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봉 경욱 대종사
04/10/201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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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 경욱 대종사 古峰 景昱 大宗師

古峰스님의 行狀

스님은 1890년 9월 20일에 경북 대구시의 지동에서 출생하시었다. 15세 전에 四書三經을 다 독파하시었다. 1911년 9월 상주군 남장사에서 입산하여 이혜봉스님을 은사로 하여 得度하였다. 법명은 景昱이요 법호는 古峰이다.

1915년 9월 달성군 팔공산 파계사 성전선실 마당가에 있는 바위위에서 좌선을 하시다가홀연히 見性을 하였다. 

그 후에 행각을 시작하여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擧揚도하고 정진도 하며 四敎와 大敎를 마쳤다. 스님의 도반으로는 박금봉, 전운봉, 이석우, 최혜암, 이춘성, 정진강 등이있다.

1922년 덕숭산 청혜사 송만공스님께 傳法入室의 建幢을 하였다. 그리고 범어사와 양산 애원사를 왕래하시며 慧月스님을 모시고 정진하였다. 그후 정혜사 조실로 계셨고 백운사 서봉암등의 조실로 계시면서 많은 납자를 위해  禪法을 지도하시는 동안에 嵩山선사를 법제자로 삼았다. 그 후에 6-25 동란을 만나 공주군 마곡사 운적암에서 禪會를 열고 禪旨를 擧揚하였다. 또 아산군 봉욕사와 대전 복전암, 서울 마타사의 조실로 계셨다.

1961년 8월 19일에 서울 성북구 수유동 화계사에서 입적하시니 世壽는 72세요 法臘은 51세였다.


허물이 어떤곳에 있는고?

주장자를 세웠다가 놓으면서 말씀하시되, 대중은 알겠는가?

 태어나기가 어렵고 대장부로 태어나기가 어려우며 출가하기가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가 어렵다. 이 네가지를 얻기가 어려운 가운데에도 특히 불법을 얻기가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현금에 출가한 자가 비록 이름은 출가라고 하나 불법을 알지 못하는 이가 많고

 비록 衲子라고 이름하나 禪旨를 알지 못하는 이가 더욱많다. 그런즉 우리 대중은 생각 생각에 간단함이 없이 여실하게 참구하되  우리 부처님이 전륜성왕의 보위를 버리고 설산에 앉은 일이 다만 이 生死一大事를 위한 것임을 간절히 생각하라.

금생에 一大事를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 물도 녹이기 어려울지니 착실하게 정진하라.

깨달음으로서 법칙을 삼고 방일하지 말라. 때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목숨이 또한 잠간 사이에 있으니 이 때를 버리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염라대왕이 金魚찬 사람(고관대작을 가르킴.)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一情事가 사사로운데 있지 않으니 깊이 생각하고 특별히 힘써 정진하여 생사를 초탈하라. 

살아서 도를 닦지않고 죽으면 삼악도에 떨어져 만번죽고 천번 삶에 뛰어날 기약이 없으리니  삼가 방일하지말고 머리털에 타오르는 불을 끄는 것과 같이 하라.


다시 주장자를 잡고 말씀하시기를

“這個一着子 저개일착자는 三世諸佛이 설하지 못하시고 역대선사가 전하지 못함이라.

한 걸음을 나가면 칼날이 하늘에 가득하고 한 걸은 물러가면 만길이나 되는 깊은 구렁이니 思量으로서 얻겠는가? 言說로서 얻겠는가?

만약 알아 얻으면 문득 부처와 조사로 더불어 같이 행하고 국가의 은혜와 부처의 은혜를 일시에 보답하겠지만 알지 못한다고 하면 山僧이 간절히 여러대중을 위하여 설파하리라.”

‘악’하고 할喝을 하시다.


“이 더러운 가죽 푸대속에 한 개의 물건이 있으니 소소영영昭昭靈靈하여 항상 사람들의동요하는 가운데 있으되 거두어 얻지 못하고 불러서 비로법신 毘盧法身을 삼으니 대중은 알겠는가? 안다고 해도 30방[三十棒]이요, 모른다고 해도 또한 30방하리니 필경에 어떠한고?

古峰도  또한 합당이 30방하리라.

허물이 어떤곳에 있는고?  속히이르고 속히 이르라.

진실하게 또 결정코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이루고자 하면 큰 믿음[信]을 일으키고 견고한 뜩을 세우라. 또한 화두를 들때에는 의심하고 의심해 가서 화두를 하고있는 것 까지도 놓아버려야 한다.

간혹 그렇지 못하여 화두가 어느때는 명백하고 혹시는 명백하지 못하며, 어느 때는 나타나고 어느때는 나타나지 아니하며,  어느때는 있고 어느때는 없으며 끊어지고 또는 끊어지지 아니하면 이것은 신심이 굳지 못하고 입지[立旨]가 견실치 못한것이니  이와 같이 허송 세월을 하면 부질없이 시주의 은혜만 지는 것이다.

다른 때 다른일에 염라대왕의 밥값 타산을 면하지 못할지니 이것이야 말로 공연히 세상에 나와서 한번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그런즉 어느 여가에 헛된말과 긴 글구와 짧은 글구를 구하여 동을 가르키고 서를 가르킬 것이냐. 생각하고 생각하여 볼지여다.

무릇 참선을 하는 사람은 오래 한 장소에 있으면서 고루하게 날을 보내지 말라.

여러곳을 行脚하여 선지식을 예방하고 종지[宗旨]를 擧揚하여 바른 눈을 결택[決擇]한은 것이 좋다.  이것은 선철[先哲]의 노파심이다. 

결코 황당한 것이 아니므로 깊이 깊이 헤아려서 처음 마음을 저버리지 말라.

설사 한 개를 알고 반개를 아는 것이 있더라도다 이것은 흠집의 근본이니 어찌 너에게 관계하리요. 옛 사람이 큰 일을 발견한 뒤에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생각 생각 끊임없이

스스로 닦고 스스로 증득하며 스스로 깨달은 뒤에 두루 제방[諸方]을 참방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보통일이라 하겠는가?

 힘쓰고 힘써서, 초지일념[初志一念]을 저버리지 말라. 말이많고 생각이 많으면 실로 손실이 될 뿐이요, 저 법에 대해서는 이익이 없는 것이니 간절히 삼가하여 항상 자기 마음을 두호하고 보임[保任]하기를 그치지 말라.

무상이 신속하여 목숨이 찰나에 있으니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되 머리에 불타는 것을 구하듯 하고 다만 무상함을 생각하여 방일하지 말라.

네가 이미 발심하여 행장 차려 행각하고 두루 선지식을 찾아 다니니  회유하기가 우담발화 꽃이 한번 나타난 거와 같으니. 잘한 일이 이보다 더 할 수가 없다.

네가 이미 이와 같이 한 칼로 두 쪽을 내니 만군이 공포하고 諸佛이 환회하리니

 나도 또한 따라서 기뻐하기를 항하사의 모래와 같다.

그러나 비록 이와같으나 네가 도를 배운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능히 곧 無心지경에 이르지 못함은 너의 둔한데 있는 것이 아니요  실로 너의 총명한데 있는 것이니

이제부터는 아주 둔한놈이 되어서 지옥을 들어갈 지언정  총명한 놈이 되어서 부처님 세계에 나려고 하지 말라. 

이와 같이 서원을 발하고 다만 장님과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되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의심만 지어 뭉쳐가라. 이것은 내가 입을 열어서 답을 보이는 것이니 너는 소홀하게 여기지 말라.

좌선은 별로 用心할 곳이 없다. 無記性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홀연히 일어나는 들 뜬 마음이다.  탐-진-치 삼독심이 가라앉아 自性이 청정하면 닦아놓은 거울이나 깨끗한 얼음같고 가을 허공과 맑은 호수와 같다.

 또한 法界가 마치 뱃속에 있는 거와 같다.

몸과 마음을 탈락하여 평안함을 얻으면 가슴속이 청량淸凉하여 비할 데가 없다.

만약 이런경계에 도달한 참선 납자라면 이것은 참선에 반 성공이 되었다고 하리라.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여 부처와 조사를 업신 여기는 마음을 내면  이것은 크게 잘못하여 마군의 경계에 빠지니 衲子는 주의 하여야 한다. 참선은 원래 기특한 일이 없어서 心志를 깨치고 본분에 주할 뿐이니  깨달음을 구하고 妄心을 버릴 생각조차 버리면 이로부터 점점 無爲경계에 들어가리라.

네가 참선을 하고자 하되 다만 病과 藥의 두 마귀로 인하여  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놓는 거와 같이 엇갈린다고 하니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말고 오직 깨달음이 느림을 두려워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허황한 것을 알면 곧 여의어지는 것이니 방편을 짓지말라. 

허황한 것을 여의면 곧 깨달음이라. 또한 점차가 없느니라.”하시였으니

네가 착실하게 藥과 病이 한가지 마귀임을 알게되면 

자연히 두 마귀 밖에 뛰어나게 되며 또한 능히 두 마귀 가운데 유회하리니


 만약 출가한 뜻을 저버리지 않고자 하면 간절히 최초에 발심한 한 생각을 잊어버리지 말라. 만약 이 일을 의논하자면 일체 思量을 여의고 저 公安을 실답게 참구하라.

설사 한 두가지의 아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작은 것을 얻고 만족함을 삼지말고

곧 옛 사람이 친히 깨달은 곳에 이르러야 세존과 더불어 같으리라.

또한 자기소견에 맡기지말고 다시 선지식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이야만 비로소 바른 눈을 얻으리라.

촤후의 한가지 부탁하는 것은  천년의 재주를 감추는 鶴이 될지언정 봄철에 울음소리만 고운 꾀꼬리를 배우지 말라. 말세에 경박한 무리가 겨우 아름아리의 그림자를 얻고 

구경법을 삼아서 말로만 지꺼리는 사람이 많으니  저 선법이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무간지옥을 부르고 있으니 어찌 맹렬하게 살피지 아니할까 보냐,


착실하게 活句를 참구하라.

또한 믿는 사람으로서 진정한 도를 닦으려면 마땅히 心要 알아야 한다.

心要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다 간직하고 있는 본원본성本源眞性이니 만약 이것을 알면 하루종일 세상풍파에 시달리더라도 결코 동요가 없다. 그러나 本源眞性을 알지 못하면 妄念이 수시로 발생하여 세파에 유랑하게 되니 마치 물이 바다에 들어가면 海水라 이름하고, 물이 강에 들어가면 강물이라 이름하고, 개천에 들어가면 개천수라 이름하고, 부정한 연목에 들어가면 더러운 연못물이라고 이름한다.

물은 本性이 두가지가 없지만 처소를 따라서 이름이 달라진다.

그러나 본원진성을 깨달으면 아무리 나쁜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변해지거나 동요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원진성은 무형무명無形無名하고 무사무념 無思無念한 것이므로 

깨달으면 생사에 뒤어나고 苦樂에 뛰어나서 아무 곳에나 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본원진성을 요달함에는 가히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모름지기 묵묵참구默默參究하여 심기가 一轉하고 깨달음의 불이 밝게 발해야 본원진성을 투득 透得하리니 지접 깨닫고 체험함이 없으면 말할 때에는 깨달은 것 같으나 직접 경계를 대하면 혼미해지고만다. 그러므로 무슨일에 종사하든지 自性찾는 공부를 버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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