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김구 암살한 안두희가 목에 힘주고 잘살았던 말씀은---
07/13/201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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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족의 큰별 떨어지다
김삼웅 교수 백범김구 평전
위 메모는 이승만 대통령 자신의 필체로 쓴 것으로 대통령의 서명이 되어 있었는데, 
4-19 후 원용덕에 대한 재판에서 원용덕이 스스로 법원에 제출한 것이고 그 재판기록중에 있는 것이다. 
이 메모를 받은 원용덕은 고민 끝에 부하인 김진호와 상의하였더니 김진호가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7년 구형을 받고 선고를 기다리던 김성주를구치소에서 더 조사할 게 있다고 불법적으로 끌어내 원용덕시령관 자택으로 데려와서 1954년 4월 17일 새벽 그 자택에서 권총으로 살해하고 방공호에 암장했다.

이 사건은 7년 구형을 받은 김성주가 법률상으로는 사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통령의 메모에 따라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 당시 김선주의 가족들은 구치소에 면회를 갔으나, 사람이없다고 하여 면회도 할 수없었고 선고기일 이라고 하여 법정에 나갔으나 재판이 무기연기되었다는 통고를 받았을 뿐인데, 
1954년 5월경 신문에 김성주가 사형선고를 받고 그 집행을 당하였다는 기사가 나와있어 가족들은 그 소식을 듣고 국회에 청원을 내어 당시 제3대 국회에서 조사위원회까지 설치되어 조사한바 있다. 당시 김성주의 죽음이 판결에의한 사형집행이 아니고 불법한 것이라는것을 확인 했으나, 그때 여당인 자유당의 비협조로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미국 이 문제는 4-19 혁명 후에 김성주 가족들의 고소에 의해서 원용덕, 김진호등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되자 모든 것이 드러났고 그 과정중에 이메모가 제출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원용덕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문봉제도 위중죄로 처벌박게 되었다. 결국 원용덕은 김성주를 즉인 후 판결문을 위조하고 그 집행을 한 것처럼 모든 서류를 작성한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던 것이다.그러면 이승만이 왜 김선주를 없애라고 지시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당시 신문 보도에 의하면 포병사령부  대령 이기련이 증언하기를"김성주는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박사가 죽였다고 본다"라고 하였고,

 김성주를 밀고한 사람은 김지웅으로서 그는 김구 선생 암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임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김성주 자신도 스스로"내가 안두희를 시켜 김구 선생 암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임을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김성주 자신도 스스로 "내가 안두희를 시켜 김구를 살해한 것"이라는 사실을친구들에게 공언한 일도 있듯이 김성주도 김구 선생 암살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승만과 사이가 나빠지자 김지웅은 그를 국제공산당원으로 몰고 이승만과 김지웅, 문봉제, 김태선 등을 차럐로 암살 하겠다는 허위 정보를 제공하여 김성주를 살해하게 된 것이다. 이승만의 메모내용을 보면, 법에 따라서 사형에 처하라고 되어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 7년형을 구형받은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지못한 것은 상식에 속하고, 원칙대로 하자면 재수사를 하여 사형을 선고받을 만한 죄로 추가기소가 되어서 새로운 재판을 받아  몇 개월 후에나 법적으로 사형선고를 할 수 있을 것인데, 김진호가 이승만의 메모에 따라서 살해한 것은 김진호가 스스로 이승만의 생각에 반하여 감히 범한 범죄라고는 보기가 어렵다이러한 증언들과 아울러 위에서 검토한 암살사건 이후

안두희의 행적과 군부등의 보호가 적어도 이승만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상의 것들을 고려할 때 적어도 이승만은 암살사건에 대해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부하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그 부하들은 이승만의 뜻에 맞추어 알아서 암살을 감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 미국과의 관계   백범 암살과 미국의 관련은 해방 후 한국정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안두희는 1992년 4월 13일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증언에서미국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지만, 바로 다음날 문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권중희의 강압에 의한 증언이라고 전면부인한 바 있다.먼저 4월 13일자 안두희의 증언개요를 정리하면, 
안두희는 경무부장 조병옥과 수도청장 장택상 등의 소개로 OSS의 한국 책임자 모 중령등을 소개받았고, 미군 OSS 한국담당 장교와 안두회의 서북청년단은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미군 장교는 백범을 제거되어야 할 'Black Tiger'라고 부르며 백범 암살의 필요성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안두희의 이러한 증언은 본인의 말대로 강압에 의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OSS는 1945년 10월초 해채되었고, 해방 후 한국에 진주한 미육군 24군단의 정보기관은 G-2와 CIC가 있었을 뿐이다. 다만 안두희는 미국 정보원들과 교분이 있었고 그들이 백범을 싫어하는 것을 알게되어 그것이 백범 암살에 한 동기를 주었을지는 모르겠다.
또한 '미외교문서'에는 백범 암살건과 관련하여 미국무성에 보낸 전문하나가 공개되어 있다. 그것이 1949년 6월  27일 오후 5시 발신의 2급비밀 지급(Confidential Priority)  '전문 788호'이다 


미대시관의 공식보고인 이 전문에는 특별한 내용은 없다. 전문은 '공식 비공식의 여러정보에 의하면 안두희는 한독당원이며, 암살동기는 대한민국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고 북한과 합작을 주장한 백범의 정치노선에 대한 불만'이라 밝히고 있다. 요컨데 암살 사건을 한독당내 노선 대립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문은 또한 김구 선생의 국민적 추앙을 받고있고 암살 사건에대해 모든사람이 비난하고 있기 때문에 장례식에서 큰 혼란이 예상되나,

경찰과 군대의 주도면밀한 준비로 한국 정부는 이를 충분히 수습할 수 있을 것으로 밝히고 있다. 안두희의 그간의 증언, 미군의 정보자료, 미대사관의 공식보고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미국이 암살 사건에 대해 상당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지만. 암살 사건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미국의 암살사건 개입여부는 미국이 혹시나 가지고 있을 CIC관계 자료나 CIA 자료등이 공개된 후에나 밝혀질 것으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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