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평전 국모시해에 대한 보복 - Try to remember
09/06/20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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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y to remember - Andy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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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모 시해에 대한 보복 - 김삼응 지음 백범김구 평전
     
청계동을 따난 창수는 평양을 거쳐 안주에 도착하였다. 가는 곳마다 단발령과 의병봉기로 민심이 심히 어지러웠다. 이 때는 단발령과 의병봉기로 반일감정이 높아져 어수선한 틈을 타서 이범진 李範晉, 이완용 등 친러파가 러시아공사 베베르와 짜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던 고종과 황세자를 비밀리에 서울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 아관파천 俄館播遷으로 친일 내각이 무너지고 박정양을 수상으로하는 친러파 정권이 수립되어 단발령 조치가 철폐되고 '의병해산조칙'이 발표되었다. 
   

창수는 이렇게 변하는 정세를 살피면서 청국으로 가는 것보다 본국에 머물러 정세를 관망하기로 하고, 발길을 되돌려 용강를 거쳐 안악으로 가던도중 대동강 하류의 치하포를 건너게 되었다.
   

이 차하포에서 두 가지 큰 사건이 벌어졌다.
   아직 2월 하순경이라 치하포에는 많은 얼음덩이가 떠내려오고 있었다. 창수를 비롯한 남녀 15~16명을 태운 나룻배는 빙산에 걸려 갈 길을 잃고 떠다니게 되었다. 선객과 선원들은 추운 날씨에 사색이되어 불안에 떨었다. 창수는 위기를 벗어나게 위해 일행에게 허둥대지말고 힘을 합하자고 제의하면서 큰 빙산위에 뛰어올라 작은 빙산을 밀어내어 간신히 활로를 열어서 무사히 치하포에서 오리쯤 내려간 지점에 당도하였다. 용기와 지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흔히 '차하포 사건'으로 불리는 일본인 스치다 살해사건은 백범의 생애와 사상에 큰 전기를 가져다 주었다. 빙산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새벽길을 걸어 주막에 도착하니 풍랑에 뱃길이 막힌 길손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 중 수상한 사람이 창수의 눈에 띄었다. 자신은 황해도 사는 정씨라고 하였다. 말씨는 장연 사투리가 아니고 서울말이었으며 조선말에는 능숙하였지만 창수가 보기에는 분명 왜놈이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두루마기 밑으로 군도 軍刀 집이 보였다. 가는길을 물으니 진남포로 간다고 하였다.
   

창수는 '보통 장사꾼이나 기술자 같으면 굳이 조선 사람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그렇다면 혹시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 고로 三浦梧樓가 아닐까? 미우라가 아니더라도 미우라 공범일 것 같다. 여하튼 칼을차고 숨어다니는 왜인이 우리나라의 독버섯인것은 분명한 사실, 저놈을 죽여서라도 국가의 치욕을 씻어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무리 국모의 원수라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 더욱이 왜인은 칼을 차고 있고, 일행이 몇 명인지도 알 수없는 상황이었다. 심신이 혼란한 상태에 빠지고 갈등이 겹칠 때 홀연히 고능선 선생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得樹攀枝無奇        가지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縣崖撤手丈夫兒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마침내 백범의 생애에 가장 드러마틱한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왜인의 종자인 듯한 밥값을 계산하는 것을 지키보고있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이놈!" 하고 크게 호령하여 그 왜놈을 발길로차서 계단밑으로 떨어뜨렸다. 소란에놀란 사람들이 일제히 방문을 열고 내다보거나 몰려오고있었다. 창수는 이들을 향해 "누구든 이 왜놈을 위해 감히 나에게 범접하는 놈은 모조리 죽일 터이니 그리알아라"하고 소리를 지르며 그 왜놈의 목을 눌렀다. 왜놈은 어느새 칼을 뽑아 휘둘렀다. 창수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창수는 땅에 떨어진 칼을 집어 왜놈의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난도질했다. 손으로 왜놈의 피를 움켜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아까 왜놈을 위하여 내게 달려들려고 한 놈이 누구냐?"
   창수는 벌벌 떨며 용서를 구하는 길손들을 용서하고 주막주인 이화보 李和甫에게 왜인이 타고온 배에서 그 자의 소지품을 갖고 오도록 명령하였다. 선원들이 가져온 소지품을 조사해보니 죽은 왜인은 스치다란 자로서 직위는 일본 육군 중위였다. 가진돈이 엽저 800냥 남짓되어, 이화보에게 그 돈으로 뱃삯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동네 극빈한 집에 나눠주도록 하였다. 
   

규장각 자료에는 창수가 75냥으로 타고갈 당나귀를 구입하고, 나머지 800냥은 나중에 일본경찰에 의해 거의 전액 희수되었다.
   

창수는 이화보에게 "왜놈들은 우리 조선의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생물의 원수니, 바다속에 던져서 물고기와 자라들까지 즐겁게 뜯어먹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그에게 필구를 갖고오게하여 "국모보수 國母報讐의 목적으로 이 왜인을 죽였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라고 포고문을 써서 길거리에 붙이도록 하였다.
   

아울러 이화보에게 "네가 동장이니 안악 군수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라. 나는 내 집으로돌아가서 연락을 기다리겠다. 왜놈의 칼은 내가 가지고 가겠다."고 말하고 태연자약하게 동네사람 수백 명이 쳐다보는 사이를지나 귀로에 올랐다.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님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보고하자 피신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창수는 왜놈을 죽인 것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한 일이 아니라 국가적인 수치를 씻기 위해 행한일이니 정정당당하게 대처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거둡피신을 권하자,
  

 "나는 나라를 위하여 정당한 일을 한 것이니 비겁하게 피하기를 원치 않을 뿐더러, 내가 잡혀가 목이 떨어지더라도 이로서 만인에게 교훈을 준다하면 죽어도 영광"이라 말하며 오히려 잡히기를 원했다.
  

 뒤늦게 신고로 평양주재 일본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조사했지만 시체는 찾지는 못하고 용의자와 현장목격자 등 7명을 체포하여 신문하였다. 일본공사는 여러차례에 걸쳐 해주부에 이 사건을 조희하였고, 이에 응해 외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박정양 등은 김창수를 조속히 체포해 법부로 압송할 것을 지시하였다. 치하포 사건은 한일간의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석 달이 지난 5월 11일 새벽 창수는 순검과 사령 30여 명에 의해 체포되어 13일 해주옥에 수감되었다. 옥에 갇힌 지 한 달이 지난 후 옥에 큰 칼을 쓴 채 선화당 뜰에 끌려가 감리 監吏 민영철에게 첫 신문을 받게 되었다. 가혹한 고문으로 정강이 살이 터지고 뼈가 하얗게 드러났다. 이 때의 상처는 매우 깊어서 훗날까지도 흉터가 남게되었다.
  

 기절을 하면 냉수르 끼얹고 다시 고문을 하기를 되풀이해도 창수는 끝내 협의를 부인했다. 서울에 가기 전까지는 왜인을 죽인 사실을 밝히지 않을 작정이었다. 두 달이 지난 7월 초순 인천 감영으로 후송되었다. 아버지는 가산을 정리하여 옥바라지를 하고자 집으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끌려가는 아들의 뒤를 따랐다.
  

 이튿날 나진포로 가는도중 어느무덤옆에 쉬게 되었는데, 그 무덤에는 "효자---이창매지묘"라 쓰인 비석이 있었고 비석 뒤에는 그 사적이 새겨져 있었다. 효심이 남달랐던 창수는 효도는커녕 끌려가는 자신을 허둥지둥 따라오시는 어머니에 대한 송구스러움에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인천으로 가기 위해 나진포에서 배를 탔다. 캄캄한 밤, 호송하던 순검들이 잠이든 틈에 어머니는 창수에게 "네가 이제 가서는 왜놈 손에 죽을 터이니 차라리 맑고 맑은 이 바다에 나와 같이 죽어서 귀신이라도 모자가 같이다니자"라고 말씀하시고는 창수의 손을 이끌고 뱃전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품을 느끼면서 창수는 어머니를 위안하였다. "어머니 저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자식이 국가를 위하여 하늘에 사무치게 정성을 다하여 원수를 죽였으니 하늘이 도우실 테지요. 자식은 죽지않습니다."
   

창수가 인천 감옥에 수감된 것은 1896년 7월 26일이다. 처음에 갇힐 때는 일반도적으로 취급되어 9명이 갇힌 방에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치하포 주막집 주인 이화보를 만났는데 그는 한 달 전에 살인범을 놓아 보냈다는 이유로 잡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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