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강 영신 대종사 - 스님의 행장
04/15/201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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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岡 永信 大宗師

言下大悟

田岡永信스님의 行狀

   스님은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을 아버지로 황계수를 어머니로 태어남. 16세에 인공화상을 득도사로 제산화상을 은사로 응해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아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셨다.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해월 , 혜봉 , 한암 , 용성 ,보월 ,만공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이래 법주사 복천선원 -

 경북 수도선원 - 도봉산  망월사 - 범어사 - 대구 동화사 여러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천축사 무문관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  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如何是生死大事 인고 억!

九九는 飜成 八十一이니라≫하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1. 여여로 상사뒤여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치시고


황앵상수일지화 黃鶯上樹一枝花요 노랑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떨기 꽃이요.

백로하전천점설 白鷺下田天點雪이로다 백로가 밭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니라.


부득이해서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거기에다 頌하나를 붙이되 주장자를 들어서 대중에게 보인 도리는 ‘노랑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떨기 꽃이요 .’ 법상을 친 도리는 ‘백로가 밭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니라.’ 내가 이렇게 일렀다. 다음에 또 주장자를 들었다가 법상을 치고 이 도리를 이르되 ‘사자는 사람을 무는데 한나라 개는 흙덩이를 쫓는다.’ 했으니 그만하면 알 것이지 거기에다 또 무엇을 첨부해서 말할 것인가.그러나 알수록 그 허물이 많고 우리중생의 알음알이가 모르는 것보다 더 허물이 많아 법문을 듣고 알음알이를 내는 학자에게는 방棒을 내리는 것이다.

아무리 알아보앗자 분별식으로 아는 것은 번뇌망상만 더하고 차라리 모르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알음알이가 없느니라. 우리중생들은 分別?妄想때문에 生死苦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 아는 것이 모두 망상이고 業인데 이런 소견으로 법문을 들어보았자 소용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한방이요, 아는것은 두 방망이라 하는 것이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 이 자리에서 이런 법문을 듣고 言下에 도인은 마음을 취하고 범부는 경계를 취한다.

 또 사자는 짐승중의 왕이니 흙덩이를 던지면 사람을 물고 개는 흙덩이를 쫓는다. 그러면 도인운 마음을 취한다고 하니 어떤 것이 마음인가. 마음을 좇아 들어가도 마음도 아니며, 부처도 아니며, 모든 색상이 끊어진 자리인데 어떤 것을 마음이라 할 것인가? 그러나 도인은 마음을 취하고 범부는 경계를 위한다고 하니 도인이나 사자도 色見相見에 멀어지거늘 하물며 경계를 취하고 흙덩이를 쫓는 것은 그 얼마나 어긋난 것인가.


그래서 우리 불법의 解脫道理는 부처와 부처가 서로 보지못하며 天聖도 알지 못하였고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하였다. 그 생사없는 根本當處에 들어가서는 無一物이니, 有一物이니 하여도 맞지않는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일러야 하겠는가? 이 생사해탈법이 言下에 있는 것인데, 言下를 여의고는 참으로 얻기 어려우니 言下에 大悟하야 하느니라. 즉 법문을 듣다가 깨닫는다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서울 선학원에서 만공스님과 용성스님 두 선지식이 서로 법담을 하시게 되었다.용성스님이 만공스님께 말씀하시기를 “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시오”하시니 만공스님은 아무말씀도 없이 계셨다. 그러자 용성스님은 만공스님에게 “良久를 하시는 겁니까?”하고 물으니 만공스님의 대답이 “아니오”라고 하셨다.


그후 이 法擧揚의 내용을 들은 나는 용성스님을 뵙고 “두 큰스님께서는 서로 멱살을 잡고 흙탕에 들어간 격입니다”하니 용성스님께서 “그러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스님께서 한번 물어 주십시요”하였더니 용성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하셨다. 내가 대답하기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하니 용성스님은 “옳다, 옳다”하시었다.


   불법이란 것은 이렇게 한번 방망이를 업고 들어가서 뒤집고 살아가는 것이다. 근세 한국 불교에서 선의 중흥조이신 경허대사의 悟道頌을 한번 말하여 보겠다.

 홀문인어무비공 忽聞人語無鼻孔 홀연히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돈각삼천시아가

 頓覺三千是我家 문득 삼천세계가 나의집인 줄 깨달았다.

 유월연암삼하로 六月燕巖山下路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야인무사태평가 野人無事太平歌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허물이 있으면 한번 방을 쓰고 들어가는 법이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후 일곱 걸음을 걸으신 뒤 사방을 돌아보시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시며 “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셨는데 그후 雲門禪師가 나와서 말하기를 “내가 당시에 만약 보았다면 한 방망이로 타살하여 개에게 주어 씹혀서 천하를 태평케했으리라!” 하셨다.


이것이 유명한 운문끽구자 雲門喫狗子라고 하는 禪門중의 척사현정斥邪顯正공안이다.그런데 나도 경허스님의 오도송에 대하여 일방 一棒을 쓰고 한마디 하였다.


    우리 禪家에는 참선해서 見性하는 법을 소牛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 있는데 만약 시주의 은혜만 지고 도를 닦아 해탈하지 못하면 필경 죽어서 소밖에 될 것이 없다는 말을 어떤 처사가 듣고 “소가되더라도 코구멍 없는 소가 되어라.

 

이말을 전해들은 경허큰스님은 言下에 大悟하였던 것이다. 유마경 不二法門에 문수보살은 말로서 이룰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거사는 묵묵히 말이 없음으로서 이르니 유마거사야 말로 불이법문을 가장 장 설했다고 찬탄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도는 승속에 관계없는 것이다. 단 한마디 소 코구멍이 없다는 언하에 대오하였던 것이다. 견성하여 生死 해탈법을 얻어 삼천세계가 그대로 나의 집인줄 깨달았으니 무슨일이 있으리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야인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한 오도송이라고 여러 큰스님들이 모여서 찬탄하시기에 나는 경허스님의 제자이신 만공스님과 만공스님의 제자 보월스님이 계신 앞에서 직접 말하였다.


“무비공無鼻孔에는 없다는(無) 허물이 있고,돈각시아가 頓覺是我家에는 께달았다는 覺見의 허물이 있으며,無事太平歌에도 역시 허물이있으니, 이런 것이 붙어서 生死妙法을 못보고 또 제구 백정식白淨識을 못 건너가게 딱 가로막고 있어서 학자가 그곳에서 넘어지게 되는 것이니 학자를 바로 지시하여야 하겠읍니다.”라고 하니 보월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사람 참 공연히 말을 제멋대로 하네”하셨다.


그때 만공스님께서 “그러면 자네가 한번 일러보소”하셨다. “예, 참 저보고 일러보라고 하시니 참말로 감사합니다. 천하에 없는 해탈보배를 바로 주신들 그 위에 더 반갑겠읍니까. 그러면 큰스님께서 한번 청하여 주십시오”하니 만공스님께서 물으시기를 “그러면 경허스님의 무비공도리나, 각견도리나, 무사태평가 도리를 어디 한번 제처버리고 일어보소”하시였다.


   내가 말하기를 “유월연암산하로까지는 경허스님이 頌하신대로두고 제가 외람되지만 큰스님 송의 끝구절 야인무사태평가 도리만 이르겠읍니다”하고서 “여여로 상사뒤여.”내가 농부가를 부르듯이 이렇게 일렀다. 그랬더니 만공스님이 있다가 “아! 이사람아 노래를 부르는가, 여여로 상사뒤여가 노래가 아닌가, 노래를 부르는 일이 무슨일인가”하시었다.


그래서 나는 “스님이 제청하여 다시 한번 이르지요.” 그러고는 보기좋게 춤을 추면서 곡조를 부쳐서 다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하니 “嫡子弄孫일세”라고 만공스님은 점검하셨다.


  심월고원心月孤圓하니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으니

광탄만상光呑萬象이요 빛이 만상을 삼키도다.

광경구망光境俱忘하니 빛과 경계를 모두 잊으니

부시하물復是何物고 다시 이무슨 물건인고?


   이것이 경허대선사의 열반송이다. 경허대선사는 이렇게 송하시고 一圓相을 그리신 후 임자년 4월 25일에 갑산에서 入寂하시었다. 대중들이여! 어떤것이 일원상의 본래면목인고?


   누구나 나에게 화두를 요구하면 趙州스님의 화두가 많지만 그중에서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 祖師西來意이닛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즉, 어떤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를 선택하여 주었다.


그러면 여기서 화두를 參究하는 법을 간단히 말하겠다.오직 화두만 잡되 이치길도 없고, 말길도 없고, 마음길도 없어야 하느니라. 화두를 참구해 감에 십년을 하다가 또는 일생을 하다가 언하에 대오가 있는 법이다. 이 생사고에서 아무리 분별망상을 하나 언하에 한번 깨달아버리면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眞如의 自性에서 생각을 일으키되, 六根이 비록보고 듣고 깨닫고 말더라도 모든경계에 물들지 않고 참 성품이 항상 自在하느니라.


천지상공진일월天地尙空秦日月이요

산하불견한군신山河不見漢君臣이니라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도인은 미음을 취하고 범부는 경계를 취한다는 것과 또 사자는 사람을무는데 개는 흙덩이를 쫓는다는 것은 더하고 덜할 것이 없이 다 허물인데 천지에 오히려 진나라 일월이 공했고, 산하에 한나라 군신을 보지 못하였구나. 이것은 또 무슨 도리를 위한 게송偈頌인가?


 내가 대중을 위하여 이 뜻을 보이노니 “구구는 범성 팔십일 이니라, 즉 구구는 아무리 뒤집어 일어도 팔십일 이니라.” 산승이 모든 허물을 주장자에 미루어 놓고 불법을 설하였지만, 이 해탈정법은 혼자만 듣고 알아가지고 남을 위하여 전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차리리 無量永劫에 生死苦를 받고 있을지언정 소승심을 말하지 말라 하신 말씀도 있으니 이 법문을 듣고 모두 信受奉行하고 남을 위하여 꼭 전하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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