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 - 어머나 백범 김구 평전
09/21/2013 18:16
조회  878   |  추천   0   |  스크랩   0
IP 69.xx.xx.171
                                                           장윤정 - 어머나     백범 김구 평전
                                                                        source you tube

   최초의 벼슬, 종상위원   김삼응 교수 백범김구 평전
  
 김구에게 왕조시대의 '벼슬' 이라면 농상공부 소속 종상위원 種桑委員에 임명된 일이다. 종상위원이란 뽕나무 종묘를 관리하는 하급관리였다. 소시 적에 벼슬을 얻고자 과거에 응시하였다가 부패하고  문란해진 제도 때문에 관직을 포기하고 구국운동에 들어선 김구가 종사위원이라는 하급관리가 된 것은 운명이라면 운명이라 하겠다.
   

어느 날 군수 윤구명이 김구를 불러 200냥의 노자를 주면서 해주에가서 농상공부에서 보낸 뽕나무 묘목을 찾아와 달라고 요청하였다. 김구는 이를 흔쾌히 승낙하고 해주로 떠났다. 정부에서는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일본에서 뽕나무 묘목을 수입하여 각 지방에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김구가 해주에가서 묘목을 보니 말라빠진 것이 많았는데도 관리들은 그냥 가져가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김구가 "이런 말라빠진 묘목은 가져갈수 없다."고 단호하게 수령을 거부하자 담당관리는 대노하며 상부의 지시를 거역하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김구는 이에 굴할 사람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사리를 따졌다. "누가 이렇게 바싼 돈을 주고 외국에서 들여온 묘목을 말라빠지게 잘못 관리했는지 알아내서 책임자를 고발하겠다"고 맞섰다.
  

 그러자 관리는 김구에게 생생한 것을 골라 가라고 하였고, 김구는 묘목 수천 본을 골라 말에 싣고 돌아왔다. 노자 200냥 중에서 70냥을 쓰고 나머지는 돌려주었다. 여비 지출세목서를 받아본 관서에서는 김구의 정직함을 극찬하였다. 이 일이 계기가되어 종상위원에 임명된 것이다.
   

부패한 왕조말기에 상부의 바르지 못한 것을 따지고, 남은 여비를 지출 세목서를 작성하여 반납하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김구는 이렇게 작은 일에도 정직성을 보여주었다.



        기우는 나라의 한 줌 버팀목 되어   을사조약 반대 상소투쟁
   500여 년 사직이 무너지고 있엇다. 무너지는 국가를 버티는 기둥도, 대들보도 보이지 않았다. 김구가 늦장가를 들어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을 무렵에 나라의 운명은 돌이키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1904년  1월 정부는 러일전쟁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적절한 조치였다. 하지만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고자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일본과 러시아가 국외 중립선언 따위를 존중할리 없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일본군이 서울에 진주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외부대신 이지용 李址鎔과 일본공사 하야시곤스케의 명의로 체결된 6개항의 '한일의정서'는,
 
제1항 한국 정부는 일본을 굳개믿고 시정의 개성에 관한 충고를 받아들일 것,
 
제4항 제3국의 침략이나 내란으로 한국이 위험에 처할 때 일본은 신속히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한국 정부는 이러한 일본의 행동을 쉽게 하기 위해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고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제 5항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는 이 협정의 취지에 위반되는 협약을 제 3국과 맺지 못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조약을 빌미로 일본군은 광대한 토지를 군용지로 수용했으며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의 시설 개성에 관한 충고를 용인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한일협약'을 강요했다. 한일협약에서는 일본이 추천한 재정 - 외교고문의 동의없이는 재정과 외교상의 일을 처리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또 외국과의 사이에 조약  체결과 이권양도, 계약 등도 반드시 일본과 협의토록 했다. 

이로인해 대한제국은 재정권과 외교권을 빼앗겼고, 재정 - 외교 이외의 각 부에도 고문을 두도록 하여 한국의 국정 전반이 일본이 간섭하는 이른바 '고문 정치'가 시작 되었다.
   

정부에서는 무기력하게 일제에 끌려다니며 일제의 술책에 놀아나고, 송병준 宋秉畯 - 이용구 李容九등 일진회 一進會 간부들이 일본의 앞잡이가되어 쓰러져가는 왕조의 기둥뿌리를 흔들어댔다. 1905년 11월 17일 마침내 '을사보호조약' 乙巳保護條約이 체결되고, 이 조약으로 외교권을 완정히 일제에게 빼앗겨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
   

참정대신 한규설이 조약의 불가를 외침며 맞섰지만 일제의 무력과 친일파 을사오적의 흉계를 막을 수 없었고, 고종황제는 "정부에서 협상 조처하라"고 무책임하게 국가 명운이 걸린 문제를 내각에 떠넘겼다. 조약 체결의 소식이 "황성신문"의 사설,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代哭을 통해 알려지자 조약 체결에 대한 반대운동과 반일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시종무관장 민영환 閔泳煥을 비롯하여 특전관 조병세 趙秉世, 법무주사 송병찬 孫秉 瓚, 전참정 홍만식 洪萬植, 주영공사 이한응 李漢應, 학무주사 이상철 李相哲 등의 중신 - 지사들이 을사조약의 폐기를 주장하며 자결하고, 충청도에서는 전참판 민종식 閔宗植, 전라도에서는 전참찬 최익현, 경상도에서는 신돌석, 강원도에서는 유인석 柳麟錫이 각각 의병을 일으켰다. 을사오적을 암살하려는 개인적인 의거도 일어났다. 
  

 '을사조약' 폐기운동이 전국적인 상소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망국조약의 폐기를 주장하는 소리가 드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김구는 서울 상동교회에서 열린 '乙巳條約' 폐기를 위한 '엡윗청년회' 회합에 진남포 대표로 참가하였다. 김구가 기독교인으로서 적극적인 구국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을사조약'의 반대 투쟁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김구는 이에 앞서 진남포 감리교회 청년회의 총무직을 맡고 있었다. 이때 서울 상동교회에 모인 사람은 전덕기 全德基, 정순만 鄭淳萬, 이준 李儁, 이동녕 李東寧, 계명육 桂明陸, 옥관빈 玉觀彬, 이승길 李承吉, 김인집 金仁潗, 차병수 車炳修, 신상민, 김태연 金泰淵, 쵸영각 表永珏, 조성환 曺成煥, 서상팔 徐相八, 이환식 李桓植, 기산도 奇山濤, 전병헌 全炳憲, 유두환 柳斗煥, 김기홍 金基弘, 등이었다. 이들 중에는 장로교 신자도 여럿이었다.
  

 장로교인인 김구가 별 연고가 없던 진남포의 감리교회 청년회의 총무직을 맡아 어떻게 이 모임에 참석했는가에는 다소 의문이 따른다. 이에 대해 최기영(서강대 교수)은 "김구가 진남포 엡윗청년회의 총무직을 맡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혹 이모임에 참가하기위한 일시적인 조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 즈음에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가 공동으로 '위국기도문' 爲國祈禱文을 작성하였다는 것도 이 모임과 유관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라고 분석했다. 
   

상동교회에 모인 기독교 인사들은 4, 5명씩 연명으로 '을사조약'이 폐기될 때까지 상소하기로 하였다. 이준이 작성한 상소문을 가지고 대표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2013‎년 ‎9‎월 ‎20‎일 ‎금요일시위를 하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해산당하고 그 중 몇 사람은 경무청에 끌려갔다. 

일제의 탄압에도 기독교인들은 며칠동안 "경고 ! 2천만 동포"라는 격문을 인쇄하여 종로일대에 살포하고 조약파기를 연설하다가 일본 경찰, 헌병을 향해 기와조각을 던지며 접전이 시작되었다. 이때 일본 보병 1개중대가 포위하며 공격했다. 

왜놈들이 총을 쏘며 한인을 잡히는 대로 포박하니 수십 명이 체포 - 감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소 투쟁은 증가하고 각기 민중계몽과 신교육을 실시하기로 전략을 바꾸었다. 김구도 해주로 돌아왔다. (최기영, "백범 김구의 애국계몽운동", '백범과 민족운동연구', 제1집 ,백범학술원.)
   

김구가 "기독교계의 을사조약 파기 투쟁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관서 지방의 지도적인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구에 있어 기독교는 신교육운동에 그치지않고 국권회복 비밀결사인 신민회 新民會에 참여하게된 것도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이때부터 형성된 기독교계의 인맥은 뒤에 그의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한 민족 한 반도
이 블로그의 인기글
ksugmac
ksugmac(Ksugmac)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2.11.2009

전체     740618
오늘방문     31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장윤정 - 어머나 백범 김구 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