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선 - 7080 가요콘서트 백범김구 평전
09/09/201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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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선 7080 가요 콘서트 - 백범김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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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응 교수 지음 백범김구 평전
                                 사형수 死刑囚

  감옥 안뜰 포석 위로 내 마음 모는 바람
나뭇가지 걸리인 채 흐느끼며 우는 천사
대리석에 칭칭 감긴 하늘나라 둥근기둥
니의밤에 찾아와서 구원의 문 열어주네

죽어가는 가여운 새 다타버린 재의 향취
담장위에 잠든 듯한 눈망울에 담긴추억
하늘 나라  위협하는 고통스런 그 주먹손
니의 손에 찾아와서 그대얼굴 내려주네

가면박 가비얍고 탈보다도 강한얼굴
장물아비 손보다도 나의 손에 더 무거운
그 얼굴에 지닌 보석 온통 눈물 범벅되어
어둡고도 강렬하게 청 꽃다발 투구 썼네.

  ( 7 장주네, '사형수' 오세곤 역, 앞 부분.)  

 사르트르가 거침없이 '악의 성자'라 부르고, 장 콕토는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장 주네는 사형선고를 받고 옥중에서 장시 '사형수'를 썼다.
   

창수는 몇 차례 신문이 끝나고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가 넣어준 '대학'을 읽었다. 또 감리서 직원 중에서 신서적들을 읽어보라면서 구해다 주어 열심히 읽었다.
   

사형수 김창수는 감옥에서 신서적을 접하면서 새롭게 인식을 전환 했다. 그런의미에서 '치하포 사건'은 창수에ㅔ게 두가지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황해도 동학의 '애기접주'에서 전국적인 의열 청년으로 발돋움하고, 신서적을 통해 척양척왜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왜놈 한 놈이라도 때려 죽여야 우리가 산다"는 신념은


 "저마다 배우고 사람마다 가르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 한 것이다" 라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전통적인 주자학 인식범위를 넘어 열린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점은 백범에게 또 하나의 사상적 비약을 예비하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즉 백범은 유학, 동학, 불교등 동양적, 한국적 사상을 기초로 하면서도 배타적, 복고적 세계에 침윤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공화주의적 안목으로 나아가게 된다."(8 도진순, "민족의 큰 스승 백범김구-치하포 사건", 문화일보,1995, 8,25)
   

창수는 어떤 판결이 내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형편에서도 ''대학"을 비롯하여 젊은 관리들이 넣어준 "태서신사 泰西新史" "세계역사 世界歷史 - 지지 地誌"등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자신의 변화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감옥안에 있는 죄수들에게 틈틈이 글을 가르쳐 주기도하고 억울한 죄수들의 소장 訴狀을 대필해 주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황성신문"은  "인천 감옥이 아니라 학교가 되었다"는 보도를 하였다.
   

창수는 7월 27일자 '황성신문"에서 자신의 사형집행  기사를 읽었다. 다른 살인범, 강도범과 함께 처형한다는 것이다. 사형 집행 소식을 알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위선일까.
   

어찌된 일인지 내 마음은 조금도 경동 驚動되지 않았다. 교수대에 오를 시간이 반일 半日밖에 남지 않았지만, 음식과 독서와 사람 만나는 일을 평상시처럼 하였다. 그것은 고 선생 말씀 중에 박태보 보습 단근질 일화가 있었는데, 그는 보습으로 단근질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굴하지않고 오히려 '이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너라'고 했다 그 일화와 더불어 삼학사 三學士 에 관한 이야기를 힘있게 들었는데, 그 효험으로 안다.("백범일지")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예정 시간을 반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각에 박태보와 삼학사를 생각하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대학"을 읽고 있었다는 창수는 확실히 비범한 청년이었다. 이런 창수를 지켜 본 어머니와 관헌, 면회를 온 사람들이 애통해하며 혹시나 소식(사형 집행)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가 하고 의아해 할 정도였다.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 직전에 황제의 특사로 풀려난 도스토에프스키는 소설 '백치 白痴"에서 말한다. "선고문이 낭독되면 이젠 도저히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에 무서운 고통이 있읍니다. 이보다 더 혹독한 고통은 다시없을 것입니다."
   

제인 그레이 후작부인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주장을 하다가 화형대에 올라죽은 리를리 사교는 타오르는 연기속에서 "불꽃이 내 몸에 다헤 해 다오.
탈수가 없구나. 주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원하면서 죽었다.
   

영국인 리더퍼드 윌리암스는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형이 집행되는 날, 그는 조금도 겁내지않고 뚜벅뚜벅 처형장을 향하여 걸어갔고, 다시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며 제손으로 목에다 밧줄을 걸 것을 소망했다. 소원이 받아들여지자 그는 조금도 주저함이없이 목에다 밧줄을 걸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까뮤는 "절망이 순수한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사형선고를 받은경우이다." 라는 역설을 제기하였지만, 누구라도 사형선고를 받고 죽임을 기다릴 때는 평상심을 잃게 될것이다.
   

창수는 신문 기사를 읽고도 아무런 동요도없이 운명의 시간을 가다렸다. 저녁때가 되어 식사가 들어오기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저녁 6시경이 되어 밖이 떠들석하며 인기척이 들려왔다. 다른 방 죄수드릉 미치 자기가 죽으러가는 것처럼 겁에질려 있을 때,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사태를 완전히 반전시키고 말았다. 고종 황제의 사형 집행 정지령이 내려진 것이다. 사형 직전에 운명이 역전된 도스토에프스키처럼 창수도 그랬다.
   

감옥문이 열리기도 전에 감옥 뜰에서,
   "김창수는 어느 방에 있소? 아이고, 이제 김창수는 살았소! 


우리영감과 감리서 전직원과 각 청사직원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밥 한술 먹지 못하고 창수를 어찌 차마 우리 손으로 죽인단 말이냐고 서로 말없이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탄하였소. 그랬더니 대군주 폐하께옵서 대궐에서 전화로 감리영감을 불러 계시옵고, 감리 영감은 김창수의 사형을 정지하라는 친칙 親則을 받잡고 밤중에라도 감옥에 내려가 창수에게 알려주라는 분부를 내리셨소. 오늘하루 얼마나 상심하셨소?"("백범일지")하는 것이다.
  

 맹자는 말했다. "하늘은 그 사명이 끝나지 않은 사람을 함부로 데려가지 않는다"고, 하늘의 뜻이었는지, 역사의 의지였는지 창수는 죽지않고 살아났다. 훗날 드러난 바는 이렇다. 법무대신이 몇몇 사형수의 이름을 갖고 입궐하여 황제의 재가를 받았는데, 당시 입직중이던 승지가 창수의 죄명이 '국모보수 國母報讐'(국모의 원수를 갚기위해)란 구절을 보고 이상히여겨 이미 재가된 안건을 다시 황제에게 품신하여 "사형 집행 정지"의 어명이 내리게 된 것이다.
  

 승지의 눈에 '"국모보수"의 죄명이 눈에 띄게 된 것도 극적이지만, 서울과 인천간 공공기관에 전화가 가설된 바로 직후였고, 창수의 사형집행 수시간전에 인천감옥에도 전화가 가설되어, 황제가 감리(이재정)에게 바로 명령한 것 역시 극적이었다. 반전과 극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창수는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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