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스와니강 - 백범김구 평전
09/13/201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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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d Folks at home (Swanee River)  백범김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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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큰 변화, 열강의 이권 침탈     김삼응 교수 백범 김구 평전
   
 창수가 옥고와 승려생활을 하며 힘겨운 젊은 날을 보내고 있을 때 국가적으로는 여러가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1897년 10월 전부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우리나라가 청나라 제후국과 같은 위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이제껏 쓰던 청나라 연호를 버리고 독자적인 광무 光武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임금의 칭호도 대왕에서 황제로 격상하는, 이른바 건원칭제 建元稱帝를 단행했다. 황제권을 강화하고 지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둔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광무개혁'이 총체적인 국정개혁을 이루지 못한 채 황제의 권한 강화에 중점을 두고, 일본이 조선을 청나라에서 떼어내고자 하는 책략이 바탕에 깔리면서, 독립협회와 황국협회가 충돌을 빚고 친일파와 친러파가 투쟁을 벌이는 극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1896년 7월에는 갑신정변 때에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이 귀국하여 독립협회를 결성하였다. 외국 의존 정책에 반대하는 개화지식층 30여 명이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표방하면서 결성한 독립협회는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상재 李商在, 이슨만, 윤치호 尹致昊 등이 적극 참여했으며, 발족당시에는 이완용, 안정수 등 정부요인들도 참가했다. 이들은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수하여 집회장으로 사용했으며, 연은문 자리에 '독립문'(독립문의 편액은 매국노 이완용의 글씨다)을 세워 독립정신의 상징으로 삼는 한편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개화사상을 고취하였다.
  

 아곤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고있는 고종에게 환궁할 것을 호소하여 이를 실현시키는 등 정부에 대해 강한비판 기능을 발휘하여 사회단체 가운데 지도적 역활을 담당하였다. 우리나라 최총의 민중대회라 할 수 있는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국정의 자주노선을 요구하는 '헌의 獻議 6조' 를 결의하고, 이의 실행을 고종에게 주청했다. 고종도 처음에는 6조의 실행을 약속했으나, 이권에 눈이 어두운 정부 대신들의 방해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독립협회에서는 정부를 강하게 탄핵하기 시각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정부 수뇌들은 고종에게 독립협회가 황제를 폐하고 공화제를 실시한다고 거짓으로 고하여 이상제 등 17명을 체포케 했다.
 

독립협회 회원들이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어용단체인 황국협회를 시켜 보부상 수천 명을 동원하여 회원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인 청일전쟁의 결과 청나라의 세력이 악화되면서 조정에서는 친일파와 친러파가 크게 득세하기 시작했다.
   

조선 말기에 극동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는 한반도에 진출할 기희를 엿보고 있었다. 청일전쟁 후 조선에서 청나라세력을 제거하고 김홍집 중심의 친일 내각을 조직케 하는 등 조선침략에 열을 올리던 일본에 대해, 러시아가 이른바 삼국간섭을 주도하여 일본의 기세를 꺾음으로서 조선에는 친러적인 기운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운에 편승하여 친러파로 돌아선 이범진, 이완용 등이 명성황후의 동의를 얻어 정권을 장악하고 친러파 내각을 설립시켰다.
  


 이에 일본은 이노우에 공사를 소환하고 군 출신 미우라를 공사로 파견하여 세력을 만희할 기회를 노리다가 1895년 8월 20일 일본인 정치 깡패들을 동원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대원군을 내세워 친일내각을 조직케 함으로서 친러파를 몰아냈다. 그러나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국제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켜 일본은 미우라를 소환하여 사태를 수습하려했다.
  


 이 틈을 타서 친러파인 이범진, 이완용 등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짜고 1896년 2월 러시아 수병을 서울로 끌어들인 후 갑자기 황제와 황태자를 러시아 공사과으로 옮기는 이른바 아관파천을 감행했다. 뒤이어 이들은 윤용선 尹容善을 총리대신으로 하는 친러파 내각을 수립하고 친러정책을 펴나갔다. 이 기간에 러시아는 조선으로부터 입록강 유역과 울릉도의 삼림 채벌권, 경원 - 종성 광산 채광권, 목포 - 고하도의 조차권 등 많은 이권을 챙겼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한 일본이 '포츠머스 강화조약'으로 조선에서 우월권을 확립하게 되면서 친러파는 다시 친일파로 돌아서 을사조약과 한일합병을 주도하였다.
   


1898년 흥선대원군이 죽었다. 친러파가 전권을 잡게되자 정계에서 밀려났다가 파란많은 생애를 접은 것이다. 이와같은 살황에서 열강의 이권 침탈이 극성을 부렸다. 무력을 앞세운 불평등조약에서 조선은 관세 협정권, 외국 화폐 통용권 내지 통상권, 연안 해운권을 비롯한 상권과 경제주권을 침탈당했다.
   


일본은 경부철도 부설권, 평양탄광 석탄 전매권, 경인철도 부설권, 충남직산 금광 채굴권, 경기도 연해 어업권을 독점하고, 미국은 평북운산 금광채굴권, 경닌철도 부설권(일본에 이권을 팔았다), 서울 전기 - 수도시설, 서울 전차 부설권을 차지했다.
   
러시아는 함북 경원 - 종성 금광 채굴권, 인천 월미도 저탄소 설치권, 압록강 유역과 울릉도 삼림 채벌권, 동해안 포경권, 부산 절영도 저탄소 설치권을 움켜쥐게 되고, 
영국은 평남 은산금광 채굴권을, 
프랑스는 경의철도 부설권(일본에 이권을 넘김), 평북 창성 금광 채굴권, 평양 무연탄 광산 채굴권을, 
독일은 강원도 금성 당현 금광채굴권을 각각 차지하게 되었다. 
국가의 주요 자원이 속속 외국에 넘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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