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 백범 김구 평전
09/11/201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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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utiful Dreamer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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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옥과 방랑의 길 -  김삼응 교수  백범 김구 평전
  
 창수가 구사일생으로 사형 집행은 모면하였지만 옥중에서 풀려나지는 못하였다. 주한일본공사 하야시가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압력을 가하여 석방되지 못한것이다.
   

그러나 창수가 '국모보수'의 대의를 내걸고 일본인 밀정을 죽이고, 신문 과정에서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고, 황제의 특명으로 사형 집행이 모면되면서 그의 명성이 인천은 물론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창수의 사형 집행이 보도되자 인천의 물상객주 32명은 통문 通文을 작성하였는데, 
첫째는, 우각동 牛角洞에서 처형될 때 인천 사람들은 한 집에 한 명 씩 우각동 처형장으로 집합할것, 
둘째, 모일 때는 반드시 엽전 한 냥씩을 가지고 와서 그돈으로 창수의 몸값을 치룰 것, 
셋째, 만일 그 돈으로 몸값이 모자란다면 물상객주 32명이 부족액을 총당할 것 등이었다. 
   

이런 사실은 창수의 명망이 얼마나 높았던 것인가를 말해준다. 사형 집행이 중지되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조상하려 왔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축하객으로 바뀌어 줄을이어 면회를 청하였다. 얼마나 면회인이 많았던지 옥내에 자리를 깔고 앉아 며칠동안 이들을 맞을 정도였다.
   

특히 김주경이란 사람은 돈 200냥을 창수 어머니에게 전달하고, 법무대신 한규설 韓圭卨을 찾아가 창수를 석방시키도록 힘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한규설은 "일본공사 하야시가 벌써부터 김창수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삼아 트집을 부리고 있어서 폐하에게 이 문제를 가지고 도저히 진언할 수가 없다"고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김주경은 이후에도 7~8 개월 동안 계속하여 창수의 석방운동을 하느라 여유가 있었던 재산도 어느새 다 날리게 되었다.
  

 김주경은 감옥으로 창수를 면회하여 "새는 조롱을 벗어나야 좋은 상이며 고기가 통발(고기잡는 기구)을 벅어나니어찌 예사스러우랴"는 시의 구절을 주면서 탈옥을 권유하였다. 창수는 심한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구차스럽게 살기위해 생명보다 귀중한 광명을 버릴 것인다. 망설이면서 신학문 공부에 열중할 때에 이번에는 10년 형을 선고받은 조덕근 등 같은 방 죄수들이 탈옥할 것을 권하였다. 창수는 석방을 위한 청원운동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자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탈옥을 결심한 창수는 변회온 아버지에게 철창 하나를 들여보내달라고 하고 당번 옥사정을 불러 돈을 주며 쌀과 고기를 사다 줄 것을 부탁하였다. 자신이 죄수들에게 한 턱 내겠다면서, 그리고 면회온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렸다. 이날 저녁 간수들이 준비해온 음식과 술과 고기를 먹고 취흥에 빠져 있을 때를 탈옥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1898년 3월 9일 늦은 밤, 창수는 감방 마루바닥을 들어가 땅을 파고 옥  밖으로 통로를 냈다. 옥 밖으로 나와서 담장을 넘기위해 줄사다리를 매어놓고 나니  문득 딴 생각이 났다.
다른사람을 끌어내려다가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이 길로 혼자만 탈출하자는 것이었다. 순간 양심이 심하게 갈등을 일으켰다. 그리고 얼른 돌려 생각하였다.
 

  '사람이 현인군자에게 죄를 지어도 부끄럽거늘 하물며 저들과 같은 죄인에게 죄인이 도고서야 어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으랴. 종신토록 수치가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발길을 다시돌려 여전히  흥에겨워 놀고있는 조덕근의 무리를 하나씩 눈짓으로 불러서 나가는 길을 일러주어 다 내보내고 자신은 맨 나중에 나왔다.


 죄수들이  감옥의 높은 담을 넘다가 넘어지는 소리에 경무청과 순검청에서 비상소집의 호각소리가 나고 옥문 밖에서는 벌써 이들이 급히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 옥담 밑에있던 창수는 다시 감방으로 들어갈 수고없고 하여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간신히 몸을 날려 담을 뛰어 넘어 피신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탈옥에 성공하였으나 조덕근은 5 개월만에 체포되고 말았다.
  

 1896년 5월 11일 부터 1898년 3월 9일까지 약 1년 8개월동안의 제1차 옥살이는 이렇게 마감이 되고, 창수는 탈옥수의 쫓기는 신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창수는 남쪽지방으로 유랑길을 나섰다.
  

 남도 유랑기에서 창수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궁핍한 시대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이들을 갈취하는 양반계층의 탐학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황해도 지방의 양반들보다 남도지방의 양반들의 토색 土色질이 훨씬 더 심한 것을 보고 그나마 그쪽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남도 유랑은 충청 - 전라지역에 거의 망라되었다. 탈옥한 이후 부평, 시흥을 거쳐 양화나루에 도착하고, 공주, 은진, 강경포를 거쳐 무주에 이어, 몇 해전 북행길에 동행했던 김형진을 만나고자 그의 고향 남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고 젊은 과수 寡守가 살고 있었다. 발 길을 다시돌려 광주, 나주, 금산, 무안, 목포, 해남, 강진, 고금도, 완도, 장흥, 보성, 화순, 동북, 순창, 대명, 하동, 공주를 거쳤다.
  

 고금도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전적을 둘러보고, 아산에서는 충무공 기념비를 우러르고, 금산에서는 조중봉 趙重峰의 패적유적지를 살펴보았으며, 공주에서는 임진왜란 때의 승병 장 영규靈奎의 비를 보고 많은 느낌을 받았다. 하동 쌍계사에서는 칠불아자방 七佛亞字房(한 번 불을 때면 온기가 49일 간다는 亞자 형상의 구들을 놓은 선방)을 둘러보고 우리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였다. 백범의 겨례사랑과 국가사랑의 민족주의는 이때 남도 유랑길에 보고 느끼면서 체득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을 터이다. 또 이 시기에 불교에 입문하면서 성리학 - 동학에 이어 불학을 배우게 되어 백범의 민족주의 사상의 폭넓은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남도 방랑이  6~7개월째에 접어든 그 해 늦가을 창수는 갑사에서 길동무를 만나 공주 마곡사를 찾았다. 그리고 고뇌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기를 결심한다. 세속의 잡념을 씻고 출가를 단행한 것이다.
  

 호덕삼 스님에 의해 머리가 깎일 때는 세상의 인연을 끊는다는 생각에서 설음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용담화상 龍潭和尙으로부터 계 戒를 받고 하은당이 원종 圓宗이란 법명을 지어 주었다. 창암에서 창수로, 다시 원종으로 바뀌었다. 창수가 탈옥하여 남도지방을 방랑할 때에 그의 부모가 모두 잡혀가 신문을 받았고, 아버지는 1년여 동안이나 아들 대신 감옥생활을 하였다. 어머니가 남편의 석방을 두 번이나 청원하여 풀려날 수 있었다. 이런사정을 알 수 없는 창수가 잠시라도 세속의 인연을 끊는다고 생각할 때 어찌 아품이 없었을까.
   

스물세 살의 창수는 이제 원종 스님이 되어 쫓기는 몸을 마곡사에 의탁하고 법도에 정진하였다. 그에게 "절은 결코 낮선 곳이 아니었다. 그는 동학농민전쟁 실패 후 구월산의 패엽사로 후퇴하였고, 해주 청룡사에서 산포수를 동원하여 거사하고자 하였다. 젊은 김창수에게 절은 거사에 실패할 때 퇴각하는 은거지요, 다시 세상을 항해 발전하는 일종의 기지였다.
   

다른 승려들은 보경당이나 하은당이 다 고령이라 이 분들이 입적하면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원종을 부러워 하였지만 고향의 부모님, 인천의 김주경, 청계동의 안 진사와 고능선 선생의 일도 궁금하고 나라의 사정도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원종은 "1899년 마곡사를 떠나 서울 서대문 밖에있는 새절로 옮겼다가 얼마 후 해주 수양산 신광사부근의 북암 北庵이라는 암자에 머물렀다. 

그 후 평양으로 가서 학문으로 이름이 높은 극암 최재학의 소개로 대보산 영천암의 주지가 되어 부모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러나 백범은 승려생활이 맞지않아 1899년 늦가을 상투를 올리고 환속하여 부모님과 함께 해주 텃골로 귀향하였다."
10 신용하, "백범김구의 사상과 독립운동,. 서울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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