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 전강 영신 대종사
11/26/20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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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영신 대종사 
 7. 화두를 드는 법 

 진로형탈사비상 塵勞?脫事非常이니          진로를 멀리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니
 긴파승두주일장 緊把繩頭做一場이어다      승두를 꽉 잡고 한바탕 지을 지어다
 불시일번한철골 不是一飜寒徹骨이면        한차례 추위가 뼈 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쟁득매화박비향 爭得梅花撲鼻香고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오. 

 어떤 스님이 趙州스님에게 묻되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스님이 답하시되 “無”하셨으니 이것이 無字화두의 시초인 것이다.
 宗門中에서 이 “무”자를 제일 많이 칭찬을 해놓았으니 “無”자 화두에 대해서 
말씀해 보면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스님만은 왜 “無”라고 하셨겠는가? 
이 “無”자에대해서 있다 없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없다. 虛無다. 이와 같이 이리저리 두 갈래로 분별하지 말고 
能所가 끊어지고 상대도 없이 다만 홑으로
 “어째서 無라고 했는고?”하고만 생각해라.

 여기에는 空도 또한 거둘 수없으며 有相-無相을 붙일 것도 없다.
 필경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이 남으니 이것만 추켜들어라.
 “조주스님은 어째서 無라 했는고?”

만약 조주스님의 無라고 하신 도리를 
입껍데기로만 따져서 알았다고 하면 他日에 염라대왕의 철방을 맞을 것이다. 
한번 조주스님의 無라고 하신 뜻을 바로보아야 生死解脫을 하는 법이다.
 三世諸佛의 골수요, 역대조사의 안목이다. 
無라고 말할 때 이미 그 의지가 확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영특한 사람이면 당장 言下에 大悟할 것이다. 
이 무자화두에 대해서 별별 해석이 다 나와있다. 
흑자는 일체명근을 끊어버리는 칼이다.
 또는 일체를 열어주는 자물쇠통이다. 일체를 쓸어버리는 쇠빗자루다.
 나귀를 매어두는 말뚝이다. 등등의 한량없는 말들이 나와있다.

그렇다, 나는 여기에 삼십방을 주리라.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어 
조주스님의 無라고 하신 그 의지가 無에 있는 것이 아니다. 
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심 부탁하노라. 
이 無字 話頭 지어감에 좋은 비유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싶어 못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 頻呼小玉無他事라          자주 소옥을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지요단랑인득성 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無라고 말씀하신 조주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無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無라 말씀하신 조주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또 어떤스님이 조주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板齒生毛니라” 하셨다. 그러면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 까? 

이 화두도 무자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쩨서 無라 했는고? 하는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화두를 지어감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중생살이 전체가 망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화두가 잘 된다 잘 안된다 망상이 생긴다 마음이 산란하다 등의 생각이 있으면 
화두의 純一之妙가 없게 되는 것이니,
일어나는 망념은 무엇이든간에 그것을 상관도 말며 두려워도 말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는 그저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 간절히 일으킬 것이며, 
없어지거든 또 일으키고 부지런히 거각하여 끊어지지 않게만 자꾸 이어주어라. 
이렇게 오래오래 물러나지않고 해 나간다면 견성 못할 까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다.

 고인의 말씀에
 “만약 능히 신심만 물러나지 않는다면 누가 見性成佛을 못하리오
 若能信心不退 誰不見性成佛라고 하셨느니라.”

 또한 공부를 지어감에 速效心을 내기가 쉬우나 이는 절대 禁物이다. 
이것으로 인해 마음이 급해지고 생각이 쉬어지지않게 된다. 
이렇게 되고 보면 화두는 점점 멀어지고 자리가 잡혀지지 않게된다. 
또 공부 지름에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두지말아야 한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망념은 할 수 없거니와
 “크게 깨달아야 하겠다.”라는 먕념을 고의로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좌선함에 눈을 감고 하는 수가 많은데 눈을 감고 할진덴 
昏沈과 無記에 떨어지기가 일쑤며,
 또한 黑山下鬼窟에 떨어진다고 고인이 밝게 말씀하셨으니 

두 눈을 평상으로 뜨고 허리는 쭉 펴고 맹렬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알 수 없는 의심하나만 깨끗 깨끗이 자꾸 일으켜 매하지 않게 할 따름이다. 
 흔히들 화두를 머리에 두고 참구하기 쉽다.
 여기에 속효심이 가해지게 되면 上氣가 일어나게 된다. 

모든 열기가 전부 머리로 치밀게 되어 머리 아픈 병이 생기게 된다. 
이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하기가 지극히 힘이든다.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은 걷잡을 수 없이 쇠약해진다. 
내가 소시적에 이 상기병으로 말 할 수 없는 고통과 헤아릴 수 없는 해를 
받아왔으나 결국은 自治之方으로 완치시켰다. 

그 자치지방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호흡법이다. 
이 호흡법은 참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간곡히 말을 하는 바이다.
 正坐하여 숨을 천천히 내어쉬되 단전부위를 허리쪽으로 살며시 당기면서 천천히 내쉰다.
 그 다름에 들어오는 숨은 팔부쯤 들어 마신다. 

그때 자기 身體氣量에 따라 잠깐 멈추되 고통스럽지 않을 만큼 하면 족하다.
 이때 화두는 단전(배꼽밑 일촌 삼푼)에 두고 의심을 잘 觀해야 한다. 
그리고 호흡법은 숨을 내쉴 때 묘가 있는 것이니
 코에 부드러운 털을 대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쉬되 
이때도 역시 화두를 잘 관해야 한다. 
들어가고 나오는 숨에는 상관말고 오직 단전에 둔 의심만을 묘하게 관해야 한다.

 처음에는잘 되질 않으나 언제든지 생각이 나거든 서너 번씩 하다가 
차츰 길들여가면 머리가 청쾌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눈이 깨끗해짐을 느낄 것이다.
 나중에 화두가 순일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흡이 자연히 잘 되는 것이다. 

일파유조수부득 一把柳條收不得하야      한 웅큼 버들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하여 
화풍탑재옥난간 和風搭在玉欄干이다.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걸어 두노라. 

不少한 허물을 옥난간에 걸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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