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희망가 --- 백범김구 평전
08/30/201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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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현미 -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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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운동과 구국활동 - 김삼응 지음 백범김구 평전
   
몽금포에서 석 달을 숨어 지내던 창수는 정씨와 텃골에가서 부모님을 찾아뵙고 정씨의 의견대로 안 진사를 찾아 위탁하기로 하였다. 창수는 패군지장 敗軍之將으로 적군이었던 안 진사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였으나, 정씨는 안 진사의 높은 인품과 그가 밀사를 보낸 것도 이런 경우를 당하면 자기에게 오라는 뜻일 것이라고 설득하여 그의 말을 따르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청계동 안 진사 댁을 찾아 그곳에 의탁하면서  안 진사의 배려로 텃골에 계시는 부모님까지 모셔오게 되었다.  창수가 20세 되던 1895년 2월의 일이었다. 창수는 이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청계동에 머믄 것은 불과 4~5개월이었지만, 그 동안은 내게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것은 첫째로는 내가 안 진사와 같은 큰 인격에 접한 것이요, 둘째로는 고산림 高山林, (마을 사람들은 고능선을 '고산림 선생' 이라고 불렀다.) 과 같은 의기있는 학자의 훈도를 받게 된 것이었다. ('백범일지') 창수는 자신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안 진사와 고능선 高能善을 만나게 된 과정을 다음과같이 기술했다.
  


 안 진사는 해주 부중에 10여대나 살아오던 구가의 자제였다. 그 조부 인수가 진해 현감을 지내고는 세상이 차차 어지러워짐을 보고 세상에서 몸을 숨기고자 하여, 많은 재산을 가난한 일가에게 나누어주고 약 300석 추수하는 재산을 가지고 청계동으로 들어오니 이는 산천이 수려하고 족히 피난처가 될 만한 곳을 위함이었다.


 이때는 장손인 중근이 두 살 때였다. 안진사는 과거를 하려고 서울 김종한의 문객이되어 다년 유경하다가 진사가되고는 벼슬할 뜻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형제 여섯사람이 술과 시로 세월을 보내고 뜻있는 벗을 사귀기로 난을 삼고 있었다. 안씨 6형제가 다 문장 재사 文章才士라 할 만하지마는 그 중에서도 세째인 안 진사가 눈에 정기가 있어 사람을 누르는 힘이있고 기상이 뇌락하여 비록 조정의  대관이라도 그와 면대하면 자연 경외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내가 보기에도 퍽 소탈하여서 비록 무식한 하류들에게 까지도 조금도 교만한  빛이없어 친절하고 정중하여서 상류나 하류나 호감을 가졌다. 얼굴이 매우청수하나 술이 과하여 코끝이 붉은 것이 흠이었다. 그는 율시 律詩를 잘하여서 당시에도 그의 시가 많이 전송되였고 내게도 그가 득의의 작을 흥 있게 읊어 주는 일이있었다. 안중근 형제와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인상에 대해서도 소상히 적었다.
   


그때에 안 진사의 맏아들 중근은 열세살로 상투를 짜고 있었는데 머리를 자주색 수건으로 질끈 동이고 동방총이라는 짧은 총을메고 날마다 사냥을 일삼고 있어, 보기에도 영기가 발발하고 청계동 군사들 중에 사격술이 제일이어서 짐승이나 새나 그가 겨눈 것은 놓치는 일이 없기로 유명하였다. 그의 계부 태건과 언제나 함께 사냥을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잡아오는 노루와 고라니로는 군사들을 먹이고 또 진사 6형제의 주연의 안주를 삼았다. 진사의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글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도 하였으나 종근에 대해서는 아무 간섭도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백범이 제대로 지켜 본 대로 안중근은 그로부터 18년 후 하얼빈에서 국적 國賊 이토 히로부미에게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키고, 이토를 수행하던 가와카미 하얼빈 총영사와 모리미야우지 대신 비서관, 다나카 만철 이사등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격술을 과시한다. 안중근의 사격술은 어릴 적부터 익혀온 것이었음을 알 수있다.
   


창수는 안 진사 댁에서 후조 後凋 고능선 선생을 만나게 된다. 고능선은 해서지대에서는 손꼽히는 학자이며 의기가 넘치는 이름높은 선비였다. 안 진사의 초청으로 청계동에 와 살고 있었다.
    


고능선은 창수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자기 사랑으로 초청하였다. 그가 거처하는 방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창수는 매일 선생을 찾아가 세상사를 이야기하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선생은 창수에게 고금의 위인을 비평해 주거나 자기가 연구한 학문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화서아언 華西雅言"이나 "주서백선 朱書百選"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깨우쳐 주었다. 선생이 특히 역설한 것은 '의리'에 관해서다. "비록 뛰어난 재능이 있더라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그 재능이 도리어 화단이 된다"고 가르쳤다.
   


선생은 창수의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여겼음인지 결단력을 유독 강조하였다. "아무리 명확히보고 잘 판단하였더라도 실행할 과단력이 없으면 모두가 쓸데없다."고 하면서 "나뭇가지를 잡아도 발에는 힘주지 않고 언덕에 매달려도 손에 힘주지 않는것이 대장부다"라는 글귀를 강조하였다.  이 때에 고능선의 "사내대장부는 모름지기 기개를 갖고 결단력이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훗날 백범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그의 뜻을 굳혀주는 역할을 하였다.
  


 고능선은 이런 말도 하였다. "예로부터 천하에, 흥하여 보지아니한 나라도 없고 망해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데도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것이있다. 어느나라 국민이 의로서 싸우다가 힘이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요. 



그와는 반대로 백성이 여러패로 갈라져 한편은 이 나라에 붙고 한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외국에는 아첨하고 제 동포와는 싸워서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다. 이제 왜의 세력이 전국에 충만하여 궐에까지 침입하여서 대신도 적의 마음대로내고 들이게 되었으니 우리나라가 제2왜국이 이니고 무엇인가. 만고에 망하지아니한 나라가없고 천하에 죽지아니한 사람이 있던가. 이제 우리에게 남은것은 일사보국의 일건사가 남아있을 뿐이다"는 말씀이었다.
  


 스승은 비감한 뜻으로 말하고 제자는 비분을 못 이겨 울면서 들었다. 제자는 나라를 망하지 않도록 붙들 방법을 물었고, 스승은 청국과 서로 (뜻을) 맺는 것이 좋겠다면서 그이유를 설명하였다.
   


"청국이 갑오년 싸움(청일전쟁,1894년)에 진 원수를 반드시 갚으려 할 것이니 우리 중에서 상당한 사람이 그 나라에 가서 그 국정도 조사하고 그 나라 인물과도 교의를 맺어두었다가 후일에 기회가 오거든 서로 융합 준비를 하여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창수는 청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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