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진 - 칠갑산 백범김구 평전
09/07/201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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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병선 - 칠갑산    백범김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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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시련, 첫 투옥 - 김삼응 교수 지음 백범 김구 평전
 
2003년 10월 20일 오전 대한민국 국회, 이날 국회 과거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위원회는 '"일제 강점하 친일 반 민족행위자 진상규명에관한 특별법안'" 공청회를 열고있었다. 1949년 반민특위가 해체된 이에 친일파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의 특별법 제정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공청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적지않았다. 이날 공청회의 진술인으로나온 김완섭 "친일파를 위한 변명 저자"은 "김구는 민비의 원수를 갚는다면서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피한 조선왕조의 충견이다. 이 같은 자들에 의해 주도된 독립운동은 조선 백성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지배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였음이 분명하다"라고 백범의 '치하포 사건'을 비난하다가 참석한 방청인들로부터 심한 성토를 당하고 쫓겨난 적이있었다.
  

 인천 감옥에 갇힌 창수는 신문하는 감리사 이재정 李在正에게 왜인 장교 살해의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나  김창수는 하향 下鄕 일개 잔생 殘生이언마는 백성의 의리로 국가가 수치를 당하고, 청천 백일하에 내 그림자가 부끄러워서 왜구 한놈이라도 죽였소. 그러나 우리 사람으로서 아직 왜왕을 죽여 국모폐하의 원수를 갚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소. 이제보니 당신네가 몽백(夢白,국상으로 백립을 쓰고 소복을 입었다는 말)을 하였으니 춘추대의에 군부 君父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는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을 잊어버리고 한갖 영귀 榮貴와 총록 叢錄을 도적질하려는 더러운 마음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말이오?"백범일지"
   

창수의 치하포 의거는 국모 시해에 대한 보복이고 응징이었다.
   "21세 청년의 이러한 말에 감리사는 한참동안 말을 못했고 배석했던 관원들도 얼굴을 붉히고 더러는 고개를 숙였다. 이때부터 김구는 옥중의 왕 王이 되었다.(손세일 , 이승만과 김구,일조각)
   

인천 감옥은 불결하기 그지없었다. 여름이라 악취까지 심하여 창수는 옥중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다른죄수들이 모두 잠든틈을 타서 이마위에 손톱으로 '충' 忠자를 새기고 허리띠로 목을 졸라 질식하고 말았다. 자살을 시도했으나 숨이 끊어진 것이 아니고 얼마후에 깨어난 것이다. 그 후로는 여러사람이 주시하여 자살할 기희도 없었지만 창수는 스스로 병으로 죽거나 원수가 자신을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살을 하지는 않으리라고 결심하였다.
  

 어머니는 창수가 옥에 갇힌 후 인천의 물상객주 집에서 아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넣어준다는 조건으로 식모살이를 하면서 끼니마다 식사를 차입해 주었다. 그러나 창수는 전혀 음식을 먹지못해 탈진한 상태에서 8월 31일 옥사정에게 업혀 경무청으로 가서 신문 訊問을 받았다.
   

창수는 자신을 도적으로 위급하여 다른 잡범들처럼 차꼬( 着錮 2개의 토막나무 틈에 가로구멍을 파서 죄인의 두 발목을 그 구멍에 넣고 잠을쇠를 채우는 형구)에 채워 가두는데 크게 분개하여,
  

 "내가 아무 의사도 발표하기 전에는 나를 강도로 대우하거나 무엇으로 대우하거나 잠자코 있었지만, 이제 내가 할 말을 다한 지금도 나를 이렇게 홀대한단 말인가. 내가 당초에 도망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 왜놈을 죽인 자리에서 내 주소와 성명을 갖추어서 포고문을 붙이고 집에와서 석달이나 잡으러 오기를 기다렸겠는냐. 너희관리들은 왜놈을 기쁘게 하기위하여 내게 이런 나쁜 대우를 한단말이냐"고 호통을 쳤다.
  

 이런 소동에 경무관이 달려와 창수를 도적취급한 데 대해 옥사정을 책망하고 즉시 다른방으로 옮기도록 하고 차꼬도 풀어주었다. 이후 창수는 특별대우를 받게되었다.
   

두 번째 신문날 부터 옥문 밖과 주변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창수의 신문 때에 한 발언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의거를 존경한다는 면회객이 줄을 이었다. 김윤정 경무관이 어머니에게 보약을 사먹이라고 돈을 보낸 것을 비롯하여 어머니가 일하는 집 주인, 무명인들까지 음식을 차입시켰다. 이 덕택으로 다른 죄수들이 배불리 먹게 되어 창수는 '감옥의 왕'이 되었다.
  

 "네가 안약 치하포에서 모월모일 일본인을 살해하였느냐?"
  
 "내가 그날 그곳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기위해 왜구 한명을 때려죽인 사실이있다."
  

 창수의 대답을들은 경무관을 비롯한 신문관들은 묵묵히 서로를 쳐다보았고 법정안은 조용해졌다. 창수는 옆자리에 앉아서 신문과정을 감시하고있는 와타나베라는 일본 순사를 향해
 
 "이놈! 지금 소위 만국공법이나, 국제공법 어디에 국가 간에 통상, 화친조약을 체결한 후 그 나라 임금을 시해하라는 조문이 있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회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하였느냐?
 
내가 죽으면 귀신이되어서, 살면 몸으로 네 임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없이 다 죽여 우리 국가의 치욕을 씻으리라"고 통렬히 꾸짖었다.
   

창수의 호통에 놀란 와타나베는 "칙소우! 칙소우!"하고 도망하여 숨고 말았다. '칙소우'는 '빌어먹을' '개자식'라는 뜻의 일본 욕이다.
   

심문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한인 신문관들은 창수에게 호의적이었다. 김윤정은 창수곁을 지나가면서 오늘도 왜놈이 왔으니 더 힘껏 호령하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관헌들이나 민중들이 직접 일본에 드러내놓고 대항할 수는 없었으나 자신들의 울분을 대변하여 처항하는 창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일본 영사관에서는 창수에게 수감을 채우든지 포승으로 얽는 사진을 찍겠다고 나섰다. 한인 관리들이 이를 거부하여 길에 앉아 사진을 찍게 되었다. 수많은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이때 창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분, 왜놈들이 우리 국모 민 중전을 죽였으니 우리에게 이런 수치와 원한이 어디있겠소. 왜놈의 독이 궐내에만 그칠 줄아시오?
 
바로 당신들의 아들과 딸이 필경은 왜놈의 손에 다 죽을 것이오. 그러니 여러분! 당신들도 나를본받아서 왜놈들을 죽여야 우리가 사오! 하고 일장연설을 하였다. 젊은 창수의 굽힐 줄모르는 반일 투혼을 여실히 보여준 대목이었다.
   

신문을 마치고 다시 감옥에 들어와 김윤정에게 아무 죄없는 이화보를 석방해줄 것을 요청하여, 그는 곧 석방되었다 이화보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창수를  찾아 고마음을 잊지 않았다.
   
일본의 영사대리는, 김창수는 大明律의 '인명모살죄' 人命謀殺罪에 의해 참형을 원한다는 전문을 인천항 재판소에 보냈다. 일본은 창수를 죽이기위해 한국정부에 여러가지압력을 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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