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 소리사랑 - 민족의 큰별 떨어지다
06/19/201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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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큰별 떨어지다

 2.   다음의 인물은 元容德이다. 홍영기 검찰관은 총살형을 구형하였으나, 재판장 원용덕을 비롯한 재판관들은 종신형으로 선고 하였고, 그 후 원용덕은 안두희 암살 사건을 잘알고있는 金聖柱를 죽였다(1954. 4. 17).
   

결국 군부에서는 장은산이 사전에 직접 명령-지휘하였고,김창룡은 사건의 뒤처리에 적극 개입하였다. 그외 전봉덕, 김창룡, 채병덕, 원용덕, 김병삼 등은 외곽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윤곽의 범위로 볼 때 국방장관 신성모는 당연히 의혹의 대상이 된다. 


신성모에 대해서는 高貞勳 이 이미 폭로한 바 있고, 암살사건을 보고받고 '이제 민주주의가 되겠군' 하며 반겼다는 崔大敎 당시 서울지검장 등의 증언이 있다. 뿐 아니라 신성모는 김창룡과 더불어 안두희의 수감생활을 보호하고, 그의 감형, 잔형정지, 잔형면제, 석방과 육군복귀를 주도하였으며, 전쟁중 부산에서 안두희를 불러 毛允淑과 金活蘭이 보는 앞에서 생활비까지 제공하였다. 


신성모의 개입과 관련하여 세상에서는그가 주도하는 '88구락부'가 암살 사건의 진정한 배후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성모가 내무장관에서 국방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 군부와 경찰관계의 핵심분자들이 상호간의 정보교류란 명목으로 만든 것이 ' 88구락부'였다. 


여기에는 신성모외에 채병덕 육군총참모장, 포병사령관 장은산, 김창룡 소령, 서울시경국장 김태선, 정치인 金俊淵, 모략군이자 정치 브로커 김지웅 등이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신성모는 4-19직후 고정훈이 자신을 백범 암살의  배후로 지목하자 충격을을 받고 뇌일혈로 쓰러져 1960년 5월 29일 사망하였다. 그런데 신성모가 사망한 이 날은 공교롭게도 이승만 박사가 하와이로 망명한 날과 같은 날이었다.
   


미국의 그레고리 핸더슨(Gregory Henderson)은 한국의 李相敦 국회의원이 미국 보스턴을 방문하였을 때, 이 의원 일행을 초청한 자리에서 이상돈 의원에게 왜 이승만 박사가 하와이로 망명했는지 아느냐고 묻고 가기가 알기에는 김구 암살 사건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도망온 것이다는 말을 한 사실이 있는 것을 이상동 의원이 희고록에 밝힌 것이 있다. 헨더슨은 암살당시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한독당에 대한 와해공작과 암살사건의 계획, 실행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김지웅이었다. 그는 안두희가 수감된 후 재판과정에서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까지 조언해주는 등 사건의 마무리에도 깊숙이 개입하였다. 

그는 1950년대 중요한 정치적사건을 조작한 자였고 4-19 직후 백범 암살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지자 60년 8월 22일 밀항으로 일본의 복강으로 도망쳐 ' 내가 김구 암살의 주모자'라는 이유로 정치망명을 요청하였다. 

일본정부에서는 그의 망명요구를 받아주지않고 밀입국자로서 처벌받고 풀려났다. 일본 중의원에서도 김지웅 문제가 제기되어 많은 논란이 있었다(1966년 3~4월).
   


백범 암살 사건의 배후에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관련여부이다. 이 문제에 관한 안두희의 증언은 '오락가락'하고있다. 그는 1961년 4월 金龍熙에게 체포되었을 때, '이태원 육군형무소에 있을 때 이 박사가 날 잘 봐주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한 權重熙에 의한 1992년 9월 증언에서 사건발생 일주일 전인 1949년 6월 20일경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만났으며, 그 자리에서 이승만은 "국방부 장관에게 얘기많이들었다. 높은사람 시키는대로 일 잘하고 말 잘들어라"고 격려한 적이있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그 직후 안두희는 이 진술을 거부해 버렸다.  
  


이승만의 개입에 대한 다른사람의 증언과 주장을 들어보자. 이승만의 고문이었던 올리버(Rovert Oliver)같은 사람은 이승만이 이 사건과 관련 없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승만이 직접 암살을 지시한 증거나 증언은 없다. 그러나 관련되는 간접적인 증언은 적지않다.


 조소앙은 사건 며칠 전 경무대로 이승만을 방문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이승만은 '백범이 공산당과 내통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 빨갱이가 잠입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백범의 몸가짐을 신중히 해야한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다음으로 최대교의 증인이 있다. 최대교의 증인요지는 홍종만 등 7명에 대한 영장이 당시 서울지검장이던 자신을 통하지 않고 金翼鎭 검찰총장이 직접청구하였으며, 韓格晩 서울 지방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했는데, 이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라는 것이었다. 


최대교의 증언은 적어도 사건의 뒤처리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개입하였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최대교의 증언내용은 법조계의 영장처리방식에 비추어 신뢰하기 어렵고 이승만 대통령이 그러한 일에 관여되였다고 볼 근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증언이어서 믿기 곤란한 것이다.
   


한편 김성주의 죽음도 백범 암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며, 이승만의 사후 개입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안두희 재판당시 서북청년단 부단장이었던 김성주는 "애국자 안두희를 석방하라"는 삐라를 법원 근처에 붙여 놓는등 안두희의 구명운동을 벌리기도했다. 


한국전쟁 중 유엔군의 북진 시 유엔군의 임명으로 잠시 평남지사를 역임했지만, 이 때 이승만 대통령은 金炳淵을 임명하여 이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후 1952년 대통령선거 때는 조봉암의 선거운동을 돕는등 반이승만 활동을 벌리기도 했다. 


그는 김구 암살의 배후자인 김지웅의 허위정보로 1953년 6월 25일 국제공산당원 협의와 이승만 암살 예비죄로 헌병총사령부에 구속되었다. 그러나 군법회의에서 7년형이 구형되자 이승만 대통령이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에게영문으로 된 메모를 보내 김성주를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다음은 영문 메모의 내용이다.
 

        General Won
Kim Sung Ju, 김성주 now in jail must be sentenced to capital punishment- 극형. He was appointed governor of  평양 by 외국인 and tried to kill Moon Bong je 문봉제 Whom the Government appointed as police chief. It is clearly treason case and must be treated as such. To prevent any such traitor in the future he must be punished according to the law. I told the Defense Minister and I am telling you now. Please see to that without delay and without much noise.
S.  R.
원장군
지금 감옥에 있는 김성주는 반드시 극형에 처해야 한다. 그는 외국인이 이명한 평양지사였고 우리 정부가 치안국장으로 임명한 문봉제를 죽이려 했다. 이는 분명히 반역사건이기 때문에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장래에 그런 반역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법에 따라 처벌 되어야 한다. 나는 국방부장관에게도 말했지만, 당신에게도 명령한다. 신속하고 아주 조용하게 그렇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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