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달 - 문희숙 (1929 이정숙) - 백범김구 평전
09/02/201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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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달 -문희숙 (1929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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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국행, 북행견문과 의병단 활동 - 김삼응 지음 백범김구 평전
  
 창수의나이 스무 살이 되었다. 조선초기 연소기 年少氣한 남이 南怡장군이 "남아이십미평국 男兒二十未平國이면 후세수칭대장부 後世誰稱大丈夫"라는 싯구를 읊었다가 유자광이란 놈이 평 平자를 득 得자로고쳐 역모로몰아 때려죽였다는 사력을 아느지 모르느지, 수무 살이 된 창수는 청국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갈등인들 왜 없었을까. 출국에 앞서 창수는 스승께 물었다. "저와같이 어린것이 한 사람(청국으로)간다고 해서 무슨 일이 되겠읍니까?" 스승이 말하가를 "누구나 제가 옳다고 믿는것을 혼자만이라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니 저마다 남이 하기를 바랄것이 아니라 저마다 제 일을 하면 자연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정계에 또 어떤 사람은 학계나 상계에 이처럼 자기가 합당한 방면으로 활동하여서  그 결과가 모이면 큰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떠나기 전에 안 진사에게 출국사실을 알릴까를 두고 고심을 한다. 안태훈은 그때 천주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고 선생은 후일 큰일을 도모할 때에 알려도 된다는 의견이었다. 청국으로 떠나기로 작정하고 마지막으로 안 진사를 한번 보고 속으로라도 하직인사를 드리려고 안 진사댁사랑에 갔다가 참빗장수 김형진을 만났다. 그는 보통 장사꾼이 아니었다. 전주 사람으로 척양척왜를 실천하고자 전국을 주유하다가 안 진사가 대문장가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한다. 나이는 창수보다 15살 위였다. 그를 길동무로 삼기로하고 집에서 기르던 말 한필을 팔아 여비를 만들어 청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평양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창수도 김형진처럼 참빗과 황아장수로 차리고는 참빗과 붓, 먹과 기타 산골에서 팔릴만한 물건을 사서 한 짐씩 짊어졌다. 두 사람은 백두산을 보고 동삼성(만주)을 돌아서 북경까지 갈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평양을 떠나서 을밀대와 모란봉을 구경하고 강동, 양덕, 맹산을 거쳐 함경도로 넘어서서 고원, 정평을 지나 함흥에 도착하였다. 고원 함관령에서 이태조 李太祖가 말갈을 쳐물린 승전비를 보고, 함흥에서는 남대천 나무다리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장승도 보았다.
  

 함경도의 흥원, 북청을 지나고 단천 마운령을 넘어 갑산읍을 거쳐 혜산진에 이르렀다. 혜산진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를 바라보는 곳, 즉 이곳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이 되는 백두산 밑에 있어 예로부터 나라에서 제관을 보내 하늘과 백두산 신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험산준령으로 삼림이 우거지고 만주 향마적이 출몰한다고 만류하여 백두산 참례를 포기하고 서대령을 넘어 삼수, 장진, 후창을 거쳐 중국땅인 마울산에 도달하였다.


두 사람은 통화, 환인, 관전, 임강 등지를 방랑하며 금방에 사는 조선동포들에게 고국의 소식을 들려주고 관전에 있는 임경업 林慶業장군의 비석을 보고 조상의 기개를 바음속으로 새기기도 하였다.
  

 임 장군의 비문에는 '三國忠臣林慶業之碑' 삼국충신임경업의 비 라고 새겨져있었다. 근처에사는 중국인들 중 병든 사람이있으면 이 비각에와서 낫게 해 달라고 비는 풍속이 있다고 하였다. "임경업은 철저한 친명배청 親明排淸 정신으로 일관하다가 명나라와 내통하였다는 죄명으로 인조의 친국을 받고 죽었다. 백범의 선조인 김자점은 임경업의 후원자였으나, 마지막에는 자신이 연루될까봐 죽일것을 주장하였다"고 하는 바대로, 창수가 임경업 장군의 비석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창수 일행이 청국행 길에서 가장 가슴아프게 느낀 일은 갑오년 난리(청일전쟁)를 피해 중국인들도 살지않는 산속 험한 곳에서 화전을 일구고 사는 우리 동포들을 갈취하는 호통사 胡通辭들이었다. 그들은 조선사람으로 중국어 몇 마디 배워가지고 중국 사람들에게 빌붙어서 동포들을 갈취해 먹고사는 자들이었다.
  

 두 사람은 이 지방을 지나면서 김이언 金利彦이란 사람의 소문을 듣게되었다. 그는 힘과 용기가  남달리 뛰어나고 학식도 풍부하여 심양지사가 瀋陽刺史가 그의 용력을 높이사서 준마 한 필과 "삼국지 三國志한 짐을 주었고, 청나라 고급 장교들에게도 융숭한 대우를 받고있다고 하였다.
  

 "자사는 중국의 지방관리로 주 州의 지사 知事에 해당하지만, 당시에 이지역에 자사라는 관직은 없었다. 그런데 당시 심양지역에서는 연왕 燕王 의극당아 依克唐阿가 유력자로반일운동을 후원하였다. "노정약기 路程略記"(김형진 지음)에 따르면 김창수, 김형진 등은 중국의 힘을 빌리기위해 연왕에게 상소를 올렸고, 연왕은 서경장과 의논하여 이들에게 진동참의사라는 직위를 주고 지원을 약속하였다"라고하여 김형진은 "백범일지와는 달리쓰고 있다.5(도진순 주해, '백범 일지' 돌베개)
  

 두 사람은 김이언을 찾아 보기로 하고 헤어져 다니면서 결국 그의 비밀 주소를 알아내개 되었다. 김이언은 강계군에서 80여리 더 가서 압록강건너 삼도구 三道構라는 곳에 살고 있다고 하였다.   
   

김이언을 찾아갈 때는 두 사람이 같이 가는 것보다 서로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따로 가기로 하였다. 김이언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그가 정말 의병을 거사할 뜻이 있는지를 관찰하자는 것이었다. 김형진이 먼저 출발하고 창수는 며칠 후 떠났다. 길을 가던중 하루는 압록강을 100여 리 앞둔 곳에서 청나라 무관을 만났다.
   

창수는 청나라말을 알지못하여 항상 품안에 '취지서' 한장을 써서 간직하고 다녔다. 어쩌다가 청나라 사람가운데 문자를 아는사람을 만나면 그 취지서를 내보이곤ㄴ 했다. 그런데 그 무관은 글을 채 읽기도 전에 갑자기 길바닥에 주저앉더니 엉엉 소리내어 우는 것이었다. 창수가 놀라서 이유를 물었더니 무관은 글 가운데,

      "통탄할 바, 왜적은 나와 함께 같은 세상에 살 수 없는 원수이다."
                痛彼倭敵與我 不共載天之讐

라는 구절을 가르키며, 다시 창수를 붙들고 통곡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필담을 하여 알아본 즉, 그 사람은 청일전쟁에서 전사한 서옥생 徐玉生의 아들로서 강계 관찰사에게 부탁하여 부친의 시체를 찾아 헤메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자기부친은 가병 1000명을 인솔하고 출전하여 모두 전사하고 자기 집에는 아직 500명이 남아 집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창수는 자기 집으로 함께 가자는 군관의 호의를 물리치고 대엿새 후 삼도구에 도착하여 김이언을 만났다.
   

김이언은 의병운동의 수령이되어 많은 의병을 모집하였다. 압록강을 사이에도고 초산, 강계, 위원, 벽동 등에서 몰래 포수를 모집하였고 청나라 쪽 강 근처 일대에서 이줌민 포수를 모집하여 그 수가 300여 명에 이르렀다.
    

김이언의 의병부대에 두 사람도 창여하였다. 김이언은 당시 50여 세로 500근이나 되는 대포를 들 수있을 정도의 장사였으나, 창수의 눈에는 결단력이 부족하고 남의의견을 수용하지않는 독선적인 인물로 보였다. 그 사이에 창수는  비밀리에 강계성에 들어가서 화약을 매입하고 초산, 위원 등지에 잠입하여 포수를 모집하는 등 거병에 여러가지 힘을 보탰다.
   

거사 날짜는 1895년 11월 초순으로 잡혔다. 압록강이 얼어붙어 있을 때 삼도구에서 행군하여 강계성까지 처들어간다는 전략이었다. 이 무렵 창수는 혼자서 삼도구를 다녀오다가 그만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얇은 얼음을 밟았다가 강 속에 빠진 것이다. 익사직전에 고함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이 나와서 자기집으로 끌고가 구호하여 살아났다.
   

강계성 공격날이 다가오자 김이언 의병부대는 먼저 고산리를 쳐서 그곳의 무기를 빼앗아 무기없는 군사에 나누어 주었다. 이 작전은 강계성 수비를 엄중하게 할 것이라는 이유로 창수와 여러참모들이  먼저 강계성을 칠 것을 건의했지만 김이언은 끝내 자기고집을 내세워서 실행한 것인데 결과는 실책이었다.
   

두 번째 전략도 김이언은 자기 고집대로 밀어붙였다. 창수가 강계성을 공격할 때 군사 중 몇명을 청국군 장교로 위장시켜 선두에 세울것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되었다. 김이언 부대가 강계로 진군할 때 강계성 장교 몇 명이 마주나와 김이언을 찾아 군사들에 청군이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이언이 이번에는 청군이 안 왔으나 강계성만 점령하면 청군도 호응할 것이라고 전직하게 대답하였다. 청군이 합세하지 않은 것을 간파한 강계성 장교들은 일제히 화승총을 발사하여 의병단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패주하고 말았다. 강계성을 지키고있던 병사들은 청군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사기백배하여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김이언의 독선과 재기할 능력이 없음을 간파한 두 사람은 그 길로 부대를 떠났다. 창수의 두 번째 의병전쟁도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끝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잠시 강계성 부근에서 몸을 피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하고 한 촌락으로 들어갔다. 이때 참으로 유머러스한 일이 벌어졌다. 한 마을이 전부  피난을 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다음은 도진순 교수의 주해"백범 일지"를 인용한 것이다.)

   
한 집에 들어가니 집 바깥문이나 안문이나 다열어둔채였으나, 주인을 불러봐야 역시 한 사람도 없는 빈집이었다. 안방에 들어가니 방구석 화덕에 불이피어 일렁일렁하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우선 화덕 옆에 앉아 손발을 녹였다.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 방안 가득히 기름냄새와 술 냄새가 났다. 시령위에 광주리를 꺼내보니 온갖 고기가 가득했다. 우선 닭다리와 돼지갈비를 숯불에 쪼여 먹고있는데, 백두건을 쓴 사람이 문을 가만히 열고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거짓 책망을 했다.
  

 "웬 사람인데 야반에 남의 집을 묻지도않고 침입하는가?"
   그 사람이 놀라고 두려운 빛을 띠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것은 내 집인데요."
   "누가 주인이든지 이렇게 눈 오는 밤인데 들어와 몸이나 녹이시요."
   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는 물었다.
   

"그대가 이집 주인아라면 집을 비우고 어디를 갔던 게요? 내가 보기에 주인같이 보이지는 않으나 추울 터이니 여기와서 고기나 자시요." 그 사람도 하도 어이가 없어 이야기를 한다.
   "오늘이 내 어머님 대상이비니다. 각처에서 조객이 와서 제사를 지내려는데, 갑자기 동구에서 포성이 진동하지 않겠읍니까? 조객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나도 식구들을 산속으로 피신시켜두고 잠시왔던 길이요."
  

 나는 한편으로 실례했다고 말하고 한편으로는 위로를 했다.
   "우리도 장사차 성내에 왔는데, 당도하자마자 난리가났다고 소동하기로 촌으로 피난을 나온 것이오, 와서보니 당신 집문이 열려있기로 들어왔고 들어와보니 음식물이 있기로 요기를 하던 중이오, 난리때라 이런일도 있는 법이니 용서하시오."
   

주인은 그제야 안심을 했다. 나는 주인을 권하여 산속에 피하여 숨은 식구들을 다시들어오게 하라고 일렀다. 주인은 겁이나서 말했다.
   "지금도보니 동구밖에 군대가 밀려가던데요."
   "군대가 무슨 일로 출발하는지 들으셨소?"
   "강 건너 쪽에서 의병이 밀려와 강계를 치려다가 군대에게 몰려간다고 합디다. 그렇지만 멀리서 자꾸 포성이 들리니 알 수 있습니까? 승부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의병이 오나 군대가 오나 촌사람들에게야 무슨 관계가 있겠소?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이 눈 속에서 밤을 지내다가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속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
   주인은 오히려 자기집을 우리에게 부탁하였다.
   "내 집 식구뿐 아니라 온 마을이 거의 다 산위에서 밤을 보낼 준비를 하였으니, 손님은 과히염려마시고 이왕 내 집에 오셨으니 집이나 자켜주시오. 나는 산에있는 식구들을 가서 보고 오라라."
   

 '주객전도' 主客顚倒란 이런 때에 쓰이는 말일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출발하여 수일만에 신천으로 돌아왔다. 청계동을 떠난 지 수개월 만이었다.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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