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봉 경욱 대종사- 스님의 일화
04/11/201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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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일화[逸話]

고봉스님께서 정혜사 만공스님 회상[會上]에 계실 때의 일이다. 衲子는 많고 식량은 궁핍하여 시월 결재 후 삼동안거가 어려우므로 결재전에 납자들이 각기 탁발동량 해 가지고 와서 겨울 공부를 하는데 보태 쓰기로 대중 공사를 하고 모든 대중을 나가게 하였다.

다른사람은 10여일 은 보름동안을 탁발해서 얼마씩 식량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고봉스님은 당나귀를 타고 의기양양 하게 돌아왔다. 그러나 돈과 곡식은 하나도 빌어 오지않고 도리어 자기가 당나귀 타고온 삯까지  만공스님에게 물어달라고 하였다.

 만공스님께서 하도 어의가 없어서 “자네 같은 탁발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일전 일푼도 가져오지는 않고 나귀를 타고와서 삯까지 물어달라고 하니  탁발한 것은 다 어찌 하였단 말인가?”

“소승이 탁발하여 번 것은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주고 왔습니다. 15일간 먹지않고 나가있었으니 그만해도 쌀[白米] 한말 정도는 벌어놓은 셈이고 또 소승이 있어서 용돈을 썼다면 그것도 몇십량은 될 것인데 그것이 없었으니 얼마나 성적이 좋은 편입니까.

 그러니 당나귀 삯을 물어주셔도 오히려 큰 벌이가 된 것 입니다.”


만공스님께서 웃으시면서

“자네는 보통 사람의 테두리 밖에서 뛰어난 사람일세, 다시는 말하지 않을 테이니

자네 멋대로 지내게.”하고 다시는 고봉스님께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또 스님께서 양산 내원사 慧月스님 회상에 계실 때 일이다. 그당시 혜월스님께서는 논밭을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스님들을 동원해서 황무지개간사업을 하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스님께선 대중운력[大衆運力]만 호되게 시킬 뿐 먹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 하셨다.

마침 혜월스님께서 부산에 가시고 없는 틈을 탁서 고봉스님은 몇몇 스님들과 같이 소를 끌고 양산 사장에 나가서 팔아 없앤 후 그 돈으로 곡차(술을 곡차라 부름)을 실컷 마시고 와서 남은 돈을 원주에게 주고 대중공양에 맛있는 반찬을 장만해 드리라고 부탁하였다.


며칠후 혜월스님께서 도라오셔서 보니 소가 없었다

. “누가 내 소를 가져 갔느냐?”하고 큰 소리를 하시면서 소를 찾아오라고 야단이었다.

대중은 놀래서 전전긍긍 할 뿐 한 사람도 대답하는 소리가 없었다. 그때 고봉스님께서 갑자기 옷을 홀랑 벗어버리고 조실방에 들어가서 ‘음메 음매’ 송아지 소리를 내면서 사방으로 기어다녔다. 혜월스님은 벌써 고봉스님의 장난인 줄 알고 스님의 볼기짝을 찰싹 때리며

“내 소는 애비소요, 애비소지 이러한 송아지가 아니다.”하고 문 밖으로 쫓아냈다.

이후로는 혜월스님이나 고봉스님이 아무 말 없이 지냈다고 한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나의 세속제자인 豁然거사는 行願군이 군인으로 복무할 때에 참선지도를 받았다.

 그는 麻三斤 화두를 철저하게 참구하여 한 소기 얻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나에게 선지거량[禪旨擧揚]을 하러 왔으므로 어느 한도에 이른 것을 짐작할 수가 있고, 니련거사나 사헌거사, 충당거사 또 비구니로는 유세등과 주수주 같은 사람은 남에게 속지 아니할 만큼 공부가 있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진실하게 믿고있는 것으 틀림없으나 그는 도무지 말이없는 사람이라 공부를 하는지 공부를 아니하는지 공부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성담거사가 사루어 말하되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小士가 越南한 후 20여년이나 스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어러 사람들에게 說示하여 

주시는 법문과 간곡한 설법은 항상 들어왔는데 어찌 공부의 마음이 없겠읍니까?

그러나 소사는 스님을 부처님같이 믿는 것으로서 공부를 삼기 때문에 문답거량을 

필요로 하지 않았읍니다. 경전을 보니 靈山會上에 천 이백 제자가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도 부처님께 대들어 거량하는 법이 없더군요. 그런데 소사가 무얼 안다고 문답 거량을 하겠습니까? 제가 이북에 있을 때에 스님의 제자인 熙宗대사에게 발심을 하였고 또 그 스님으로부터 고봉스님의 거룩한 말씀을 늘 들어왔기 때문에 저는 스님을 진심으로 믿고 골육지친[骨肉之親]인 부모이상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이 사람아! 내가 자네에게 공부가 어떠한지를 물었지 그러한 공치사를 물었는가.

그런건 다 버리고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말해보게.”

“小士는 견성을 하여 부처가 되기전에 우선 거짓없는 진실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급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진실한 인간도 못된 것이 어찌 부처되기를 구하겠읍니까?

그래서 소인은 어떻게 하여야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 남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인간이 되어 볼까 하는 것이 주야일념의 공부이기 때문에 공안화두는 법문으로 듣기는 하여도 아직 제가 착수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까닭으로 이런 문제를 다루어 보지 않았습니다.”

“기특한 말일세. 그러나 자네는 누가 보든지 表裏가 다르지 아니한 사람이니  진실만 고집하지 말고 참선을 하여보게. 참선을 하면 더욱 진실하여지는 것일 세.”

“참선을 하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겠습니까?”

“화두를 간택하여 참구하게.”

“그럼 저는 무슨 화두를 해야할 지 스님께서 화두를 하나 간택하여 주십시요.”

“자네는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를 하게.”

“옛적에 어떤 승이 조주스님께 묻기를  (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하자 조주스님이 답하되  “뜰 앞에 잣나무니라.”하시었다.

그때 다시 승이 조주스님께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조주스님께서 말씀하시되 “정전 백수자니라. 곧 뜰 앞에 잣나무니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소인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자네가 바로 이해가 된다면 다시 무슨 공부가 필요하겠는가?

 참선이란 것은 이론이 아니요 학문이 아니므로 순 白紙로 돌아가서 이게 무슨 뜻인가? 하고 의심하여 보는 것일세.  千七百公安이 다 이런 것이다. 

어느 공안 이든지 처음듣고 알고 모르는데 판가름이 난다.  알면 그만이요. 모르면 곧 의심이 되는 것이니 이 의심이 풀릴 때 까지 의심하고 참구하여야 한다.

 참선이란 모르는데 충실하여 의심을 갖는 것이 큰 공부인즉  꾸준히 노력 정진하여 밤이나 낮이나 아무생각없이 이 의심만 惺惺寂寂하게하여 뜨렸하게 나타나면  여기서 생사도 초월하고 고락도 초월하여 眞과 妄에서도 초월할 뿐 아니라   선악에서도 벗어나 大自在를 얻게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참으로 깨쳐 알았다는 것이 없을 때에,모르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곧 “단지불회但知不會하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인 것이다. “고맙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화두를 종신토록 명심불망銘心不忘하고 실행하겠습니다.”


(이 詩는 스님께서 즐겨 부르신 것이다.)


강풍호만고[江風吹萬古]요      강바람은 만고에 나부끼고

산월희천추[山月熙千秋]라      산 달은 천추에 빛나네.

만고천추객[萬古千秋客]이      만고의 천추객이

기등풍월루[ 畿登風月樓]런가   몇번이나 풍월루에 올랐던가.

구생변생희[謳生便生喜]하고    태어나면 기뻐하고

구멸각범연[謳滅却范然]이라    죽으면 슬퍼하니

진시일부구[盡是一浮謳]니       이것은 모두 뜬 구름

하희부하우[何喜復何憂리요.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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