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성 춘성 대종사 -돌장승 애낳는 도리
04/14/201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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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돌장승 애낳는 도리
불법은 이렇게 된 것이다. 佛法의 大意가 이런 것 인줄 알아야 불법이 쏙 들어간다. 
믿을 信이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공부하는 사람들이 거짓말로 알고 믿으려 하지 않는데 이것이 큰 병통중에 하나다.  雲門祖師가 “실달태자를 때려죽여서 개나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줄 몰라도 눈뜬 사람은 다 알 수 있는 법이다. 괜히 세상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것을 가지고 떠드는 것을 보면 개 같은 법을 가지고 모두 개 같은 병을 하나씩 주었다. 본래 없던 병을 만들어 불치의 병자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佛法이란 것은 무엇을 닦고 닦을 것이 아니며 닦는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도리를 모르고 마음을 닦는 것은 마치 똥으로 거울을 닦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름있다고 하는 물건들의 법문을 아무리 좋게 수록한다 해도 그것 역시 그 물건들이 뱉어놓은 가래침이고 똥 덩어리다. 요즈음 話頭를 들고 참선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드믈거니와 특히 강원강사가 참선을 할려고 하는 사람이 없고 누더기 입은 선방수좌 보기를 거지같이 보고 무식하다고 경멸하는 생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달마대사가 계시던 시절에도 강당에서 참선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무식하다고 죽이기를 수없이 했고, 반대로 선하는 사람이 누더기를 입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꾼이지만 강원에 강사나 학인 알기를 병든 개보다 더 못한 걸로 취급하고 때려 죽이기를 한량없이 했다.
禪하고 講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싸우는 것이 마치 떼놈 오랑케 보듯 하였고  이 싸음은 달마스님때부터 오늘날까지 내려왔다. 또 극락이라는 것을 말할 때에도 강사들은 꼭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극락이 어디있으며 극락 국토가 어디 있겠는가. 
극락이란 본래 없는것이다. 없는 것을 사람이 만들어 극락세계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어떻게 만들어 극락세계냐 하면 우리 이몸이 한번 세상에 떨어지면 그날부터 근심걱정이 꽉 차 있다 이 몸뚱이 하나 살기위해 위해서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두 부부가 어린애를 하나 낳아가지고 키울려고 걱정하고, 가르치고, 먹이고, 잘 입히려고 걱정하며 장가보내고, 남편 섬기느라 걱정하고, 가정살림 나라살림 하느라고 걱정 근심하는 것이 비유하건데 이 우주에 가득찬거나 다름없다. 

이런 번뇌 망상이 우주안에 가득 하다가 젊어서 죽었든지 늙어서 죽었든지 죽고보면 
근심 걱정이 전부 끊어진다. 숨한번 들어 쉬었다가 밖으로 내지 못하면 죽는 것인데 
이때 근심걱정이 끊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편안한 상태로 돌아간다. 
아편 중독이 들면 밤 낮 침을 맞으려고 야단이듯이, 종교란 것이 문제없는 것인데 
종교에 한번 물이들면 빠져나오기 힘들고 착한사람 영원히 버리고 만다. 
극락세계가 또한 본래 없는 것을 불교에서는 만들어 가지고 어리석은 중생들이 갈려고 하는 애착심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꿈의 세계를 현실로 잘못 알고. 쫓아가려고 하는거와 같으니 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냐. 
본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하고 가려고 하니 잡힐리도 없고 가질리도 없는 것이다. 
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처소로 간다고 믿는다. 이 하나님의 처소라고 하는 곳 역시 천당을 말하는 것이다. 천당 역시 없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천당을 가겠다고 야단이다. 천당이나 극락역시 인간의 번뇌 망상에서 일어난 소산에 불과하다. 만약 인간이 사후에 극락이나 지옥이 없다고 한다면 종교생활이나 도덕생활을 하지않고 마음대로 살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겠지만 그 생각이 잘못된 마음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람 사람이 생긴 그대로가 관세음보살이요, 보고 듣는것이 그대로 관세음보살이며, 말하는 것이 그대로 관세음보살이요, 손으로 일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요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다. 
그렇다고하면 전부 나의 一身 전체가 마음으로 된 것 그대로가 佛身이다. 마음 내놓고 佛이 어디 있으며 마음 내놓고 천당이 어디에 있느냐. 그 마음을 가리켜서 천당이라고 하고 마음을 가리켜서 부처님이라고 한다면 그냥 그대로 살림살이 전체가 佛敎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다 다른 물을 들여서 만든다는 것이 틀린 일이다. 
이런 이치를 안 이상 입을 벌린다고 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므로 벙어리밖에 안된다. 
흔히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마음에도  선한 마음이 있고 악한 마음이 따로 있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마음을 잘 썼든지 못 썼든지 마음이다. 악하게 써도 마음이요 선하게 써도 마음이다. 마음이란 허공같이 본래 빈[空] 것인데 사람이 만들어서 착하다, 악하다 한다. 선악은 저기서 일어나지만 선악의 근본은 전혀없는 것이다. 
마음 근본 또한 비어서 본래없는 것이다. 

아뭏튼 불법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二祖慧可처럼 “신을 바쳐라” 할때 자기 팔을 뚝 잘라 바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팔이 눈 위에 떨어질 때 그 장한 신심의 힘으로 
푸른 파초가 솟아올라 향기가 천하를 진동하였다. 이 얼마나 거룩한 일이냐. 
이런 정도의 힘이 있어야 부처 성품과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혜가대사가 팔 끊어서 올린 그 道理만 꼭 알면 대장부일은 다 마친 것이다. 
또 *회양懷讓선사는 육조스님께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물을 때 
회양선사의 가슴은 큰 수미산에 꽉 눌린 것 같은 답답한 심정이었다. 
불법을 공부하는데에는 이와 같은 의심이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다. 
요즘 아무것도 모르는 건방진 수좌들이 너무 “없다”는 “無”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없다”는 말도 경계를 알고 말해야 되지 道理도 알지 못하고 덮어놓고 ‘없다고 하면 안된다. 근본이 원래 비어서 없는 도리를 알고 ‘없다’고 해야한다. 
佛法은 통속 같이 비어서 없는 것이다. 본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책 몇권 읽어서 평생을 말해보아야 다른사람의 흉내만 내는 것이오, 뱉어버린 침을 맛있다고 핥아 먹는 개 꼴이나 다름없다. 천하없이 좋은 책을 만든다 해도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이 가래 침일진대 어떠한 중생이라도 다 가래침이다.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이 말한다. “있는 법을 없게 할지언정 없는 법을 있게 하지 말아라.”하고, 천하없는 법사가 설한다 해도 벌써 한마디 턱 던지면 틀린 것이다. 
그러므로 “돌 장승이 애기낳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불법이란 바로 이것이 佛法이다. 
“돌 장승이 애기낳는 도리를 알라”하니 어떤 미련한 중생이 “도대체 무슨 뜻 입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없겠습니까?” 하고 묻는데 이런 답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알던 모르던 답답하면 자가가 언제든지 의심하여 참구할 일이지 물어서 알아지는 일이아니다. 알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는거냐하면 그것이 아니다. 아는 소리를 해주어서 그 사람이 아느냐 하면 역시 아니다. 
더욱 모를 뿐이다. 돌 장승 애기 낳는 도리만 알아라. 
 *법어(1)* 
어느 때 안국동 선학원에서 저녁 방선후放禪後 막 누웠을 때 옆에있던 雪峯스님께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어느 학인이 해재하고 봉암사의 性徹스님을 배알拜謁하니 즉시 몽둥이로 치거늘 그 학인이 며칠후 떠나는 인사를 하자 또 몽둥이로 치므로 그냥 맞고 나와서 상수 갑상사에 계시는 錦峰스님께 이 사실을 아뢰는데 그후 성철스님이 남방으로 가시다가 갑장사에 들리니  금봉스님이 그 학인의 일을 들어서
 “만약 내가 그때 그 매를 맞고 아야! 아야! 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성철 스님이 아무 말이없이 떠나 버렸다. 
설봉은 아야! 아야! 한 후에는 어찌 할태냐? 하니 
설봉스님이 즉시 목침으로 치거늘 스님은 ‘씨브랄놈’이라고 하시다. 
법어(2)*
 스님께서 어느 해 동래 금정사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결망을 메고 나오는데 
설봉 스님께서 뒤따라 오시면서 여비를 주시자 받으시고 
“우리 작별인사나 나누세”하시니 
 설봉스님께서 즉시 주먹으로 옆구리를 찌르거늘 스님께서 喝할 하시다. 

또 6-25 사변으로 퇴락한 망월사에 혼자 계시면서 절을 중수하려고 벌목을 하였다가 
의정부 영림서에서 출두를 요구하므로 스님께서 署에 가시니 서장이 조서를 작성하려고 
스님께 본적을 묻자 벽력 같은 소리로”우리 아버지의 賢頭요.” 하자 
서장이 놀래서 “그것 말고 스님의 고향이 어디냔 말이요.” 하고 다시 묻자 
역시 집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우리어머니 ㅋㅋ요”하고 대답하니 
서장이 어처구니가 없어 “이 늙은 중아 어서 그만가시오” 하였다. 
그 후에 누가 스님께 그 벌목사건을 어떻게 무사히 넘기셨느냐 고 묻자 
“내가 당연히 할 소리를 했는데 어찌 하였겠는냐”고 만문 하셨다. 

*空寂= 공공적적의 약칭. 우주에 형상이 있는 것이나 형상이 없는 것이나 
          모두 그 실체가 空無하여 아무것도 생각하고 분별할 것이 없다는 것 

*慧可=(487~593)중국 스님. 선종의 제 2조, 보리달마의 법을 잇고, 
제자 승찬에게 법을 전함. 

*회양懷讓=(677~744) 중국 당나라 스님 육조 혜능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남악의 禪風을 선양함. 대혜선사大慧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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