히 자기 생명을 깨쳤을 때   참 우주의 주체로 복귀가 되어서 전지전능 할 수 있다. 


그리고 본래 하나님은 존재하고 인간은 인간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천당에 가 보아야 나는 이 모양 이꼴 이라면 천당에 가나마나 한 것이다. 설사 좀 편안히 산다고 하지만 좋을 것이 무엇인가?

 항상 거기에 부속품이 되어가지고 언제 또 하나님이 나를 죽일는지 알 수없는 일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하나님이라 하지않는가. 더군다나 요즈음은 인공위성이 나와 우주를 돌고 도는데 천당이 어느곳에 존재한다고 말할는지 모르겠다.  

일만 다른 종교에서는 어떤 절대신을 하나 내세워서 거기에 무조건 절대복종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들 다른종교와 정의를 달리하므로 일반 서양삶들은 불교를 종교라고 부르지 않는다.  

불교는깨침을 위주로한다 하니 절대복종하는 자기들 신앙과 다르므로 배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순종한다는 것은 인간을 노예근성만 조장할 뿐이며 하나님의 울타리에 꼭 끼어넣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면 모든것을 이루어주고 하나님의 뜻속에 살지않으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니님의 뜻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된다고 하더라도 천당이라는 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이니 하니님이 있다고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즉 하나님의 거주지는 주소불능이며 근본적인 주체가 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꼭 자기와 같이 만들었다고 하니 인격신[人格神]이라고 한다. 인격신이라고 한다면 역시 모양이 있나 없나 하는것이 문제이다. 모양이 없다고 한다면 인격신이라고 할 수없고 모양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인간과 같이 눈은 가로놓이고 코는 그밑에 우뚝 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우리와같이 하나의 물질적인 성격을 지닌 육체냐 하는 문제다.  

 

만약 물질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비행기나 인공위성을 타고 우주를 돌아다니다보면 그 하나님을 만나 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와같이 늙고 병들고 죽는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육체가 아니고 하나의 '환상'이라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도깨비다. 그것이 눈에 보이다 안보이다 할 수 있다면 물질이 아닌 하니의 환상일 것이다. 그러니 도깨비라는 소리밖에 안된다. 요즘 신학자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바로 이야기를 못한다.

 

결국 그 사람들도 신이없다고 말한다. 성직을 직업으로 삼는 신부나 목사들은 성서 그대로 참말이라고 말을하지만 지금 신학자들은 허공에 신이 없다고 말한다. 과거에 잘못 생각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신은 새로 창조하여야 한다. 신을 우리가 창조한 것이지 결국 신이있어서 우리를 지배한 것이 아니다.

 

신을 새로 창조하려고 하므로 기성종교는 다 깨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현대인의 종교는 불교뿐이라고 세계 많은 지성인은 생각하고 있다. 

출처 조사서래의 고승법어집 홍법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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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음이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